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_가난한 학생과 초코파이

by 피츠로이 Fitzroy

나는 자주 배가 고팠다. 21살의 내가 그랬다. 먹을 수 없어서 배가 고팠고, 왜 먹을 수 없었냐 묻는다면 돈이 충분하지 못해서 먹을 것을 사지 못했다가 정확한 답이다. 나는 돈의 개념을 배고픔에서 배웠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그런 말을 했었다. 스무 살이 되면 성인이 된 것이고, 그때부턴 독립하는 거라고. 무슨 독립을 말하는가 했더니 경제적 독립이었다. 스무 살이 되면 스스로 돈을 벌어서 생활해야 하는 거란다. 용돈을 끊겠다는 (무서운) 소리다. 거기서 그치는 줄 알았더니 성인이 되면 집에서도 나가야 한단다. 혼자서 생활하며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고. 외국 애들은 지금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너 시집갈 때 아무것도 해줄 게 없으니 숟가락, 젓가락만 들고 가라는 더 엄청난 이야기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몇 번씩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게 뭔 웃기지도 않은 농담인가 귓등으로도 안 들었는데 스무 살이 되니 정말로 경제적 지원을 뚝 끊었다. 다행히 집에서 내쫓기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쓸 돈을 모았다.

빚도 꾸준히 늘려갔다. 너무나 고마운 학자금 대출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도 받았는데 아빠는 내 이름으로 집 담보 대출까지 받았다. 나는 대학생일 뿐인데 은행은 돈을 참 잘도 빌려줬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데 한 번 취직해 보겠다고 야심 차게 스터디 모임에도 가입했으나 주말 모임에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친구들은 주말에 자꾸 어디 어디 놀러 가자고 연락을 해왔지만 역시 한 번을 가지 못했다. 주말엔 무조건 아르바이트였다. 엄마 닮아 안 그래도 굵은 다리가 더 굵어진 것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였고, 이제껏 모르고 살다 처음으로 경험한 생리통이란 것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았다.

분명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학교 학생식당에서 파는 가장 저렴한 메뉴인 1,700원짜리 돈가스는 왜 사 먹으려고 하면 항상 300원 400원씩 부족한지 알 수가 없었다. 돈가스 대신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만 핥았다.

“유영아 배 안 고파? 아이스크림만 먹어?”

“응 안 고파.”

굳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아빠에게 따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집에는 나보다 더 일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아빠가 있었다. 본인의 미래를 예측하고 나에게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독립’을 이야기한 건가, 아주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아빠의 사정이 뻔히 눈에 보여 돈이 필요하다는 말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나 참, 경비 일도 나이가 많다고 안 시켜 준다야”

버젓이 본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정이 좋지 않자 어디 건물 경비 자리라도 알아보고 다닌 모양새였다.

집에 본인이 먹으려고 사다 놓은 아빠의 간식마저 없었다면 나는 쫄쫄 굶고 다녔을 것이다. 그 간식이 바로 초코파이다. 초코파이는 ‘정’이라고 빨간 포장지에 크게 한자로 쓰여 있었는데 내게 초코파이는 ‘밥’이었다. 집에 있는 초코파이(운이 좋으면 바나나도 함께)가 점심값을 아끼기 위한 나의 식량이 되었고, 갑자기 확 줄면 티가 날까 봐 가방에 두 개씩 밖에 못 넣어 다녔다.

초코파이 두 개는 충분한 식사가 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오후 수업이 아직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됐는데 배에서는 꼬르륵꼬르륵 요동을 쳤다.

‘아, 오늘도 이 배고픔이 어김없이 찾아왔구나.’

배고픔이 안 느껴지면 그게 더 이상한 날이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원치 않는 데도 그 어느 때보다 살이 쭉쭉 빠졌다.

뭔가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생기면 그 돈 안에서 어떻게 가장 많이 먹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맛보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편이 좋아서, 빨리 사지는 못하고 요리조리 메뉴만 한참 생각하다 보면, 자신이 너무 처량해져 왜 사나 싶었다. 절대 부자가 아니면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점심시간에는 주로 학교 건물 옥상에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자연스레 밥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게 좋았다. 같이 밥 먹자고 할까 봐 늘 노심초사하며, 수업이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건물 옥상까지 뛰었다. 거기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엄마 생각도 많이 했다.

빨리 취업해서 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꽤 열심히 공부했다. 조기 졸업 제도를 알아봤고, 남들보다 빨리 졸업해서 아르바이트생이 받는 (적은) 돈이 아닌 정규직이 받는 (큰) 돈을 받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생 때가 참 좋을 때지......”하며 어른들은 나를 아련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 나는 너무 싫어요. 가난해서 너무 싫어요.”

물론 속으로만 한다.


어느 날 ‘타임(TIME)’이라는 주간 영문 잡지사라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학교와 연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정기구독을 특별 할인 가격 30만 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학교 얘기가 나오니 꼭 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 내가 다니는 학교 이름을 대며 거기 대학교 학생들은 모두 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했으니.

뒤늦게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어 그거 취소할 수 있냐고 했더니 이미 처리돼서 안 된다고 단호히 거절당했다. 며칠 후 길고 긴 노란색 고지서가 다닥다닥 붙어 집으로 날아왔다. 눈앞이 깜깜했다. 아빠한테 왠지 혼날 것 같아 말도 하지 못하고,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라 얼른 고지서 뭉텅이를 숨겼다.

고지서를 들고 가서 매달 열심히 돈을 냈다. 아르바이트할 때도 초코파이를 먹어야 했다. 그 잡지는 매주 꼬박꼬박 우리 집 우편함에 꽂혔고 그걸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찌릿하게 아파 왔다. 한 문장 안에 아는 단어보다 모르는 단어가 더 많은 수준에 맞지 않는 잡지였고, 그것들은 내 방 한쪽 구석에서 탑처럼 높게 쌓여가고 있었다. 사회가 참 녹록지 않은 곳이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스물한 살. 당하고 살지 말아야지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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