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6 손민정
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6 손민정
어렸을 땐, 좋아하는 것과 관심사가 무조건 비슷해야 서로 잘 맞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나와 많이 달라 보이는 아이는 친해져야 할 친구 목록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스무 살을 넘기고 사회의 쓰고 단 다양한 맛들을 경험하면서 사람들과 사귀는 범위는 더욱 편협해졌는데, 그때 깨달은 건 나와 비슷해도, 좋아하는 것이 닮은 사람도, 경우에 따라서는 가까워지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감성의 책과 영화를 똑같이 이야기하고, 내가 평소 틀어놓는 음악과 그가 트는 음악이 겹치고, 심지어 내가 잘 하는 것과 그가 잘 하는 것이 같기까지 한데, 어느 순간 그에게 다가가기를 멈추고 되레 사이에 간격을 만들려는 자신을 보았다. 나만 알고 싶은 것을 빼앗긴 것 같은 배신감인지, 아님 순수한 질투인지, 어쨌든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사람이 넓고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데 그 반대가 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지는 대목이다.
반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친해지게 된 사람하고는 깊은 내면의 감정까지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민정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민정의 제안으로 둘이 강남의 한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때 민정이 나와 감정의 온도나 결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위로받았다.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민정의 인터뷰 지를 만들어 나가는 건 의외로 쉬웠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봐 줬으면 하는 질문을 언니에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기에.
에이미: 2019년 정확히 11월 19일인데 민정이 프랑스 아를에서 보내준 엽서가 생각이 나요. 고흐의 그림이 그려진 엽서였는데 그때 그 엽서를 들고 생각했던 건 외국에 가서도 나를 떠올리며 엽서를 써 줄 만큼 나는 민정에게 소중한 사람이구나, 였거든요. 실제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웃음).
저도 외국 나가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엽서를 쓰는 걸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반가웠고, 또 생각해 보면 타지에서 일부러 엽서를 사고, 글을 쓰고, 또 우체국을 찾아가서 우편물을 붙이는 것이 꽤 번거로운 일임을 너무 잘 알기에 감동했어요. 그땐 어떤 마음이었던 건가요? 그 엽서를 저만 받은 건 아니겠죠?
손민정: 벌써 6~7년 된 것 같은데 일본인 친구가 크리스마스카드를 써서 보내준 걸 받은 적이 있어. 그런 걸 너무 오랜만에 받아본 거야. 요새 같은 세상에 손 편지가 흔치 않잖아. 내가 마지막으로 손 편지를 써본 게 고등학교 때로 기억하니까 말이지. 그때 감동해서 나도 어디 좋은 곳에 가거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는 누군가에게 써서 보내 봐야겠다 생각했어. 내가 기쁜 것처럼 받는 사람도 분명 기쁘겠지 생각이 들었거든.
여행지에 가면 그때에 느끼는 감정을 누군가와 셰어하고 싶어지잖아. 그래서 유독 여행하면서 사람들에 뭔가를 쓰는 것 같아. 너에게 엽서를 쓴 날은 프랑스 아를에 있었어. 개인적으로 아를에 대한 기대가 있었나 봐. 고흐에 기대어 반짝이는 테라스, 별이 흐르는 밤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갔던 것 같아. 그런데 막상 마주한 아를은 조금 달랐지.
그러다가 엽서를 써야겠다 생각하게 된 이유는 그날이 마침 핼러윈의 밤이었고, 죽은 자들의 위한 밤인데다, 만약 고흐가 온다면 아를에 오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고흐가 가지고 있는 빛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어.
나는 고흐가 신이 만든 빛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빛을 그려냈다고 생각해. 스스로 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흐가 그랬나 보다 싶고. 세상의 빛이 아니라 어쩌면 그건 고흐가 가진 빛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들고.
어쨌든 그렇게 해서 네가 엽서를 받은 거고, 같은 공방에 다니는 언니, 친구 몇 명에게도 보냈어. 같이 빛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백 프로 잘 전달됐는지 모르지만, 네가 행복했었다면 고흐의 빛이 너에게도 잘 전달이 된 것 같아 기쁘네.
