20살_엄마 죽으면 어떻게 할래

by 피츠로이 Fitzroy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느꼈다. 아빠랑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았고, 이유는 당연하게 아빠의 일이 바빠졌기 때문이었다. 돈이 들어왔고 우리는 이제껏 살아본 집 중 가장 큰 집에 살고 있었다. 요즘만 같으면 너무 좋겠지, 생각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 전혀 다른 환경에 설레면서 하루하루를 지냈고, 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 삼 년 내내 괴롭힘을 당했던 중학교 생활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 체육복도 뺏기고, 실내화도 신발주머니도 다 찢겨 와서 나를 걱정시켰던 날들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나는 집에 정말로 평화가 찾아왔다고 느꼈다. 우리 집에도 옅은 행복의 기운이 번지고 있다고.

그러나 곧 그런 일이 일어났다. 신을 원망하는 일이. 내가 잠을 못 잘 때, 엄마 아빠가 싸울 때, 죽음이 무섭기 시작했을 때, 간절히 빌고 또 빌었던 나의 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

엄마를 빼앗아 가리라고는 한 번도,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내 주변에 엄마 없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고, “너 엄마 죽으면 어떻게 할래?”라고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물어봐 준 사람도 한 명이 없었다.

아빠는 일이 계속 많아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곤 했는데 그날은 일찌감치 귀가해 이른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엄마와 나는 거실에 마주 보고 앉아 다 마른빨래를 정리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한 엄마는 “후이 자습 끝나고 올 시간이다.” 하며 아들 볼 생각에 진심 기뻐하는 듯했다. 고등학생이 된 후이는 이제 제법 늦게 들어왔다. 학원을 다닌다고 밤 10시도 넘어야 들어왔다.

엄마는 후이를 나보다 열 배쯤 좋아했다. 아무리 어린 나도 느낄 수 있게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후이 사랑은 각별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마음속으로 경멸했다. 나에게는 한없이 무뚝뚝하기만 엄마.

그때 갑자기 엄마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엄마는 ‘아!’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눈은 뜨고 있었다. 혼자서 자꾸 일어나려고 하는데 한쪽으로 계속 넘어졌다. 몸의 반쪽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자꾸 일어서려고 했다. 또 넘어지는데.

“엄마 그러지 마, 엄마 그만해.”

엄마의 눈이 점점 흐릿해져서 나는 아빠가 자는 안방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아빠 일어나 보세요, 엄마가 이상해요, 아빠 엄마가

이상해요.”

아빠는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냉동실에서 청심환을 꺼내와 엄마 입에 흘려 넣었다. 검은 덩어리를 숟가락 위에 놓고 물과 함께 짓이기는 것이 방법이다. 지방에서 한약방을 크게 하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주는 만병통치약. 아껴 먹던 그 약을 엄마는 금세 토해버렸다. 침대 위로 검은 얼룩이 번져갔다.

“안 되겠다, 119에 신고하자.”

아빠가 신고를 하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사이 후이가 집에 들어왔다. 엄마의 정신은 이미 이곳에 없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엄마, 후이 왔는데, 눈 좀 떠 봐......’

엄마는 뇌경색이란 최종 판정을 받았는데, 뇌경색이란 걸 알기까지 너무 많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 CT를 찍었고 MRI를 찍었고, 4시간이 걸린다는 수술을 8시간이나 했고, 그 수술마저도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나왔다.

엄마가 평소에 조금 아픈 것도 많이 아프다고 엄살떠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엄마가 평소에 아프면 그때그때 병원에 잘 가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날 저녁으로 고기도 굽고, 설거지도 하고, 여느 때처럼 후이도 기다리고 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어디가 아픈지 찾느라.

아픈 사람이 꽁치를 갑자기 50마리씩이나 사서 깨끗이 손질해 냉동실에 쟁여 놓고, 아픈 사람이 오이소박이를 만들어 (전쟁 난 줄 알았다) 냉장고 칸칸이 꽉꽉 채워 놨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나.

