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30대

by 피츠로이 Fitzroy

39세 인생 통틀어 가장 좋았던 30대가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10년을 모아봤다.

(좋았던 것만 추릴 거니까 설마 부러워하진 않겠지. 길에서 엉엉 울면서 다닌 날도 많음.)


호주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지냈고,

일본에서 멋있는 애들과 일했고,

청담에서 거지처럼 살다가 부산으로 무작정 이사해 여행하듯 살았고,

일터에서 멋지고 예쁘고 잘 생기고 옷 좋아하는 직원들과 맨날 술 마셨고,

타투를 했고,

운전을 시작했고,

친구 만나러 태국을 1박 2일(진짜임)로 다녀왔고,

혼인 신고를 하고 베트남으로 신혼여행을 가장한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뇌종양 수술을 마치고 내게로 쏟아지는 빛을 보며 눈을 떴고,

유기묘였던 난코츠를 입양했고,

유야와 끝없는 산책을 했고,

자전거를 아주 많이 탔고,

하남 미사 행복주택에 당첨됐고,

훌라를 시작했고,

엄마 없이 17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갔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야구장에 갔고,

가고시마에서 일본 훌라 팀들과 공연을 했고,

아빠에게 이제껏 실은 아빠를 너무 싫어했다고 이야기했고(인연 끊고 살 각오로 말했는데 결국 사이는 더 좋아졌고 나는 아빠를 용서한 것 같다),

그동안 마음에 누르고 있던 이야기들을 다 끄집어내 책을 만들었고(신기하게도 다 쓰고 나니 늘 쫓아다니던 깊은 우울과 슬픔이 사라졌다),

채식과 환경과 기부에 관심을 가졌고,

부족할 때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나온 10년간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반복적으로 찾아오던 불안한 감정과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눈물이 조금씩 걷히고, 평온함 속에서 만족과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나이가 먹어서 인지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된 건지 그건 모르겠다. 많이 이상한 사람이던 내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되어서 기쁘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30대는 충분히 훌륭하다. 조금 이상한 사람이 괜찮은 사람으로 변하길 기대해 본다, 나의 40대는.


#삶은선물이다

라고 누가 그랬음. 책에서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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