에이미: 그때의 유럽 여행은 꽤 많은 나라를 들렀다 오신 걸로 제가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어디 어디 다녀오셨어요? 언니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요.
손민정: 독일로 들어가서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거쳐 돌아오는 일정이었어.
원래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장소는 스위스 어느 시골 마을인데 눈으로 루트가 막히는 바람에 못하게 된 거야. 그다음으로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한다면 그게 스페인이더라고.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성당이 보고 싶었고, 또 카탈루냐 지방에 대해 많이 보고 들었는데 직접 느껴보고 싶었지. 스페인을 가는 길에 남프랑스를 넣기로 하고.
우리 가족이 여행을 많이 다녔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꽤 예민하고 불안감도 많이 느끼는 편이거든, 그런데 이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아이들이 점점 편안해져 가는 게 보이는 거야. 그래서 여행이 도움이 된다 싶었어. 아이들이 커가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갈 때마다 성장해서 오는 느낌이 있어. 그게 좋은 경험으로든 나쁜 경험으로든 말이야. 나도 같이 성장하고. 예를 들어 나는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는 스타일이 아닌데 여행지에 가면 꽤 대담해지더라고. 덕분에 밤에 하는 좋은 공연도 보게 됐지. 즐기러 가는 게 목적이지만 결국은 배워서 오는 게 여행이다 싶어.
에이미: 제가 조금 더 궁금한 곳은 스페인이에요. 결혼할 때 남편이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을 너무 가고 싶어 했었거든요. 제가 우기고 우겨 베트남을 종단하는 신혼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을 가게 되었고 남편은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식중독 걸려서 녹색 똥을 싸고 다녔어요. 아무튼 말도 아니었어요, 배낭여행 같은 거 평생 안 해 본 사람이라...... 그때 미안한 마음에 결혼 5주년엔 스페인에 가자 했죠. 바르셀로나 가고 싶다고 했으니까. 올해가 5주년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갔어요.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드는데 스페인은 어떤 곳인가요?
손민정: 나뿐만 아니라 전체 가족들에게 다 물어봤어. 바르셀로나는 어떤 곳이었어? 그런데 모두 대답이 똑같았어. 이번 여행에서 바르셀로나가 제일 좋았대.
나는 누군가 스페인이 어떤 나라예요라고 묻는다면 ‘꿈을 이루는 도시’라고 대답할 거야.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꿈을 이뤄준 도시잖아. 가우디가 죽었어도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우디의 꿈을 이뤄주고 있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 100년이 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처음 들어갔을 땐 눈물이 너무 났어. 가우디가 정말 이 나라의 자연을 사랑했구나 느껴졌거든.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는 사람들은 꼭 가봐야 해. 울컥울컥하는데 아이들이 내 손을 꽉 붙잡아 줬어. 엄마 벌써 울면 안 돼, 앞으로 볼 게 많아, 하면서(웃음). 내가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너무 일찍 태어났다면 못 봤을 것 아냐. 가우디처럼 섬세한 사람을 만날 때 나는 너무 기쁘더라. 성당 안에서 가우디의 기운을 느꼈어. 마치 거기에 존재해 있는 사람 같았어.
또 스페인에서의 기억나는 에피소드라면 축구를 봤지. 미리 응원가도 외워갔어. 메시도 두 골이나 넣어주고,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하니까 너무 신나고 즐거웠어.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가 시차 적응에 실패해 가지고 경기를 끝까지 못 보고 나왔다는 거야.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까지 깨어있으니 너무 피곤했어. 스페인은 하루를 늦게 시작하고 늦게 시작한 만큼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나라더라고. 경기가 밤 9시에 시작했으니 말 다 했지.
