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번 먹자

by 피츠로이 Fitzroy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밥 한 번 먹자’ 하는 쉬운 말로 시작해 실제로 그 자리가 이뤄지고 나면, 그 추억 하나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밥 먹자’는 말을 최대한 진심을 담아 하고 싶은데, 내뱉고 나면 흔한 말이 되어 버리는 데다, 가끔은 빈말 같기도 해서 속이 상한다.

한 번, 두 번, 혹은 열 번 정도 같이 밥을 먹었던 다양한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1983년부터 2002년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밥을 같이 먹었던 엄마를 생각할 때가 나는 가장 가슴 벅차다. 왜냐하면 나는 점점 엄마의 목소리, 엄마의 감촉 등을 잊어버리고, 엄마와의 추억 또한 잊어가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엄마와의 기억들은 대부분 함께 뭘 먹었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자주 가서 쫄면과 만두를 먹었던 ‘코끼리 만두’라는 식당이 안동에서의 기억이 아니라 수원에서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된 오늘,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는 내 기억에 의지 할 수밖에 없는데 나의 기억은 늘 오류 투성이라서 말이지. 잘 기억하고 싶은데. 안동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던 데고, 수원은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살던 데다. 다음 쉬는 날 십여 년 만에 안동을 가보려고 코끼리 만두를 찾아봤거든.

엄마가 데려갔던 엄마 친구가 한다는 식당에서는 묵사발이 가장 맛있었다. 정갈한 향토 음식점. 테이블 위를 가득 메운 도자기 접시에 조금조금씩 올린 반찬들을 하나둘씩 맛보며 엄마와, 엄마 친구의 대화를 들었다. 어른들의 이야기.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 그날은 무우지 추운 날이었다. 너어무 추운데 왜 때문인지 괜히 신이 나서, 소리가 나는 웃음이 새던 그런 날. 코트 목깃을 바짝 세우고 그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었다.

내가 엄마에게 소개해서 끌고 간 곳도 있다. 수다스러운 여고생들의 아지트.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어김없이 친구들과 몰려가던 곳. 김밥 우동 돈가스 만두 등이 있는 분식집인데 제일 인기 있는 메뉴는 비빔 만두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비빔 만두. 엄마와 같이 간 날도 그 메뉴를 시켜줬다. 물론 돈은 엄마가 낼 거 지만. 얇게 부친 만두피에 양배추 당근 김가루 오이 등을 버무린 것을 쌈 싸듯 말아서 먹는 메뉴다. 너네들은 이런 거 먹고 다니냐?, 엄마는 웃긴 건지 한심한 건지 피식거렸지만 열심히 만두피를 말아 입에 넣었다.

엄마가 막 무쳐 낸 뻘건 양념 게장을 같이 먹던 날은 막내 이모랑 이모부 먹여야 한다고 나를 많이 못 먹게 했고, 지난달 만들었던 김장 김치를 놓고 밥을 먹던 날은 김치가 망했다고 속상해하며 엄마는 거의 울고 있었다. 청각을 왜 넣었는지 너무 후회한다는 엄마가 너무 상심한 것 같아 어떻게든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김치 맛이 너무 이상한 건 사실이었다.
엄마의 필살기였던 총각김치에 큰 멸치를 넣고 푹푹 지져낸 메뉴가 올라온 밥상에서는 너무 맛있어서 앞에 앉은 엄마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 분명 공부 얘기였을 것이다. 근처 살던 둘째 이모가 와서 ‘너네 엄마 이거 하나는 진짜 잘한다니까’라고 인정해 주면 괜히 내 어깨가 봉긋 섰다.
엄마는 노릇노릇 구운 조기의 눈알을 빼먹으며 눈 먹으면 눈이 좋아진데, 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해댔는데 생선 살은 모두 내 밥그릇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만 눈을 좋아하고 나는 살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런 줄 알았지.

그래서 나는, 엄마와 밥을 더 많이 먹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보지만, 그건 뭐 하나마나한 이야기지. 것보다, 엄마와 함께 밥상에 앉아 음식을 나눠 먹던 기억들이 이렇게 잘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신기해서라도, 가족, 친구, 그 누구와도 함께 밥 먹는 시간을 소중히, 또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나중에 언제, 어디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그 기억이 팟, 하고 나타날지 모르니까. 아, 그 사람이랑 먹었던 카레, 그 카레를 먹던 표정, 그 카레를 먹으면 했던 얘기! 하고 잊지 않고 잘 떠올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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