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_해달을 닮은 내 사랑

by 피츠로이 Fitzroy

그는 꼼데가르송 셔츠를 입고 나와의 첫 데이트에 나왔다. 홍대에서 화로구이를 먹었는데 고기를 올리며 그가 그랬다. 하트도 함께 데리고 왔다고. 겉옷을 벗으니 흰 셔츠에 빨갛고 작은 하트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너무 귀여웠다.

나의 직업이 대학 내내 공부했던 광고홍보에서 패션 분야로 급전향 하게 된 이유의 팔 할은 그 때문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나는 명품에 대해 알게 되었고, 패션에 (갑작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유명 디자이너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루이뷔통 로고가 거꾸로 찍힌 짝퉁 셔츠를 입고 다녀도 그게 루이뷔통을 카피한 제품인지조차 몰랐다. 그러니 당연히 창피한지도 모르고 입고 다녔다.

그는 제품 디자이너였는데 명품과 패션에 박식했고 스스로를 ‘물욕의 왕’이라 칭할 만큼 비싸고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다녔다. 그와의 대화에서 내가 잘 모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싫어, 보지도 않던 패션 잡지를 정독하고 명품 브랜드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세를 몰아 급기야 나는 잘 나가는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직을 때려치우고 저 멀리 스페인에서 들어온 패션회사의 판매직에 취직을 했다. 나는 사무직과 맞지 않는다며 박차고 나오긴 했는데 다시 시작한 일은 전 회

사 월급의 반도 되지 않았다. 남자 친구와 대등하게 보이고 싶어서 돈이 없어도 맛있고 비싼 음식들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고 다녔는데, 정작 출근해서는 점심 사 먹을 돈이 없어 맨밥에 소금을 친 주먹밥을 미리 만들어가 공원에서 몰래 먹고 오곤 했다.

어쨌든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명품이라 불리는 가방, 옷, 액세서리 등을 선물 받아 볼 기회도 있었고, 패션 분야에 (본의 아니게) 박식해져서 여기저기서 아는 척도 하고 다니고 그랬다. 나 자신이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것 같아 지금이 내 전성시대인가 착각도 했다.

고기를 굽다가 “내 마음이야.”하며 그의 가슴에서 툭 튀어나온 하트의 실체를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그때 꼼데가르송 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그게 브랜드 로고 인지도 모르고 그가 진짜 셔츠에 바느질로 박아 온 줄 알았다.

"오빠는 디자이너니까 당연히 그런 준 알았지이!"

그의 아버지와 자주 만났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셋이서 만나 식사를 했고, 같이 일본 여행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는 나와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갑자기 아버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나를 불렀던 것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나는 며칠간 까닭 없이 울적했고 바람을 쐬고자 일찍 나갈 채비를 했다. 분명 연애를 하는데 외로워지는 날들이 있었다.

일본 영화를 연이어 두 편 보았다. 오다기리 조가 나오는 「텐텐」과 아메리칸 쇼트헤어 종의 고양이가 주인공인 「구구는 고양이다」라는 영화였다. 영화관 맨 앞자리에서 영화를 봤다. 그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되면서 바뀐 행동 중 하나는 영화관의 뒷자리보단 앞자리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집중이 잘 돼서라고 했다. 나도 그 이유 때문에 좋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그는 내일 보자고 했는데 몇 시에 보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영화를 두 편이나 보고 나온 시간까지 연락이 없는 그를 책망하고 싶어 졌다. 아무런 반응 없이 몇 시간 전부터 죽어있는 전화기가 원망스러웠다.

‘어이, 너 작동되고 있는 거 맞지.....’

그는 아버지와 병원에 있을 거라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주 연락을 해주길 원하는 내가 이기적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그는 언제나 날 많이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다 혼자 결론을 내렸다.

-비도 오고 오지 말라 할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보고 싶어서

문자를 보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뛰었다. 병원 입구 쪽으로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다.

“참 이상한 데서도 데이트를 하네.” 그가 말했다.

이틀 동안 담배를 참느라 힘들었다며 나를 보자 긴장이 풀어져 담배 한 개비 빼서 물었다. 나도 얼른 뺏어서 한 모금. 나도 오래 참았다,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역시나 병원은 싫었다. 병원 특유의 냄새와 병원에 누워있는 아픈 사람들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을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여기까지 왔는데 인사라도 하고 가지.”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가길 권했다. 나는 복장이 불량하다, 이런 일이 익숙지 않아 수줍다 몇 차례 고사하다가 결국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어른을 만나는 것은 늘 떨리는 일이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생글생글 웃다가 마지막에 인사를 반듯하게 하고 나왔다. 다만 ‘빈손으로 와서 죄송합니다, 어서 쾌차하세요.’ 같은 병문안 온 사람이 건네는 통상적인 말들을 건네는 건 완전히 잊어버렸다.