플라멩코도 봤어. 갈 때도 공연장 주소를 잘 못 알아가지고, 주차를 엉뚱한 데 한 거야. 쇼는 시작하고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너무 힘들게 갔지. 끝나고서도 택시가 금방 안 잡히는 거야. 번화가까지 외딴길을 내려가야 했어.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네.
그런데 있잖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완벽한 여행이 아니고 이런 거 아닐까? 너무 기대했던 경기 관람을 포기하고 나온 기억. 밤에 고생고생하며 돌아다닌 기억 같은 거.
에이미: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유럽의 도시는 어딜까 궁금하고, 그 이유도 알고 싶어요.
손민정: 내가 좋아하는 곳은 특정 장소는 아니고 순간순간 만나는 지나가는 풍경이야. 지금도 내 머릿속엔 기억나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정확한 주소를 몰라. 앞으로 영영 못 갈 수도 있겠지, 그래서 더 소중한 걸 수도 있을 테고.
제일 먼저 우리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있었던 그 장소가 생각나네. 바르톨로메. 지금도 가끔 힘들 땐 그때 찍었던 사진을 찾아서 봐. 시소를 타면서 너무 해맑게 웃고 있는데, 이곳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마냥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아무것도 바랄 게 없겠다 생각했어.
독일의 어떤 장소도 있었어.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지 않아서 너른 지평선을 볼 수 있는데 해가 지던 어느 순간이 참 멋졌어. 곳곳에서 주황색 호박을 팔고 있었는데 그게 노을빛이랑 어울려서 되게 황홀했던 것 같아. 그때 아이들이 자고 있었어. 원래 아이들이 잘 땐 깨우지 않는 게 불문율이거든(웃음), 그래서 내려서 보진 못하고 아쉽게 아쉽게 지나왔지.
처음 유럽 갔을 때도 생각나.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하까지 국도로 6시간을 넘게 달려가던 길이었어. 중간에 애들이 번갈아가며 토하고 나나 애들이나 모두가 제정신일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체코에 거의 다다랐을 때 즈음 와, 갑자기 유채꽃 밭이 갑자기 펼쳐지는 거야. 그때도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멋있었던 것 같아.
에이미: 제가 유럽을 처음 갔던 건 대학생 때였는데 친척 언니 따라 해외를 처음 나가 본 거예요. 한 달 동안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을 열심히 다녔죠. 돌아와서 보니 아니 성당 사진을 그렇게 열심히 찍었더라고요. 가톨릭도 아니면서.
언니는 종교가 있나요? 전 종교는 없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성당이 좋아서 그게 뭐 숨길 일도 아닌데 대학교 때 남몰래(특히 아빠 몰래) 일요일마다 성당에 갔었어요. 붙잡혀 교리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았고, 당연히 세례도 안 받은 상태라 늘 눈치 보며 어정쩡하게 앉아 있다 왔는데,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그 시간이 눈물 나게 좋았어요. 그 노래 들으러 다녔던 것 같아요. eres tu라는 원곡에 개사를 해서 불렀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언젠가는 죽고 싶었는데 그때도 성당에 갔어요. 제발 우리 아빠 좀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해도 되니까. 나의 영혼과 가까운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성당이.
손민정: 나는 원래 천주교 신자였어. 천주교 유치원도 다녔고. 지금은 성당을 잘 안 나가긴 하는데 애틋함과 거부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eres tu 너무 좋지. 오래된 노래인데...... 중학교 때 합창부였는데 나는 거기서 처음 배웠어. 내가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KBS 클래식 FM에서 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 프로그램을 좋아해. 제3세계 음악을 굉장히 많이 틀어주거든? 거기서도 가끔 eres tu 가 나와. 그 노래가 성당에서는 ‘주님의 기도’지 아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시작하잖아. 주님의 기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이 부분이야.
종교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 마음의 종교는 그래. 그런데 지금은 그걸 많이 잃은 것 같아. 성당이 모두의 집이어야 하는데 정말 모두의 집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종교에 대해서 안 좋은 마음이 자꾸 생기더라고. 권위, 규율, 체면이 우선인 것 같아서. 용감한 사람이라면 고치려고 했겠지만 나는 홱 돌아서 버린 거지.