의사가 ‘사망하십니다’라는 문장을 꺼냈을 때 조금이라도 슬픈 표정을 지어주길 바랐다. 오늘 점심에 뭐 먹었는지 이야기하는 뉘앙스로 건조하게 죽음을 말했다. 무릎 아래가 없어진 느낌이 들었는데 넘어지지 않으려고 배에 힘을 주며 견뎠다.

일이 없어 펑펑 놀던 날도 많던 아빠는 엄마가 쓰러졌는데도 이미 맡아놓은 일을 물릴 수가 없었다. 갑자기 비싼 노트북을 사서 들어오더니 병원에서 간호하며 일하겠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에 오래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병원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는 쓸데없는 걸 다 샀다는 듯 쓰러진 지 정확히 3일 만에 우릴 떠났다.

중환자실에 오래 있어야 한다고 들었을 때,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환자 간호하고, 학교 다니고, 가족들 밥해 먹이고, 이거 고생문이 열렸구나.

내가 불평해서 일부러 일찍 떠난 게 아닌가, 그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엄마에게서 푸른빛이 났다. 예쁜 손이 퍼렜다. 여기 이렇게 누워있는 사람이 내 엄마가

아니길 바랐다. 무서웠다. 죽음은 그렇게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내가 엄마 편이 아니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항상 나에게 많은 욕심을 부렸고, 난 내 능력 밖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잘 나 보이길 바랐고, 난 내가 평범해지길 바랬다. 그런 것들이 자꾸 생각났다.

가장 친한 친구가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내가 뭐라고. 아직 상복도 안 나온 이른 시간이었는데.

남자 친구는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역력히 들여다보였다. 그답다 생각했다. 말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직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고 생각한 학교 선배는 그런 말을 해줬다.

“네 오른쪽 가슴에는 아빠가 있고, 네 왼쪽 가슴에는 엄마가 있어. 항상 언제까지나. 그걸 꼭 기억해”

내 왼쪽 가슴을 짚으면서 말했다. 언니가 그런 말을 해 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감성적인 말 따위는 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언니의 표정과 말투. 한 살이라도 어린 나를 위해 한껏 어른 인척 하며 그렇게 말해줬지만, 언니도 무서워 보였다. 20살도 21살도 아직 어린것이다. 언니의 말이, 언니의 용기가 너무 고마워 마음이 뭉글뭉글 부풀어 올랐다.

장례식장은 화가 난 사람들이 많았다. 주로 엄마 쪽 친척이었다. 이모랑 이모부들이, 외삼촌과 외숙모들이,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아빠를 욕했다. 엄마는 명확한 병명이 있는데 아빠가 죽였다 했다.

그런 온갖 누명을 쓰고 있는 와중에 아빠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빠의 일은 그런 것이었다. 이쪽에서 못하겠다고 갑자기 손을 떼면 의뢰한 쪽이 죽는. 상주 자리가 비어 있자 이모와 이모부들은 길길이 날뛰었고 나보고 당장 아빠한테 전화를 하라 했다. 난 엄마 때문에 충분히 슬픈데 그들 때문에 더 슬퍼졌다.

“아빠...... 외삼촌들이 아빠 왜 안 오냐고 난리예요......”

“아빠도 죽지 못해서 일하고 있다고 전해줘. 빨리 끝내고 갈게.”

처음 듣는 풀 죽은 목소리. 오고 싶은데도 못 오고 울면서 일하고 있을 아빠가 불쌍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혼자 빈 사무실에 앉아 무수한 도면들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아빠가 제일 불쌍해, 다들 아빠한테 그러지 마.’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가 장례식장으로 들어오자 누가 먼저랄 것 쫓아가 아빠의 멱살을 잡는 외삼촌 식

구들을 보며 속으로만 했던 말을 밖으로 뱉었다.

“진짜 그러지 마세요, 아빠한테 그러지 마세요, 아빠가 제일 불쌍한데.”

3일 장을 치른 바로 다음 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아침밥을 해 먹었고, 차 안에서 잠도 잤다. 금요일이었다. 수업은 하나였고, 학교는 하루쯤 더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기 싫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약한 모습 보이지 마.’