날 보며 허허 웃어주시는 얼굴과 서글서글한 눈매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민욱이 잘 부탁합니다.”

병동을 빠져나와 오늘 본 영화가 어땠다는 둥 감상평을 조잘거리다, 영화에서 나온 일본어를 그 사람 앞에서 수줍게 말해보았다. 그는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었다.

오늘 아버지가 어떤 검사를 했고 결과는 언제 나오는지 등을 알려주더니, “나쁜 일 없길 바래야지”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냥 가만히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는 비가 완전히 그칠 때까지 함께 기다려 주다가 택시를 불러 나를 태웠다. 오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연락이 없던 그에게 든 서운한 감정은 언젠가부터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금방 오는 문자.

-고마워 오늘. 많이 보고팠는데 찾아와 주었고, 아버지에게 작은 생기 가득 안겨주고

집에 돌아오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잠이 오기 전까지 누워서 듣는 라디오에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가사.

정신없이 병원에서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며 마음이 다쳤을 그에게 나는 위로다운 위로 한 번 못했지만, 어쩌면 그는 내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 주지 않을까, 그런 바람이 들었다.


나는 새것도 바로 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어찌나 물건을 험하게 다루는지, 새 물건도 헌 물건도 늘 새것처럼 쓰던 그는 언제나 내 뒤치다꺼리하기 바빴다.

“유영아, 최근에 산 라이카 카메라 말이야. 바닥에 스크래치 났더라고, 케이스에 넣어 보관해 주면 더 좋을 것 같아.”

내가 사용하고 나면 늘 티가 났다. 게다가 어찌나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지 타고난 조심스럽지 못함에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랑 헤어지면서, 그것만큼은 왠지 내게 있으면 우리를 계속 이어주는 끈이 될까 싶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 사람 집에서 들고 나왔었다. 비싼 액세서리는 평소에 하지 않지만 이것만큼은 항상, 매일, 내 손에 끼워두고 싶었다. 그와 함께 번갈아 가며 꼈던 반지.

역시 내 것이 아닌 걸 탐한 벌일까, 아니면 떠나가는 사람에게서 내가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걸까, (나의 부주의 탓이 제일 크지만) 손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잠깐 빼서 옆에 두고는 그냥 나와버렸다.

다시 생각나서 찾으러 들어간 것은 서너 시간 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리 만무했다. 남들 다 찾는 핸드폰처럼 전화를 걸어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무슨 정신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이 사건을 “손 씻을 땐 반지를 빼고 씻어야지.”라고 가르쳐 준 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당장 쫓아가 너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냐고 성질을 부리고 싶었다. 내가 한 짓이라고 하고 싶지가 않았다. 물건의 값어치 보다, 그걸 가지고 그의 집에서 나오며 몇 번이나 마음을 쓸어야 했던 나 자신에게 미안해서.

며칠을 화장실에서 기웃거리다가 미친놈 같아 보여 그냥 놓아주기로 했다. 사람도 물건도 잘 놓아줘야겠다 생각했던 그 날.


첫 만남에서부터 헤어지기 한 달 전까지, 그러니까 거의 2년이 넘는 동안 그는 한 번도 멋지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헤어지기 한 달 전부터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 날까지는 이보다 더 최악인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는데, 마지막까지도 그는 나와 싸울 마음이 없었고, 화내고 욕하고 울고 물 마시고 씩씩거리며 두 발로 걸어 나온 것도 나였다. 나는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아팠고, 화가 났고, 잠을 잘 수 없었고, 어떻게든 치고받고 하고 싶었지만, 그는 여전히 나와 언쟁할 마음이 없었다. 질리도록 차분하고 평온하고 자상했다. 그는 그토록 끝까지 좋은 사람이었다. 가해자 주제에 피해자처럼. 내게 오지 않을 거면서 내 옆에 있을 사람처럼 말하는.


그가 말했었다. 나를 좋아하게 된 그 날, 내 뒤를 계속 따라왔었다고. 나는 핑크색에서 보라색으로 짙어지는

긴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고. 점심을 먹고 회사까지 걸어 들어가는 내내 내가 앞에서 걷고 있었다고. 치마가 바람에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내가 수줍게 작은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었다고. (나는 우렁찬 목소리로 카리스마 있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앉은 옆 테이블에서 듣고 있었다고. 논현에 있는 삼계탕 집에서 복날 기념 전 직원이 삼계탕을 함께 먹었던 날이었다고.

해달을 닮은 민욱이란 남자가 있었고, 그 때문에 해달이란 동물까지 좋아하게 됐는데, 나중에 해달을 보러 일본 어디에 있는 동물원에 같이 가자고 약속도 했는데, 우린 헤어졌다. 그리고 해달이란 동물은 잊고 살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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