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귀엽고 다정한 어린이였을 걸

by 피츠로이 Fitzroy

아빠의 둘째형은 내게 무서운 큰 아빠였다.


할아버지가 하는 한약방 한쪽에서 큰 아빠가 작두로 약재를 썰어 낼 때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한약방은 어째선지 늘 어두컴컴하고 기온이 다른 곳보다 낮게 느껴졌다. 큰 아빠도 어둡고 차가운 사람으로 느꼈다. 한쪽에서 냄새를 풍기며 시커먼 액체가 똑똑 떨어지면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한약방에서 안 보이면 술을 마시러 간 거라고 어른들이 말해서 알았다. 큰 아빠는 곧 터질 것 같은 시뻘건 얼굴로 어느샌가 돌아와, 충혈된 눈을 절대 깜박이지 않고 내게 물었다.

“그래서, (잠시 쉼) 너는 뭘 좋아하냐?”

나는 한 번도 큰 아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대답했다. 아니, 대답을 못했다. 취한 건지 화난 건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다가 자리를 빠져나왔다. 응, 큰 아빠는 너어무 무서워.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큰 아빠는 내게 돈봉투를 쥐어줬다. 한약방 소파에 같이 앉아 있었다.

“컴퓨터 한 대 사라.”

이모들은 그 일을 두고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돈이 차고 넘치는 양반이 겨우 너한테 컴퓨터 한 대 살 돈 밖에 안 줬냐고. 큰 아빠는 돈이 많은데 좋은 평가를 못 받는 사람인 걸 그때 알았다. 이모들이 남 말하기 좋아하는 건 원래 알고 있었지만.


큰 아빠는 알콜성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큰아빠를 누구도 이기지 못했는데 병이 나자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양손이 묶였으니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때리고 부수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가족들이 말했지만 나는 괜히 아빠 표정을 살피게 됐다. 슬픈 마음이 되었다. 세상엔 슬퍼질 일이 너무 많았다. 큰 아빠에게 욕창이 생겼다고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 침대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큰 아빠를 따뜻하게 느꼈던 건 콩국수를 얻어먹은 어느 날이다. 진짜 맛있는 콩국수 집이 있다며 나와 동생을 앞세워 식당으로 데려갔고, 우리에겐 콩국수를 시켜주고 당신은 막걸리만 마셨다. 콩국수가 먹어 본 적이 없어서 인지, 큰아빠가 무서워서 인지 정말 같이 가기 싫었는데, 갑자기 큰 아빠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콩국수가 맛있어서. 콩국수가 너무 맛있어서 그랬다.


올해 첫 콩국수를 먹다가 큰 아빠 생각을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어른이 아니니까 돈 문제, 재산 문제 그런 거 나와는 일절 관계없었는데, 큰 아빠한테 조금 더 귀엽고 다정한 어린이였을 걸, 조금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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