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백일홍

by 피츠로이 Fitzroy

지난 8월 중순, 벼르고 벼르던 담양에 혼자 가려고 했었다.
작년 초겨울, 인스타그램에 어떤 분이 명옥헌의 백일홍(배롱나무꽃) 사진과 글을 올렸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담양을 추가했다. 찐 분홍의 강렬함이 꿈에 나올 만큼 아찔했다. 이삼일 내내 눈에서 아른거렸다. 연못 위 가득 떠 다니는 붉은 꽃잎들이. 내년 8월에 꼭 가야지, 메모장을 켤 때마다 다짐했었다.

준비는 8월 초부터 시작했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켜 담양에서의 동선을 짜고, 블로그를 뒤져 맛집을 알아보고, 담양에선 버스를 타야 하나 렌트를 해야 하나 고민하며 매일을 설렘으로 보냈다. 담양을 다녀온 지인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그래도 당신은 명옥헌은 못 가봤겠지, 백일홍이라고 알아? 하며 속으로 은근 뿌듯해하며.

그런데.
여행을 며칠 앞두고 코로나가 갑자기 2.5단계로 격상되더니, 매일 뉴스에서 지금 여행 가면 큰일 나, 절대애애애로 움직이지 마, 제발 집에 있어줘,라고 애원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일 확진자 그래프가 높은 곳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나는 이틀을 뒤척이며 고민했고 결국 여행을 접기로 마음먹었다. (나 착한 국민) 힘든 결정이었다.

그래도 아쉬우니까 근처에서, 사람 없는 곳에서라도 백일홍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폭풍 검색을 했다. 국립 서울 현충원, 덕수궁 등이 나왔지만 명옥헌의 붉은 세계와는 레베루가 달랐다. 하지만 그거라도 보겠다고, 꼭 백일홍의 실물 영접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평일 쉬는 날 호기롭게 현충원으로 향했다.

태어나 처음 가본 현충원은 문이 반만 열려 있었다. 관리자 한 분이 입구에서 가족 친지의 방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 2.5단계 격상으로 출입 통제’라는 대자보가 눈 앞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어떤 일로 오신 건데요, 하는데 대답이 궁해 산책이요,라고 했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정말 들어갈 수 없단 말인 거죠? 안 물어도 될 걸 묻고 있었다.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나 그 배롱나무 꽃인지 뭔지 그거, 꼭 보고 말테야. 덕수궁은 어디서 내려야 하더라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입니다, 이게. 덕수궁의 백일홍.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선지, 나무가 몇 그루 없어서 그랬는지, 아무튼 좀 시시했지만, 그래도 2020년 늦여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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