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_외로울 땐 손톱을 뜯어

by 피츠로이 Fitzroy

엄마는 우리랑 따로, 어느 지방의 낡은 호텔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너무나 쌀쌀맞게 찾아오지 말라, 나와 같이 살 수 없다, 아빠가 싫다 말한다.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서서 우리는 손끝 한번 스치지 않고 멀어진다. 나는 슬퍼서 엉엉 운다.

꿈에서 깨면 베개는 눈물에 축축하고 힘이 바싹 들어가 있던 온몸의 기운이 탁하고 풀렸다. 몸이 덜덜 떨려왔다.

엄마는 꿈에서도 내게 상냥하지 않았다. 끝까지 손 한 번 잡아 주지 않는다. 죽어서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꿈은 자주 이어졌다. 아빠는 나를 처음 가 보는 어느 작은 도시에 데리고 갔다. 느낌이 나쁘지 않은 단정한 호텔에 들어가 여기서 하루 지낼 거라고 말한다. 갑자기 혼자서 나갈 채비를 하길래 어디 가냐 물었더니 엄마를 보고 오겠단다. 엄마가 이 호텔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 엄마가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아빠가 엄마를 보러 왔구나. 둘이 만나려는구나, 아빠가 엄마를 찾아오다니 둘이 사이가 좋은가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기뻐졌다.

그러다 곧 꿈에서도 이게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얼른 이 꿈에서 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를 만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나를 슬프게 하거나 울게 만드니까. 냉랭하기만 하고 손도 잡아 주지 않으니까. 또 그럴까 봐 두려웠다.

나는 원하면 스스로 꿈에서 깰 수 있었다. 자, 지금부터 이 꿈에서 깨는 거야, 하면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잠에서 깨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엄마가 죽은 게 아니라, 정말로 어느 한적한 동네의 허름한 호텔에서 혼자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태초부터 혼자였던 것처럼 쓸쓸하게 있을 것 같았다. 찾아가면 만날 수 있을 것도 같은 기분이었다.

집에 불도 자주 난다. 그 불 때문에 누군가 죽는다. 아빠나 엄마 중 꼭 한 명은 죽는다. 그럼 까무러칠 듯 비명을 내지르다 내 비명소리에 놀라 꿈에서 깬다. 온 혈관을 타고 흘러 다니는 또렷한 아픔이 느껴졌다.

악몽도 익숙해지면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가 보고 싶어 진다. 네가 이 뱃속에서 나왔다며 아랫배에 난 긴 수술 자국을 보여주던 엄마가. 뒤에서 안으면 볼록하게 나온 똥배가 푹신했던 엄마가.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고 들었다. 그래서 외로워져도 잠깐 나갔던 친구가 돌아왔구나 하고 외로움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나는 외로워도 아빠는 안 외로웠으면 좋겠고, 나는 외로워도 동생은 안 외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자리 잡은 외로움과는 어떻게든 지지고 볶아서 뭔가 해볼 수는 있는데, 남의 외로움은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위로를 해줘야 할지, 웃겨줘야 할지, 모른 척해줘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쭈뼛쭈뼛 눈치만 보게 된다. 가족의 외로움을 눈치채기 쉬운 게 큰 문제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었다. 밤에 집에서 오는 전화는 불길한 것밖에 없다고. 그날 밤 아빠에게 걸려 온 전화는 벨소리부터가 외로웠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빠는 외로웠던 것 같다. 술을 마셨고, 집에는 아무도 없고, 갑자기 딸 생각이 났고, 술기운을 빌려 전화를 했겠지.

내가 받지 않자 후이에게도 걸었다.

“최근에 청바지를 하나 샀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서, 맞으면 너 입으라고 전화했다.”하고 말하면 동생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빠가 평소 같지 않다는 것, 이상하다는 것을.

동생은 또 내게 전화를 하고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궁금하지도 않은 내 안부를 묻는 것 같다가 “실은 아빠한테 전화가 왔었는데......”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외로워지면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왜 외로웠나 근본적인 이유를 잊어버리게 됐다. 이왕 쓰는 거 잘 쓰고 싶어서.

아빠는 외로우면 뭘 할까 많이 생각했다. 나보다 30년 이상 더 살았으니 나보다 30년 이상 외로움과 더 많이 맞닥뜨렸을 테고, 분명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늦은 밤까지 잠이 안 왔다.

어릴 때 생각을 떠올렸다. 술을 잔뜩 먹고 내 방에 들어오던 아빠. 양손에 과자를 꾹꾹 눌러 담은 검은 봉지를 하나씩 들고는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뽀뽀를 구걸했었다. 나는 안 자고 있어도 끝까지 자는 척했다. 아빠의 외로움도 알고 있어도 끝까지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손톱을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엄마가 고쳐 놓겠다고 갖은 방법을, 식이요법에서 민간요법까지 다 동원해서 고친 버릇이었다. 손톱 뜯기에 열중하다 보면 너무 짧아져 손톱 끝이 아려왔다. 손톱 옆의 물렁 살까지 넘어가면 깊게 뜯어져 피가 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목욕탕에라도 가는 날이면 손이 불어 퉁퉁해지면서 뜯겨 나간 흉측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점점 내 손은 어디 내놓기 창피한 지경에 이르렀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혼자 앉아 손톱을 뜯는데, 한번 시작하면 열 손가락 끝날 때까지 멈출 수가 없었다. 제어가 안 되는 자신이 무서워지기 시작할 때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한 시간 내내 앉아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도 없을 때 폭식을 하고, 불안한 눈동자로 머리카락을 조금 잡아 집게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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