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 때 만나서 미안해

by 피츠로이 Fitzroy

스무 살을 넘기고 나서는, 돈도 없는 주제에 먹어 보고 싶은 것은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예를 들어 베니건스나 TGIF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 메뉴를 꼭 먹어 보고 싶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뮤지컬 팀의 내한 공연 같은 게 너무 가고 싶은 그런 식.
하지만 그런 것들은 늘 내 수준에서 비쌌기 때문에 수첩에 잘 적어만 놓곤 했다.
그러다 희생양이 되는 것은 나를 좋아하지만 아직 말하지 못한, 혹은 나를 좋아하지만 앞으로도 말할 생각이 없는 (몇몇) 남자들이었다.
밥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말했고, 만나고 싶다고 하면 내가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을 말했다. 그러면 그들은 밥 값을 내주고 미리 티켓도 구매해놨다. 나는 간혹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실은 낼 돈도 없었다. 다음번에 만나자 하면 뭘 먹자 할까 생각했던 염치없는 날도 있었다.

내가 돈 없던 시절에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날 먹이고, 나의 문화적 욕구를 꽉꽉 채워주던 그들은, 이제 결국 연락조차 끊긴 그들은, 날 얼마나 원망할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왜 나는 마지막까지 한 번을, 너무 고맙다며 밥 한 번 못 사준 걸까. 내가 싫고 밉고.

삼십 대가 되고,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부터는 내가 좋아하게 된 남자와 만나면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밥 값을 내고 술 값을 내고 모텔 값을 내고. 꾸준히 선물을 하고. 돈으로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마냥.
난 저액 연봉을 받는 노동자일 뿐인데 왜 이러고 사는 거니 자책해 봐도 어쩔 수 없었다. 주고 싶으니까. 사고 싶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래, 기꺼이.
그래도 내가 끝까지 안 좋다 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역시나, 물질적인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순 없지.
어느새 연락이 끊긴 그를 생각하며, 카드값으로 텅 빈 월급 통장을 동시에 바라보며 그 생각을 했다. 니가 옛날에 하도 얻어먹고 다녀서 그거 다 갚는 거라고. 좋게 생각하라고. 슬픈데 기쁜 기분.

그러니까 돈도 없으면서 자꾸 뭐해주는 게 짝사랑할 때의 나의 고질병인데, 이렇게 고백하고서라도 그들에게 용서받고 싶다. 내가 미안해하는 그 사람들에게.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맛있는 거 대접하고 싶은 사람들. #가난할때만나서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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