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엄마랑 개천절에 결혼한 이유를 쉽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라고 했다. 진짜인지 엄마한테 확인은 못했다.
그들은 내게 각자의 결혼을 다르게 말했는데, 아빠 유연은 시집 못 가는 노처녀 자기가 구해줬다고 크으게 밑지는 장사였다 했고, 엄마 영애는 아빠가 (죽어라) 스토커처럼 쫓아다녀서 (억지로) 해준 거라 말했다. 삼자대면을 해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나는 니 아빠랑 못 살겠다는 영애의 말을 주기적으로 듣고 살아서 그런지 나는 그들의 결혼기념일 따위엔 관심이 없었고, 저렇게 치고받고 싸울 거 대체 왜 결혼했냐 한심하다는 마음으로 둘을 증오하곤 했었다.
그래서 사실 내 기억엔 그들이 결혼기념일에 케이크를 사거나, 꽃을 주고받거나, 스윗한 눈빛을 교환하는 하는 모습 같은 건 일절 남아있는 게 없다.
그런데 단 한 번, 그러니까 2020년과 같이 개천절이 추석 명절에 포함되어 버렸던 어느 해, 허름한 밤의 포장마차에서 둘이 (정확하게는 넷이) 잔치 국수를 나눠먹던 그 개천절만큼은 잘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명절에 늘 충남 홍성으로 갔다. 홍성의 큰집에서 친척들과 차례를 지냈다. 명절은 엄마가 큰엄마를 도와 죽어라 일만 하는 날이었고, 명절은 아빠가 다른 남자 어른들과 안방을 독차지하고 앉아 죽어라 뭘 시키는 날이었다. 물 떠 와라, 술상 내와라, 밥상 내와라 하다가 심지어 낮잠도 잤다.
나는 거실에서 엄마를 도와 몇 시간에 걸쳐 전을 부치며 안방을 노려봤다. 옷에선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고 엄마는 그래서 늘 여벌의 옷이 필요했다.
아빠는 엄마 생각은 정말 하나도 안 하나 봐. 어쩜 저렇게 부려먹지.
엄마는 차례상이 다 차려지고 나서야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얼굴에 분을 칠했다. 그 짧은 시간이 오기까지 엄마가 엉덩이 한 번 못 붙이고 발을 동동 거렸단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화장하는 엄마 옆에 달라붙어 있으면 희미한 분 냄새가 좋았다. 그러면서 저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 진짜 남자들도 뭐 좀 하세요!라고 소리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서너 번씩.
말끔해진 엄마가 사실 이 차례상을 차려낸 주인공인데 안방에서도 밀려나 문지방 밖에서 겨우 자리 잡고 절을 올렸다. 명절은 늘 아빠가 미웠다.
그런데 다른 날이 딱 한 번 있었다. 추석 전날이자 아빠 엄마의 결혼기념일이었던 날. 다음날의 차례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난 늦은 밤, 유연은 영애에게 잠깐 나가자고 말을 했다. 결혼기념일인데 뭐라도 먹자고. 감사하게 나랑 동생도 끼워줬다.
추석 전날 홍성의 거리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넷이서 슬렁슬렁 꽤나 걸어 나왔는데도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오렌지색 작은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홀리듯 걸어갔고, 작은 포장마차가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결혼기념일에 결국 가는 게 포장마차네, 하며 유연이 설핏 웃었다. 잔치국수 4개를 주문하고 메뉴를 구경하던 유연은 곰장어 구이와 소주를 시켰다. 나는 소주를 나눠 먹는 유연과 영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행복했다. 꿈같은 밤이었다. 영애는 오랜만에 잘 웃는 것 같았으므로. 넷이 쪼르르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은 달이 밝았다. 다정한 잔치국수 같은 밤.
엄마가 떠난 채 혼자 맞는 18번째 결혼기념일인 오늘 아침, 아빠한테 엄마와 결혼해 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이런 말을 지금까지 한 번도 못 했던 이유는 (오글거리는 것도 있고) 혹시라도 아빠가 쓸쓸해질까 봐 였다. 나는 부끄러워졌고 아빠는 답장을 안 했지만 조금 기쁜 하루가 되었다. 그들이 결혼한 덕분에 내가 오늘 존재하는 거니까. 2020년 10월 3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