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언니 훌라 언니

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5 엄민정

by 피츠로이 Fitzroy

<안 궁금한데 좋은 인터뷰>


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5 엄민정




[특집 인터뷰 #2] 멋있는 언니 훌라 언니



한 달 에 두 번 훌라를 배운다. 훌라를 배운 지 4년이 지났다. 한 가지를 꾸준히 못 하는 내겐 기록적인 시간이다.

여러 가지 춤을 배우고 또 그만두길 반복했다. 처음 훌라를 선택했던 건 쉬워 보여서였다. 힙합 댄스나 탭 댄스 보단 그랬다. 그리고 할머니가 돼서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힙합을 추거나 탭댄스의 현란한 스텝을 밟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내겐 할머니가 돼서도 춤을 춰야겠다는 갈망이 있었다. 훌라는 할머니에게도 잘 어울렸다. 백발과 맨발, 주름진 손으로 무대를 꽉 채우는 훌라걸, 아니 훌라 할머니.


훌라 수업 학생들의 눈에선 구슬이 흐른다. 손 끝에서 빛이 난다. 뒤꿈치를 들고 움직이는 발도, 곡선을 그리며 크게 움직이는 엉덩이에도 망설임이 없다. 억지로 등 떠밀려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한뜻, 그러니까 음악에 몸을 맡기거나 반대로 몸에 음악을 맡기러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각기 개성이 뚜렷한 학생들 사이로 어느 날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가냘픈 몸 안에 숨은 이글이글한 불꽃이 슬쩍 보였다. 슬픔과 기쁨 다양한 감정이 얼굴 위로 흘렀다 사라졌다. 대부분의 학생은 한 가지 감정이 드러난다(힘듦. 아주 많이 힘듦). 연습을 많이 하는 티가 났다. 내게도 연습을 시켰다. 집에 가서도 꼭 연습을 하라고 자꾸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보다 더 했다. 이 사람 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훌라 이야기만으로도 채울 수 있겠다는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무엇일까, 이 열정은.






Part1 이 꽃을, 나의 춤을 아빠한테 보내는 거라 생각하며 췄지.



에이미: 살면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민정: 크게 두 가지가 생각나는 데, 반려견인 보송이에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 같은 반면, 에너지는 절대적으로 훌라에 많이 쏟고 있는 것 같아. 재밌는 건 훌라를 할 때면 항상 나 이것보다 더 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 더 배우고 싶고. 훌라 할 때만큼은 에너지가 남아돌아.


에이미: 맙소사, 엄청난 열정. 언니처럼 성실하게 수업에 오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요. 이미 배운 기초 수업까지 일부러 들으러 가고요.


민정: 내재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인데 훌라 하기 전까지 이거 분출하고 싶어서 얼마나 힘들었겠니.

들어 봐. 결혼해서 두 달만에 임신을 해서 애를 낳았어. 애는 무조건 엄마 손에 커야 하는 줄 알고 정말 열심히 아기만 돌봤어.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계속 있었어.

어찌어찌 아이가 크고, 정신 차리고 보니 내 나이는 40대 초반이고, 그간 나를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거지. 30대가 그렇게 훌렁 지나갔어.

그런 내가 훌라를 알았는데 새 삶을 얻는 것 같은 기분인 거야.


에이미: 춤을 출 때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세요?라는 질문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김연아 선수의 유명한 인터뷰가 생각이 나네요. 기자가 무슨 생각하면서 연습하세요 하니까 생각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라고 굉장히 싴- 하게 대답했던. 전 조금 다르게 해야겠어요. 춤을 출 때 무슨 생각이 드세요?로.


민정: 춤출 때 참 많은 생각이 드는데, 아빠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 재작년에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어. 생각보다 충격이 크더라고. 자주 보고 살지도 않았고 서로 애절하거나 따뜻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 슬플 줄 알았지. 그런데 안 그렇더라고.

아빠가, 아빠의 삶이, 불쌍하고 가련했어. 빚도 엄청 많았는데 고생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갑자기 그렇게 떠날지 몰랐으니까.

훌라가 스토리텔링 이잖아. 모든 곡의 뜻을 명확하게 알 순 없지만 꽃을 보내거나 사랑을 보내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것 같아. 훌라를 추면서 언젠가부터 아빠를 생각하게 됐어. 이 꽃을, 나의 춤을 아빠한테 보내는 거라 생각하며 췄지.