에이미: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고 계시잖아요.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서 학교 다닐 때, 아마도 세계사 시간의 언젠가 배웠던 것 같아요. 딱 그 정도의 지식을 가진 무지에 가까운 저 같은 사람에게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손민정: 스테인드글라스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고 내가 이야기해 주고 싶은 건 이거야. 스테인드글라스는 이야기라는 거. 애초에 시작도 이야기였고 지금도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만들고 있어. 당신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우리 아들이 그러는데 내가 성냥팔이 소녀 증후군이 있데. 그게 무슨 말이냐면, 나는 빛을 너무 좋아하거든. 집이나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지나가다가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그런 걸 너무 좋아해. 처음 홍콩에 갔을 때도 기억이 나는데, 높은 주상복합 빌딩에서 뿜어내는 불빛을 보면서 술 취한 사람처럼 마음이 두근두근했었어. 저 안에는 얼마나 행복한 이야기들이 있을까 생각하는 거지. ‘마이펫의 이중생활’이란 영화 혹시 봤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창에 시선이 있다가 롱샷으로 점점 멀어지거든, 불빛은 언제나 따뜻하고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너무 궁금한 거지. 아들이 잘 날 잘 본 거 같지?(웃음)
결국은 이야기로 풀고 싶은 것 같아. 작업을 하면서 어떤 이야기로 내가 만드는 물건이 쓰일지 상상해. 나는 공장의 기계가 아니니까 하나하나에 감정을 부여하게 되는 거지. 등을 만들 때는 일이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이 등을 켜는 사람을 생각하고, 간판을 만들 때는 지나가다가 간판을 보고 잠시 멈추게 되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그냥 전부 다 이야기 같아.
에이미: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손민정: 스테인드글라스가 좋아지게 된 건 순전히 마티스 덕분이야. 나는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성당 사진은 잘 안 찍었어. 마티즈 성당 이전에는 성당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 내게 스테인드글라스는 그저 권위주의적인 느낌 가득한 거였는데 마티스가 그 생각을 확 깨주었지. 마티스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너무 따뜻했어.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낀 거야, 남프랑스에 있는 로사리오 성당에서.
창 주제가 생명의 나무인데 혹시 본 적 있을까? 마티스가 말년에 그린 스케치도 있는데 단순하지만 힘이 있고, 또 엄마의 사랑처럼 따뜻해.
처음으로 스테인드글라스에 관심이 생겼을 때만 해도 사실 우리나라에 자료가 많지 않았었어. 배울만한 곳도 없었고.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우울증이 왔고, 남편과의 관계도 안 좋아졌는데 그때 본격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울 수 있는 공방을 찾아다녔어. 시선을 좀 밖으로 돌려야겠다고 생각했거든. 그걸 시작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네.
에이미: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손민정: 모든 것엔 기본기가 있잖아. 나는 스테인드글라스도 기본부터 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응용력이 좋으니까 금방금방 따라 하긴 하는데, 그냥 흉내 내는 것 말고.
많은 사람들이 빨리 잘 하고 싶어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오래 해야 돼. 사간을 들이는 만큼 탄탄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
가끔 우리 공방에 수업 오시는 분 중에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할 수 있느냐 묻기도 하는데, 내가 한 만큼의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다고 얘기해. 아니,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얘기해.
스테인드글라스를 시작한 지도 4년이 됐네 벌써. 한 발 더 가보자 한 발 더 가보자 하면서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 공방을 차리면 내가 조금 더 하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공방까지 열고.
에이미: 공방을 오픈하게 되면서 어쨌든 사업을 시작한 거라고 볼 수 있잖아요. 어려가지 어려움들이 있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던 거, 혹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손민정: 나를 드러내고 나를 상품화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 원래 SNS를 하지 않았는데 공방하기로 마음을 굳혔을 때부터 SNS를 시작했지.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사람들이 SNS를 통해 많이 검색하고 실제로 찾아오니까 할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이게 참 사람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아무것도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 ‘좋아요’가 이거 밖에 없네, 하며 신경 쓰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고.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고 앞으로도 큰 숙제이지 않을까 싶어.
