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이렇게 모지라지......

by 피츠로이 Fitzroy

“관객들이 듣고 있고 모든 관심이 내게 쏠리면 틀리려고 해도 틀려지질 않아. 늘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있거든.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어.”
전설적인 그룹 퀸(Queen), 프레디 머큐리의 말이다. 이 대답에 나는 크게 놀랐다. 나와 정확히 반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썼던 글에서도 알 수 있지만 내겐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나는 지금 이토록 평범하지만, 내 안엔 특출난 연기력이, 특출난 음악력이, 특출난 표현력이 있어 언젠간 그게 드러나고 모두에게 주목받고 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주욱 해왔다. 정말 그런 게 내재되어 있는 건지는 검증받지 못했다. 다만 특유의 소심함 덩어리 그 자체였던 학창 시절에 발레부에 관심을 두기도 하고, 연극부의 오디션을 보고 짧게나마 트레이닝을 받았던 것들이 내가 남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시선을 끄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다.


중학교 때 내 큰 발을 본 무용 선생님이 “얘 너 무용해라.”, 꼭 날 찾아오라 했었다. 무용부에 너무 들어가고 싶었는데 볼링부에 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이 볼링을 하지 않으면 절교하겠다 해서. 볼링 할 때 큰 발이 창피해서 두 치수 작은 볼링화를 신었는데 아픈 발을 신경 쓰느라 공이 어디로 굴러가는지는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나는 가장 큰 발을 가지고 가장 적은 점수를 내는 아이였다. 유일하게 머리를 기를 수 있었던 무용부 학생들이 우아하게 똥머리를 만들어 머리 꼭대기에 얹고 다닐 때, 나는 항상 오른쪽으로만 뻗치는 귀 밑 3센티 단발머리를 신경 쓰며 그들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핑크색 토슈즈가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학교 축제 공연에서 발레도 추고 한국무용도 추는 무용부 친구들을 보면서 지금 저 무대에 내가 설 수도 있었는데, 아쉬움에 치를 떨었다.


고등학교 때 연극부 오디션을 봤다. 관객은 선배 7명이었는데 7천 명이 보는 것처럼 떨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개그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니 대체 내가 뭘 한 거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떤 의미의 울음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는 눈물이 흘렀다. 그 말도 안 되는 개그가 먹혀 나는 정식으로 연극반이 되었는데 선배들의 군기 잡기에 나는 오줌만 안 쌌지 항상 벌벌 떨며 학교를 다녔다. 전후방 50미터 안에 있는 선배를 확인하면 곧장 달려가 90도로 인사를 했다. 내 목소리가 학교 벽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정도로 크지 않으면, 될 때까지 몇 번이고 인사를 반복해야 했다.

점심은 쉬는 시간 10분 안에 먹어야 했다. 4교시 끝난 후의 점심시간엔 운동장에서 기합을 받고 이어서 짧은 발성 훈련을 받았다. 나는 정확히 4교시 수업이 시작하면서부터 슬슬 배가 아파왔다. 운동장에서 또 데굴데굴 굴러다닐 생각을 하니 열심히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연극부는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을 거라는 좋은 구실도 떠올랐다. 나는 선배들에게 탈퇴하고 싶다고 말하며 무서워서 울었고, 동기들은 나 때문에 얼차려를 받느라 울었다. ‘우리는 하나’라고 그렇게 외쳤는데. 그렇게 나는 낙오자가 되었다.

고등학교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연극부 공연이 있는 날, 멀리서 그들의 무대를 바라보며 오만가지 감정을 다 느꼈다. 난 왜 이렇게 모지라지......

전교생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조선시대 의상을 입고 나와 마당놀이를 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꿈에 자주 나왔다. 나와 같이 배를 꾹꾹 눌러가며 발성 연습을 하던 친구들은 나와 너무나 다른 곳에 서있는 것 같았다. 자책하고 싶지 않아 부러운 마음은 꾹꾹 눌러 담았다.


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무대에 서는 날이 내게도 있을까. 시간이 더 흐르고, 서른도 훌쩍 넘기고서야 비로소 ‘무대’라는 곳에 서 보았다. 어제였다. 공식적인 첫 무대. 감회가 남달랐다. 중학교 때부터 동경해 왔지만 오를 수 없었던 곳. 뼈저리게 실패했음을 곱씹으며 패배자의 타이틀을 감추고 살았던 지난 학창 시절이 보상되는 기분이었다.

하와이 춤인 훌라를 건성으로 배우다가 이미진 선생님의 멋진 무대를 보았고, 선생님이 내 발을 보고 날 찾아오라 하진 않았지만 내가 찾아 그녀의 할라우(학교)에 들어갔다. 훌라를 하면서 더 많이 웃었고 더 많이 행복해졌고 더 많이 좋은 이들을 만났다. 나는 집에서 따로 연습하지 않으면 박자를 따라가지도 못하는 몸치지만, 잘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그런데 심지어 무대에 설 기회까지 생긴 것이다. 무대 위에선 비록 만족할 만큼 잘하지 못했지만 옛 생각에 뭔가 벅찬 감동을 느꼈던 것 같다. 밤에 잠도 안 왔다, 생각할수록 좋아서.


언젠가 큰 무대에 서있는 나를 그린다. 거기는 진짜 무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주목이 내게 쏠려 있는데 나는 절대 실수하지 않고 멋지게 해내는 상상을 하루 종일 한다. 손목의 맥이 빨리 뛰는 그런 행복한 상상을 서른일곱 살, 인생의 반을 보낸 이 시점에서 하고 있다. 너도 더 멋있어질 수 있잖아. 너도 남들이 주목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잖아. 너도 푹 빠져서 열심히 하고 싶은 게 있잖아. 어쩐지 가슴이 간질거리는 그런 감정이 인다.
바보 같지만 행복하고,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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