에이미: 사람들이 춤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대단한 몸치인데, 흥이 많고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 춤을 배우러 다녔거든요. 제 자신을 보고 춤을 좋아하는 것과 춤을 잘 추는 건 별개의 것 이란 걸 깨달았죠(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맞춰 몸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욕구가 있는 걸까요.


민정: 춤을 추면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지고 그걸 행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 아닐까?


에이미: 맞아요 그게 저예요.


민정: 자기도 몰랐던, 안에 숨겨져 있는 끼가 발산되는 것 같아. 그러면서 스스로를 좀 더 알게 되는 거지. 난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나 같은 경우는 정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어. 남만 맞춰주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 그러다 춤을 추니 그동안 풀어놓지 못하고 억눌려 있던 것들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어.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고 주목받고 하니까 당당해지더라.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나랑도 친해지는 거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가면서.


에이미: 집에서 밥만 하면 나에 대해 알 수 없는 거죠. 나는 밥을 참 잘해, 그 정도 알겠죠.

어렸을 때 한국 무용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한국무용은 아무 지식 없이도 훌라와는 너어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어떤가요?


민정: 한국무용은 한을 끌어내는 춤이야. 애환을 끄집어내서 표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

훌라는 평화롭고 희망차다고 느껴. 슬픔조차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순수함이 있다고 생각해. 춤추는 동안 꿈꾸는 것 같거든.

한국 무용은 또 사람 중심이야. 사람의 괴로움에서부터 시작이라면, 훌라는 그보다 더 광대한 범위라고 생각해. 드넓은 대지, 자연을 주로 말하니까. 그게 하와이겠지? 훌라가 주는 밝음과 자연에 관한 감상이 나와 잘 맞는지 늘 평온한 기분이야.


에이미: 한국 무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민정: 학교 때부터 원체 유연한 몸이었어. 마루운동도 한 적이 있었네 생각해 보니까. 중학교 때 예고 가겠다는 친구 따라 구경삼아 발레 학원을 같이 간 적이 있었어. 선생님이 나보고 대뜸 얘, 니가 무용해야겠다, 하시더라고.

엄마는 없지, 아빠는 빚에 허덕이고 도망 다니지 무용할 환경이 아니었는데, 하고 싶다고 단식투쟁까지 했다니까. 예고 나도 가겠다고. 분명 떨어질 거니까 시험이나 봐, 아빠가 그랬는데 딱 붙었어. 3개월 만에 된 거야, 무용 세 달하고. 그렇게 예고에 가서 한국무용을 선택했어.

나는 학교에서도 진짜 열심히, 성실히 춤추는 애로 유명했었어. 늦게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지독한 연습벌레였다고 생각해. 선생님들도 다 알 정도로. 민정이는 그냥 맨날 춤만 추는 애.

대학도 한국무용으로 진학해서, 졸업하고 공연도 몇 번 했었지.





Part2 신기한 걸 하네, 하면서 절대 나도 해볼래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거야.



에이미: 사람들에게 훌라를 춘다고 하면 주로 어떤 반응이 돌아오나요? 훌라가 한국에서 제대로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대중적인 춤은 아니잖아요. 훌라랑 타이션 댄스를 같은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고요.


민정: 일단 놀라. 그걸 가르치는 데가 있어?라고 질문이 돌아와(웃음). 코코넛 브라 하나 걸치고 야하게 추는 춤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신기한 걸 하네, 하면서 절대 나도 해볼래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거야. 너무 웃겨.

건강에 좋거나 다이어트에 좋다고 이야기해야 관심 좀 가져 주려나.


에이미: 훌라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저마다 처음 접하게 된 이유는 다르더라고요.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케이스는 영화를 통해서 흥미를 가지게 된 경우인데, 디즈니사의 ‘모아나’ 나 아오이 유우 주연의 일본 영화 ‘훌라 걸즈’를 많이 이야기하더라고요.


민정: 영어권 나라에 가서 아이와 함께 여름방학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하와이가 떠오른 거야. 야자수가 있고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고, 지상 낙원이겠다 싶었어.

하와이에서 어느 날 와이키키에서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 놀러 갔어. 농사지은 과일이나 수공예품 등을 파는 곳인데 그날은 맛있는 쏨땀을 사러 갔거든. 그때 파머스 마켓 한쪽에서 나이 든 아저씨가 우쿨렐레를 치고, 하와이안 할머니가 훌라를 추고 있는 걸 처음 본거야. 전통치마 무무를 입고, 지푸라기 모자에다 꽃을 달았는데 맨발이었어. 70 후반대의 쪼글쪼글한 할머니인데 표정은 아이 같고 너무나 편해 보이고 행복해 보였어. 이후로도 할머니의 아름다운 훌라가 계속 생각이 나는 거야. 나도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지.