에이미: 이 일을 하고 싶다 막연히 꿈꿨을 때랑 실제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또 많이 다른가요?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들도 있을까요?
손민정: 내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더라고. 나는 공방을 열면 사람들이 와아- 하고 몰려들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웃음). 수공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내 예상보다 적었고, 대우 또한 내 생각보다 많이 낮았어. 그러려면 내가 더 발전해야겠지? 내가 좋은 대우를 받으려면 안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있지, 매일매일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영업을 하면서도 그렇고 내가 생각했던 거와는 정말 너무 달라. 인생이 다 그런 거겠지?
요즘 트렌드는 가볍고 쉬운 거잖아. 스테인드글라스도 트렌드에 맞게 바뀌어 가야겠다 그 생각을 해 요즘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가야 한다고.
에이미: 저 같은 경우는 사업하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하는데 실행에 옮기지를 못해요. 지금도 그런 상태고.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 봤는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거예요.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다, 이건 분명 잘 될 거다, 그런.
그런데 아주 근래에 생긴 마음이 하나 있는데 가만 보니까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러니까 남일이 아닌 내 일을 하면 아무래도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거니까 더 열심히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지만 어떤 믿음 하나가 생긴 거죠.
언니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나요?
손민정: 없어. 그런 건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도 모르겠어. 아직도 늘 걱정이 많고 가끔 힘들 때나 수업 문의가 없거나 하면 불안해지기도 해.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내가 어떤 길을 가든 무얼 하든 결국 최종 목적지는 같겠다 하는 생각. 나 자신이 만드는 여정이니까 어떻게 가도 결과가 동일할 것 같아. 그러니까 주인공은 길이 아니라 나라는 걸 믿으며 살고 싶어. 나에게 더욱 집중하고, 내가 원하는 바에 따라 차근차근 나아가자!
에이미: 공방에서의 대부분은 시간은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들로 채워질 것 같은데 작업하는 것 외에 공방에서 하기 좋은 일은 뭐가 있을까요? 어떤 일들을 하세요?
손민정: 작업 외엔 주로 술을 마시는 공간으로 쓰고 있네(웃음). 혼자서 술 마시기 아주 좋은 공간이지. 내 할 일이 끝나고 혹은 하루가 끝나고 술 한 잔 마시는 게 큰 기쁨이야, 자주 그러고 있어. 혼술 하면서 깊은 생각에도 빠지고.
공방은 참 애증의 공간이야. 나만 아는 실패와 나만 아는 성장이 있는 곳. 오롯이 내 공간이라는 느낌이 있어.
참, 내가 혼자 술을 자주 마시는 장소가 한 군데 더 있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에 바람길이라고 불리는 곳에 벤치가 있거든. 거기서 맥주 한 캔 하는 것도 너무 큰 기쁨.
에이미: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 회사 소속의 에이미와, 집에 왔을 때 가족 구성원의 에이미, 대학 동창들 속의 에이미, 훌라 수업 안의 에이미는 다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지거든요. 다른 자아가 있고 다른 성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나’ 중에 민정이 가장 좋아하는 자아는 어디 소속이고 어떤 성격인가요?
손민정: 나는 어떤 역할의 무엇을 하고 있을 때든 대부분의 내가 좋아. 물론 가끔 자신이 싫을 때도 있고 너랑은 이제 끝이다 하고 싶은 순간도 있는데(웃음),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는 그냥 언제나 노매드야. 그래서 소속감 같은 건 너무 거창하고, 그저 매 순간의 나를 좋아할 뿐이야.
민정이 주변에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은 어떤 이들이까 궁금했다. 그는 대답했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다고. 나는 그게 민정 본인을 말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민정과 함께 있으면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민정이 나도 너무 소중하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