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줄 알았는데 공개연애

by 피츠로이 Fitzroy

나는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배 부른 게 티가 나고, 거짓말하는 게 티가 나고, 관심 없는 게 티가 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티가 나는 건, 누굴 좋아하는지 감추고 싶어 하는 게 티가 난다. 나는 잘 감췄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좋아하는 이 앞에선 온 얼굴의 근육을 다 써서 환히 웃게 된다. 그건 누가 봐도 ‘쟤 왜 저렇게 좋아하고 있냐’ 하고 느낄만한 크고, 눈에 띄는 움직임인 거지. 나도 느껴지니까. 정신 차려, 바보냐, 하고 속으로 말하지만 그때도 계속 웃고 있으니까.

이십 대 때 남몰래 좋아했던 사람들. 사실 나만 몰래였지 세상 사람들 다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무릎 밑으로 힘이 잘 안 들어가 휘적휘적 걷게 된다. 눈을 둘 곳이 없어 눈동자가 헤맨다. 정면으로 바라보기엔 용기가 없고 딴 곳을 보기엔 아쉽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양손의 무게를 느끼며 손바닥을 쫙 펼지 살짝 주먹을 쥘지 고민하지만, 뭘 해도 결국 어색하다. 그의 앞을 지나가기 10초 전까지 어떤 말을 걸지 스무 번쯤 속으로 연습하지만, 나는 입도 못 떼고 스쳐간다. (당연히 상대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음)

이 과정을 두어 번 발견한 이가 있다면 나를 아주 조금 의심할 수 있겠지만, 내가 웃기 시작하면 빼박인 것이다. (드디어) 상대와 인사를 시작하고, 상대와 짧게 안부를 묻기 시작하면, 숨길 수 없는 웃음이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건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몸이 베베 꼬이는데 목과 허리를 다시 꼿꼿이 세워보자 하는 의지는 늘 성공하지 못한다.

내가 좀 덜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면, 영리하게 연애해서 상처도 좀 덜 받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의 궁금증.
작년까지의 나였다면 뭘 해도 티 났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싫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나도 좋다. 나는 내가 좋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래도 십 년도 전에 같이 일하던 직원이 “아니, 매니저님, 00씨랑 얘기할 때 왜케 좋아해요?”라고 물었을 때만큼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 얼굴의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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