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미안해. 내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by 피츠로이 Fitzroy

내가 사는 하남엔 검단산이 있다. 남편과 나는 검단산의 정상까지 오르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남들의 두 세배를 쉬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빠르게 그 산을 정복했나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의 페이스에 따라 자주 쉰다. 그러면 같이 산을 오르내리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잘 들린다.
5살쯤 되는 여자 아이는 엄마와 같이 하산을 한다. 나는 산을 타는 꼬마의 씩씩함이 자랑스러웠다.
“엄마 산은 벌레가 너무 많아서 싫어.”
“원래 산은 얘네들거야. 우리가 침입자지. 이렇게 멋대로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해야지.”
우리 엄마한테도 못 들은 이야기를 다른 엄마에게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랜 시간 내 마음에 머물렀다. 그래 산은 원래 그들 거지. 내가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거미, 잠자리, 벌, 지렁이 등이 숲의, 산의, 그리고 자연의 주인이지.
그 깨달음은 나를 많이 바꿨다. 여기저기 쳐진 거미줄에 오싹해지지 않고, 벌이 가까이 와도 호들갑을 떨며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뙤약볕 말라비틀어진 긴 지렁이를 갑자기 만나도 혐오스럽지 않게 되었다.
더욱 큰 변화는 길을 걸을 때, 자전거를 탈 때 땅을 자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너무 감사하게도 내가 사는 주변, 내가 일하는 주변은 꽃도 나무도 풀도 많아 개미들도 같이 많은데, 혹여 내 큰 두 발이, 내 자전거 바퀴가 그들을 밟고 갈까 봐 너무 염려스러운 것이다.
회사 점심시간에 벤치에 앉아서 쉬면 내 발등을 따고 올라오는, 작고 예쁘고 성실한 개미가 더 이상 싫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터전에 갑자기 내가 나타나 나도 모르게 그들을 깔고 앉거나 발로 뭉개는 것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살면서 이제껏 죽인 개미는 몇 마리일까, 로 시작한 오늘의 긴 산보.
나랑 남편은 다음 등산에선 조금은 더 빨리 정상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요즘 많이, (진짜) 많이 걷고 있으니까. 땅을 자주 보며 조심조심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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