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안 가리고 하고 싶은 거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내 아빠였다. 아빠의 이 고집과 ‘자유로운 영혼’은 출처가 어디일까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가셨기에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엄마가 아빠 옆에 있었다면 아빠는 ‘골드 넘버’를 찾아 한 달에 10만 원도 못 벌면서 집 유선 전화비로 매월 20만 원씩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 엄마가 아빠 옆에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초에 싹을 잘라 버렸겠지만(그전에 이혼을 했던가), 아빠의 두 자식인 나와 후이는 혼자된 아빠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내버려 두었다(뒤에서 열심히 욕을 하며). 그 결과 아빠는 우리에게 그거 하지 마라, 그건 아니다, 그거 싫다 등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가 한 적이 없으니까.
내 것도 아닌데 내 이름으로 날아오는 미납액에 대한 수많은 우편물들을 손에 쥐고, 엄마는 이 꼴 저 꼴 보면서 속 태우고 사느니 빨리 죽길 잘했네 생각도 많이 했다.
이 세상의 독촉이란 독촉은 다 싫었다. 요금 독촉, 세금 독촉, 월세 독촉, 카드값 독촉, 은행 이자 독촉 등 돈과 관련되어 ‘독촉’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건 경기 나게 싫어, 무조건 제 때에 마감 시한을 넘기지 않고 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사람이 나였다. 돈과 관계없는 일 독촉, 과제 독촉조차 싫어, 아르바이트나 학교에서도 늘 기한 전에 마무리 지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우리 아빠란 사람은 무슨 심보인지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를 끊겠다, 재산을 압류한다, 어쩌고 저쩌고 기분 나쁜 위협을 해대는 독촉장을 받고서야 (그전에 이미 무수한 전화를 받고) 음 어디 한 번 내 볼까, 그제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나랑은 정말 안 맞는다 생각했다.
아빠의 형편은 내가 22살이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무실 월세를 낼 돈이 없어 집에서 일을 하겠다고 모든 짐을 싸 들고 들어왔다. 안 그래도 좁혀서 이사 온 집이 더 좁아졌다. 거실 전체가 아빠의 사무실로 꾸며졌다. 아빠는 일이 없어도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었는데 나는 투잡이라도 뛰려고 열심히 일자리라도 알아보는 줄 알았다. 경비 자리도 들어가기 힘들다 그런 말을 꺼내길래.
그런데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빠는 ‘좋은’ 핸드폰 번호를 모으는 희한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골드 넘버’라 불리는 좋은 숫자로 조합된 핸드폰 번호를 갖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했다. 그 시작을 본인이 하는 사업을 위해서라는 명목을 댔는데 번호가 좋아야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고,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일이 들어올 거라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찜해 둔 번호가 결번이 될 때까지 그 번호를 쓰는 사람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고, 그 번호가 (드디어) 결번이 되면 통신사에 전화를 해 그 번호를 달라고 난리를 쳤다. 마음대로 일이 풀리 않으면, 좋은 번호는 니들 회사에서 미리 다 빼돌리는 거 아니냐며 노발대발했다. 고소하겠다는 둥, 높은 사람과 연결하라는 둥 행패를 부리다 아빠는 통신사의 블랙리스트가 되었고, 핸드폰 번호는 8개쯤 가지고 있었으며, 당연하게 핸드폰도 8개쯤 있었고, 미납 핸드폰 요금은 점점 불어나 영원히 내지 않을 기세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핸드폰이 본인 명의로 개통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자 나와 후이는 우리가 쓰지도 않는 핸드폰의 주인이 되었다.
010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7000번이 들어가는 번호가 가지고 싶다면 010-7000-0001번에서 010-7000-9999번 까지 전화를 돌려 보는, 긴 시간과 인내심이 전부인 그 일을 아빠는 하루에 7시간도 8시간도 했다. 암호처럼 숫자의 조합을 가득 써 내려간 A4용지가 내 전공 수업 교과서만큼 두꺼워질 무렵, 핸드폰 미납요금은 제쳐두고서라도 집 유선 전화 요금만 한 달에 20만 원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빠가 일이 없어서 미쳐가나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취업도 하지 않은 학생 신분의 나에게 핸드폰 번호를 바꾸라고 자꾸 바람을 넣었다. 좋은 핸드폰 번호 하나만 있으면 어떤 사업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사회적 지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무엇이 어떻게 됐든 그 무렵 나는 어떻게든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아빠 사업의 근황, 월수입, 우리 집의 경제 사정 그리고 그의 이상한 번호 수집(혹은 집착)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지 않았다. 우울한 건, 알고 싶지 않았는데도 살짝만 보아도 훤히 들여다보였고, 결국 우리 집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의 중심에, 아니 그 절묘한 타이밍에 내가 연루되고 말았다.
나는 학교 수업을 듣느라 집에 잘 있지도 않았는데 하필이면 내가 집에 있는 그 시간에,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은 현관문을 부술 기세로 발차기를 날리며 요란하게 등장을 알렸다. 이런 매너 없는 사람은 대체 뭐지 하며 나와 보니 상황은 이랬다. 아빠는 월세를 몇 달간 내지 못했고, 보증금도 월세에서 이미 다 까인 상태이고, 급기야 집주인이 집으로 돈을 받으러 찾아온 상황.
우리 집이 월세도 못 낼 정도로 최악이었나 슬퍼졌으나, 더 슬픈 것은 아무리 고함을 지르고 난리 부르스를 쳐도 우리 집에선 나올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돈이 없으면 나가라고, 밖에서 살아! 내 집에서 이러지 말고.”
“아니 돈이 있어야 주죠, 좀만 기다려 주세요.”
아빠는 나 보기 창피했을 텐데 그래도 주눅 들지 않고 마지막 ‘주세요’를 강하게 힘주어 말하며 과히 내공이 있는 사람임을 드러냈다. 나는 손발이 덜덜 떨렸는데 말이다. 약이 바싹 오른 건장한 두 남자가 갑자기 집안에 보이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아파트 복도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들을 말렸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돈 돼 보이는 거 이거 뭐야, 이거 옮겨, 이거라도 가져가자!” 하며 그들이 옮기기 시작한 건 집 크기에 비해 유난히 큰 화분이었다. 연두색과 초록색 중간쯤의 색을 띤, 대리석을 가장한 하지만 (매우) 싸구려였던 화분. 산세베리아가 심어져 있었다. 산세베리아의 덩치가 커도 너무 커, 그래서 당연히 화분도 같이 클 수밖에 없었던.
우리 집에 값이 나가 보이는 거라곤, 있어 보이는 거라곤, 그 산세베리아 화분 하나였다. 그들은 그걸 가지고 가서도 기가 찼을 것이다. 개똥 같은 걸 가져왔다고.
언제까지 돈을 내놓으라고, 안 그러면 안에 있는 거 다 갖다 버리겠다고 최후통첩을 한 그들이 떠나고, 나는 복도에서 맨발로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있는 나 자신과 마주쳤다. 더 울면 아빠가 곤란해질 것 같아 눈물을 닦았다. 끝까지 아빠에게 우린 왜 이렇게 벼랑 끝에 있는 거냐고 말하지 않았고, 끝까지 아빠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