날이 화창했다. 5월은 늘 그렇다, 너무 화창하다. 친구가 왔냐며 꼭 안아주었다. 남자 친구가 보낸 긴 메일도 있었다.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 미안하다고 쓰여있었다. 끝까지 울지 않았다.

다음날 우연히 안방에 들어갔다가 침대에 남아있는 얼룩을 보았다. 쓰러진 엄마가 약을 그대로 토한 흔적이었다. 그날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며칠을 동이 틀 때까지 깨어 있으니 왜 안 자냐고 물었다. 무서워서 못 자겠다고 했다. 뭐가 무서운지 모르겠는데 무섭다고.

“귀신이 나와도 엄마 귀신이야, 무서워하지 마.”

아무도 엄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며칠 간의 침묵을 깨고 그렇게 아빠가 처음으로 엄마를 말했다.

엄마는 나랑 같은 화창한 5월에 태어났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같이 손잡고 5월의 숲 속을 걸으며 “뻐꾸기가 우네”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언젠가 그날처럼 말이다. 엄마는 뻐꾸기 소리를 좋아했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엄마를 안아준 적도, 사랑한다고 말해 준 적도 없지만, 같이 뻐꾸기 소리가 듣고 싶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가족과 떨어져 학교 기숙사에서 혼자 지냈다. 남자 친구와의 속상한 일들을 엄마에게 열심히 편지로 이르고 있었다. 부칠 곳 없는 편지에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연애가 왜 이렇게 어렵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날 후이에게 메일을 받았다.

‘엄마 생각 그만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

자기도 쪼그만 주제에 그런 글을 보내왔다.


엄마를 보내고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이쁘게 못 했다. 가족이 거의 주 타깃이었으나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입으로 내뱉고도 왜 이렇게 못 된 말을 하는가 놀라는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일단 그렇게 말이 나가고 나면 갑자기 확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자 다시 이쁘게 말해, 너 사실은 이러고 싶은 거 아니잖아.’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엄마가 떠나고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였다. 아빠는 기분을 내자며 나와 후이를 좋은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 본, 입구에서부터 돈 바른 티가 줄줄 흐르는 곳이었다. 레스토랑 안에는 테이블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하얀 돛을 올린 거대한 배가 있었다. 우리는 배 안으로 안내받았다.

아빠는 엄마의 죽음으로 기죽어 있는 우리 남매를 생각해 몇 주 전 혹은 몇 달 전부터 이곳을 예약을 해두었을 게 분명했다. 여기서 가장 비싼 걸 시켜 먹자며 혼자 신나 있었다. 나는 슬슬 속이 꼬이기 시작했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삐딱함이 가슴을 뚫고 나오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돈도 많이 못 버는 아빠가 큰돈을 쓰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일부러 우리를 생각해 뭔가 해 주려는 것도 싫었다. 우리가 비싼 식당에 밥 먹으러 다닐 형편인가. 크리스마스 그까짓 게 뭐라고, 평소 하지도 않는 짓에, 셋이 하하호호 화기애애한 분위기 같은 건 우리 집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도 안 하고 창밖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빠는 여기까지 와서 왜 그러냐며 웃어 보라고, 오늘은 돈도 펑펑 쓰고 신나게 놀자고 했다.

“그러니까 이런 데 오기 싫댔잖아!”나는 소리를 꽥 질렀다. 메뉴도 안 보고 웨이터에게 “이 집에서 제일 싼 거요.”라고 말했다.

아빠와 후이는 가장 비싼 스테이크와 소믈리에가 추천해준 와인을 먹고 마시면서 식사 내내 물만 마시는 내 눈치를 봐야 했다.

아빠가 애쓰는 게 싫었다고, 괜히 우리 때문에 돈 쓰는 게 싫어서 그랬던 거라고, 아빠를 위했던 그 이유를 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아빠의 노력이 나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는 하루가 보였지만, 되돌리기에도 늦었다 생각했다. 아빠는 그날 끝까지 화 한 번 내지 않고 시종일관 다정했다. 아빠의 마음은 분명 나보다 더 엉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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