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사랑을 느끼다
지금 보니 윤상은 또 되게 잘 생겼네. 그땐 돼지 같기도 하고 아저씨 같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그때라 함은, 내가 대학교 2학년 일 때, 그리고 윤상을 프랑스 파리에서 만났을 때를 말한다.
아빠 집에 왔다가 오랜만에 유럽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을 들쳐 보게 된 것이다. 여행 당시의 나는 작가주의에 빠져(꼴값이었다) 인물 사진은 일부로 안 찍고 다녔던지라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갑자기 뜬금없게 나타난 사람의 사진이 윤상이다. 푸른 잔디에 누워 사과를 통째로 와그작 깨물어 먹고 있는 그를 내가 찍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데이트를 했던 그날. 옅은 물색 스웨터에 검정 뿔테 안경을 쓴 그가 왜 잘 생겨 보이는 거지. 어째서. 그런데 나 이렇게 말 그대로 파리지앵처럼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이랑 처음 가보는 여행지, 그것도 프랑스 파리, 그 한복판에서 데이트를 다 해봤단 말이지. 갑자기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나는 한눈에 그에게 반하진 않았고, 네 시간 정도 걸쳐 서서히 그가 좋아졌다. 긴 긴 식사와 어딘가에서 샘솟기라도 하는 건지 줄지 않는 와인이 오간 자리에서. 파리에서 사촌 언니와 같이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날 그곳에 묵은 모든 한국인 관광객과,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 부부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유학생 윤상이 저녁에서부터 긴 밤에 걸쳐 지치고 않고 이야기를 나누다 생긴 일.
나뿐 아니라 윤상도 내게 호감이 있었음을 다음날 주인 부부를 통해 알았다. 그 부부는 우리가 윤상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 주고 있는데 저렇게 금방 다른 여자가 마음에 든다고 하냐고 내 앞에서 놀려 댔다. 나는 윤상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가슴이 콩닥 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상하게 커온 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낮에는 심지어 집에서 클라리넷 꺼내 불었다. 내 주변에서 클라리넷을 부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파리로 유학 갔다는 그 흔한 친척 한 명 없었다. 나는 그때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난생처음 타고 낯선 유럽 땅에 떨어진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사촌 언니 돈으로.
그와 데이트를 한 날, 오전에는 언니와 베르사유 궁전을 관람했다. 그러나 마음은 완전히 오후에 그와 만날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손바닥이 간지럽고, 입이 마르고.
나와 만난 그는 제일 처음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유창한 불어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주문했다. 아이스크림을 팔던 아저씨는 이야 너 불어 좀 하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눈치로). 이 남자, 이렇게 불어를 스윗 하게 해도 되나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노란 햇빛이 내려앉은 잔디에 철퍼덕 앉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주워들은 쯔쯔가무시병이 떠올랐다. 나는 잔디에 앉아가며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쯔쯔가 뭐시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은 없었다. 몇 년간 햇빛 따위 못 본 사람들처럼 태양을 향해 모두 드러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따라 눕자, 하더니 윤상이 누웠다. 그리고 너도 누워봐,라고 했다. 나도 눈을 질끈 감고 옆에 누웠다. 첫 데이트에서 이렇게 막 옆에 누워도 되는 건가 생각하며.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나눠 듣고 사과도 나눠 먹으며 그늘이 생기면 해를 따라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자유 낭만 여유 뭐 이런 단어를 표현한다면 딱 지금 같은 거겠구나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누워 있기까지 하니 세상이, 삶이, 낯선 파리가 아름다워 보였다.
언니와 내가 파리를 떠나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게스트 하우스를 나오던 날, 우연처럼 윤상도 1년 넘게 지낸 그 게스트 하우스를 떠나게 되었다. 다른 지역의 더 좋은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에 초콜릿을 한주먹 가득 쥐어주었다. 여행하면서 먹으라고. 가슴 한쪽이 찌릿, 했다. 그는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려면 아마 꽤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때까진 그게 연락을 잘 못 할 거라는 의미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다음 행선지였던 스위스에서 나는 맨날 맨날 윤상을 생각했다. 이미 혼자 그와 사귀고 있었다.
유럽에서 한 달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맨날 맨날 윤상을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그와 사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페이스북으로, 싸이월드로 가뭄에 콩 나듯 연락을 해왔고, 나는 우리가 사귀고 있는 게 맞는 건지 궁금했다. 한국에 있는 그의 엄마가 나에게 연락을 해서 옷을 사주고, 장어를 사주고, 따뜻한 차를 사주고 하니 나는 진짜 우리가 사귀고 있는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니까.
윤상은 프랑스에서 유능한 디자이너가 되었고, 윤상의 어머니는 더 이상 내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고, 윤상은 예쁜 한국인 아나운서와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하게 되었다, 까지가 내가 아는 사실이고 그다음은 모른다. 아저씨 같고 돼지 같은 이 새끼야, 어디서 내 맘 갖고 장난질이야, 하고 소리 내어 욕을 실컷 하고 나서부터는 그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윤상은 실제로 너무 오랜만에 사진첩을 통해 떠올렸지만, 사실 윤상의 어머니는 종종 생각이 났었다. 엄마 없는 내게 따뜻하게 대해준 존재였다. 그래서 나의 외로움을 이상하게 잘 내보였던 것 같다.
“아름이 오늘은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런 날이니?”
그 문자를 받은 날 생각했었다. 이 아줌마 평생 잊지 못하겠다, 내 맘 속 깊은 곳 뭔가를 건드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