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은 차고 넘쳤다. 그러니까 우리 5학년 1반의 10명의 여자 아이들 중 나, 영주, 성아, 연주, 수혜가 같은 사람을 좋아했으니 둘 중 하나는 내 경쟁자였다. 다른 반 애들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영재는 우리 5학년 1반의 10명의 남자아이들 중 한 명이었는데, 우리 반 10명의 남자아이들은 모두 배구부였다. 그들은 교실을 자주 비웠고, 많은 시간을 학교 강당에서 연습으로 보냈으며, 종종 시합에도 나갔다.
영재는 우리 반의 반장이자, 배구부의 차기 주장으로 언급되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운동이라고는 안 할 것 같이 하얀 얼굴에 호리호리 말랐는데 배구는 참 잘했다. 손가락이 참 길고 가늘었다. 그 예쁜 손으로 공중에 붕 떠 서브를 날렸다.
우리 여자들은 자연스레 배구와 친해져 손목에 시퍼런 피멍이 드는 줄도 모르며 두 손목으로 날아오는 공을 열심히 받아냈다. 영재가 가르쳐 주면 더 신이 나서 열심히 했고 멍은 일 년 내내 가실 줄 몰랐다.
영재를 좋아하는 우리 다섯은 늘 붙어 다니며 세상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체 영재는 우리 중에 누굴 좋아하는 걸까.
영재는 대체로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공평한 아이였다. 그리고 이런 인기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우리의 티 나는 구애 작전에 부담스러워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수업이 다 끝나고서도 집에 안 가고 해 질 때까지 운동장 그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날도 그렇다. 나는 그네를 열심히 굴려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을 때야 비로소 살짝 보이는 강당 안의 영재의 모습을 보는데 매일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통으로 된 창문이 위에만 달려 있던 강당은 파란색. 하얀 선으로 반듯하게 그려진 배구 코트에선 늘 땀에 흠뻑 젖은 영재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왜 집에 아직 안 갔어?”
나만 이러는 거 아닌 거 알면서, 그러니까 이유를 모르지 않으면서, 그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이미 주위는 깜깜했다. 몇 년 되었는지 모를 커다란 버들나무들 사이로 귀신이 나올 듯 무서운 운동장. 나는 대답을 잘 못했다. 영재 앞에선 늘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를 좋아하는 5명의 여자 아이들 중 내가 가장 영재 앞에선 말을 잘 못 했고, 아이들은 점점 영재가 좋아하는 건 분명 아름이는 아닐 거라고 나를 제외시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아이들과 고무줄을 하면 가까이 와서 고무줄을 끊거나, 내 뒤로 와서 이제 막 시작한 브라의 끈을 튕기고 도망가면, 나를 좋아해서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집에 가는 내내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영재는 나와 같은 5월생. 나는 영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지만 결국 가지 않았다. 영재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서 갈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갔던 영주, 성아, 연주, 수혜는 그때 영재가 내 생일 선물을 준비했었다고 나중에 말해줬다. 내 생일을 기억했던 영재는 끝까지 내게 선물을 주지 않았고, 영재를 맨날 기다리던 나는 끝까지 영재에게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영재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 인간이다. 중학생이 되어 버스에서 우연히 본 영재는 1년 전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친절하고 하얀 영재는 없어지고, 불량하고 못생긴 영재가 남았다.
와, 나 왜 쟤 좋아한 거야.
영재네 집 근처 문방구 평상에 앉아 걔가 언제 지나가나 기다렸던 2년의 시간이 쓰윽 지나갔다. 영재가 좋아서 영재네 누나까지 좋아지고, 영재네 누나가 다니는 영복여중에 가야지 생각하고, 영재네 엄마가 우리 엄마랑 친해지길 매일 기도했던 초5.
#첫사랑은안이뤄져서너무다행
#우리12살에만났는데38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