이후로도 매 년 하와이에서 여름을 보냈는데 하와이 교차로 같은 걸 보다 보니 훌라 개인 레슨을 해주겠다는 사람이 있는 거야. 홀린 듯이 연락해서 하와이 쿠무에게 레슨을 받았어. 그게 인생 첫 훌라야. 세 번 받고 끝났지만 내겐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어디선가 훌라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찾다가 현재 우리 선생님인 이미진 선생님이 춤추는 걸 우연히 본거야. 내가 하와이에서 본 춤을 그대로 추고 계셨어. 훌라를 가르치는 곳이 몇 군데 있긴 했는데 내가 본 훌라랑은 좀 다른 것 같았거든. 이미진 선생님께 연락해서 체험 수업 한 번 해보고 본격적으로 지금의 ‘카 훌라 오 카 마히나히나’에 들어온 거지. 극적 만남이었다고 생각해.


에이미: 저도 훌라를 배우는 한 사람으로서 훌라가 대중적이지 못 한 게 항상 안타깝거든요. 사람들이 방송댄스보다, 사교댄스 보다, 훌라를 선택해야 하는 훌라가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민정: 나이가 들어서도 출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 나이가 먹을수록 더 멋있게 출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춤이 별로 없잖아.

또 마음을 정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춤이야. 자연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가 봐. 이해하기도 쉽고.

마음은 느긋하게 인생은 여유롭게, 그렇게 즐기며 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뭐든지 빠르게 움직이고 정신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말이야.


에이미: 훌라와 하와이는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데요. 저는 하와이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데, 춤출 때 ‘내가 지금 하와이에 있구나’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만큼 본토와의 연결고리가 탄탄하고, 훌라 음악 그러니까 하와이 음악의 특색이 두드러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와이를 많이 가시고 좋아하시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민정이 느끼는 하와이는 어떤 곳인가요?


민정: 모든 사람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하와이를 너무 좋아해.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로움 인가 봐. 아무도 나한테 신경 쓰지 않으니까, 남들에게는 1도 관심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내가 더 과감해질 수 있는 것 같아. 한국에서는 수군거리거나 손가락질받을 일 같은 것도 할 수 있고. 이 나이에 엄청 짧은 옷을 입어도, 속옷 안 입어도, 아무 거리낌 없는 곳. 해변가에 그냥 철퍼덕 앉아 있어도 되고, 그냥 그대로 잠들어도 되고, 남 신경 안 쓸 수 있는 곳.

현대와 자연이 공존해 있는데 그게 또 근사하게 잘 어울려. 앞은 너무 아름다운 태평양 바다인데 뒤에는 에어컨을 초강력으로 틀어놓은 맛있는 커피집과 식당이 있다는 것. 그대로 또 뛰쳐나가면 금세 바닷속이지.

자연의 모습도 우리나라랑 좀 다르니까 특별하게 느껴져. 꽃들이 많고, 아름답고, 향이 좋지. 나는 플루메리아가 참 좋더라. 바람 불 때도 좋고, 무지개가 자주 나타나는 것도 좋고. 내겐 너무 편안한 곳이야.



에이미: 본토 하와이의 훌라와 한국에서 배우는 훌라는 어떻게 다를까요?


민정 : 막상 하와이에서는 관광객이나 외국인들을 위해 훌라를 가리키는 곳은 많이 없구나 생각했어. 훌라 할라우(학교)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정말 겉핥기식으로만 배울 수 있었어. 문화 센터 같은 데서 배울 수는 있으니까.

나는 우리 선생님이 매우 전문적인 훌라를 가르쳐 준다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약간 자부심도 있어. 하와이에서 보다 더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카 훌라 오 카 마히나히나’ 인 것 같아.

2010년 미스 알로하 훌라 출신인 미카 선생님이 우리 미진 선생님을 가르치고 계시고 그런 미진 선생님이 또 그대로 우리에게 알려주시니까 영광스럽기까지 해.

하와이 안에서도 너무나 다양한 스타일을 훌라가 있다고 하니까 어떤 게 정답이고 우리가 배우는 것만이 맞는 것이다 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나는 미카 선생님과 미진 선생님의 훌라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 너무 만족해.





Part3 꽃 달아 주고 함께 춤춰주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에이미: 취미 생활, 그러니까 내 인생의 서브 활동이 살아가는데 참 큰 힘과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고 있나요?


민정: 훌라를 하면서 살아있다는 걸 느껴. 평범하게 집에서 살림만 하던 스스로에게 예쁜 하와이 옷을 입혀주고 화장을 해주고 커다란 꽃을 달아주면서, 여러 역할을 하는 민정 중에 훌라 하는 민정을 새롭게 탄생시켜 준거야. 너무 큰 즐거움이야.

예전에 공연했던 추억이 떠오르면서 감격스럽기도 하고.

인생은 꾸준히 뭔가를 배우면서 채워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 가보지 않은 나라, 해보지 않은 일, 먹어보지 않은 음식, 다 도전하고 또 배우는 거야.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고.

훌라를 만난 것 자체가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에이미: 훌라 하면서 작은 목표 같은 게 있을까요? 제 목표는 할머니 될 때까지 훌라 하고 할머니 댄서로 무대에 서 보는 것이에요. 새하얀 백발로 울퉁불퉁한 맨발로.


민정: 나를 훌라의 세계로 이끈 그 파머스마켓의 할머니처럼 어디선가 하와이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바로 곡에 맞혀 춤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게 수십 년 동안 훌라를 배워 온 사람의 내공이잖아. 배우지 않은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또 하나는 훌라로 봉사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

나중에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이 되면 할머니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꽃 달아 주고 함께 춤춰주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어딘의 연연’을 구독하던 작년 10월 훌라에 관한 글이 배달되었다. 나는 이 글을 같이 춤추는 ‘카 훌라 오 카 마히나히나’ 멤버들에게 전하고는 벅찬 마음에 잠을 설쳤다. 민정도 글이 너무 좋았다고 전해왔었다. 아래 그 글을 옮겨 본다. 훌라가 너무 하고 싶어 져도 책임은 질 수 없다.


처음에는 대여섯 살 된 아이들이 나와 율동 같은 훌라를 췄다. 무엇을 하든 너무 이뻐서 입꼬리가 저절로 귀에 걸렸다. 꽃목걸이를 두른 아이들은 제각각 훌라를 추었는데 뒤에서 반주를 하는 악사들도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도 관객들도 마음이 므흣해 그저 몸도 마음도 몽글몽글해졌다. 다음으로는 열 예닐곱살의 사춘기 소녀들이 나와 춤을 추었다.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그렇지만 모두 날 쳐다보게 만들 거야, 라는 마음이 춤에 드러나서 그또한 소중하고 미쁘기 그지 없었다. 다음으로는 이십대 무희들의 훌라가 이어졌다. 아아, 춤이란 역시 이런 것이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아름답다라는 말마저 무색한 아름다움을 볼 때면 찬탄과 경이와 어쩐지 조금의 쓸쓸함 같은 감정들이 겹치고 어우러진다. 이쯤에서 끝이 아닐까 했는데 오십대 즈음의 여자들이 등장했다. 춤은 풍성하고 여유롭고 윤택했다. 몸은 희노애락의 꽃밭이었다. 새가 울고 벌이 날고 나비가 나폴거리고 곤충들이 깃들여 사는, 땅이었다 몸은. 천변만화의 인생을 살고나니 이 한 생도 꿈임을 알겠노라고 춤은 말하고 있었다.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때 그녀가 나왔다. 지금까지 무대 뒤에서 노래를 하던, 고저장단으로 모든 무용수들과 합을 맞추던 할머니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백발에 무무를 입고 레이를 목에 건 그녀, 가 춤을, 추었다. 고요한, 춤이었다.

(…)

저 몸 속에 다 있구나 아이와 소녀와 청춘과 불혹이, 달과 별과 파도와 바람이, 애욕과 무위와 지향과 저항이 한 자리에 같이 있구나, 거친 것은 거친 것대로 여린 것은 여린 것대로 다만 아름다울 뿐, 격렬하면 격렬한대로 미세하면 미세한대로 파동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호흡, 그녀의 춤이 그려내는 울림 속에서 시름도 근심도 잠시 가볍다. 느슨한 공명이 수평선 끝까지 번져나갈 때쯤 그녀의 춤이 끝났다. 아이들과 소녀들과 처자들과 아낙들, 그날의 춤꾼들이 모두 나와 늙은 스승과 함께 알로하, 마할로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나도 화답했다. 알로하 나의 여자들, 세상의 모오든 여자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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