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11 이어라
-상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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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어라는 주변 사람을 잘 챙긴다.
이어라: 음, 동의합니다. 남들에 비해 꽤 그런 편 같아요. 남을 챙겨주는 걸로 기쁨을 얻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에이미: 대학 때 같은 동아리 동기들 생일을 다 챙기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관심과 부지런함이 (매우) 필요한 일이니까.
이어라: 항상 날짜를 적어놓고 있었고, 열두시 땡 하면 챙겨주는 걸 좋아했죠. 여유와 여력이 있었으니 했겠죠, 아마 당장 먹고살기 힘들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죠. 저도 애들도 나이 먹고 하니까 어느 순간 내려놓긴 했거든요.
세 번째, 이어라는 다양한 재주가 있다.
이어라: 음, 매우 잘못된 생각이네요. 제가 소품 숍 하면서 정말 금손 작가님들의 작품을 너무 많이 봐서요. 재주가 있는 사람이란 그런 분들을 말한다고 생각해요.
에이미: 뭐든 뚝딱뚝딱 다 해내는 느낌이 있었는데요. 그림도 그리고, 물건을 만들기도 하고. 그게 부러웠고요.
이어라: 사실과 다릅니다. 그나마 아주 작은 재주가 있다고 한다면, 최근에 한 생각한 건데 남을 돋보이게 해주는 편집자나 프로듀서 같은 기질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나 혹은 물건을 빛나게 하기 위해 뒤에서 서포팅 해주는 역할이요.
네 번째, 이어라는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다.
에이미: 사람들이 모이게끔 마음을 조종하고 있나요?
이어라: 생판 몰랐던 도시에 와서 일을 하다 보니 붙임성이나 사교성이 없었다면 여기도 지역 사회이기 때문에 굉장히 고립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다행히 강점 중 하나가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거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서요. 노력하는 거면 힘들 텐데 사람을 좋아해요. 이 사람은 당연히 좋은 사람일 것이다,라는 전제하에 스스럼없이 친근하게 다가가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네요.
에이미: 어렸을 때부터 그랬나요?
이어라: 20대 때는 엄청 노력했던 거 같아요, 사람을 다양하게 사귀려고요. 막 혈안이 돼가지고 다녔어요. 학교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죠, 회사 생활하면서도 주말에는 홍대 프리마켓이나 홍대 예술 시장 같은데 자원 활동도 나갔죠, 그런 식의 활동을 쉬지 않았어요. 로모그래피 동호회도 했구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인맥을 맺는 게 재밌어서 했어요. 힘든데 자원 활동 나가서 굳이 청소하고, 억지로 하라면 못하죠. 사람 사귀는 게 좋고 거기서 활력을 느끼니까, 직장에서 온 스트레스를 거기서 다 풀었던 거 같아요.
에이미: 옆에 있는 사람들 다 좋은 사람인가요?
이어라: 저 좋다는 언니 동생들이 많아요. 동성들에게 인기가 많죠. 철이 없어 보여서 그런가 저를 보면서 자기 30대가 덜 두려워졌다고 말해준 동생이 있는데, 솔직히 기분 좋았어요. 하고 싶은 거를 다 하고 사는 게 보인 거 같아서.
또래 자영업자 사장님들과 많이 친해졌는데 일 끝나고 한 번씩 같이 회식하고 그래요. 각자의 힘듦을 이야기하면서 고충도 털어놓고 또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고, 좋은 시간이에요. 아이디어 있으면 공유하고.
다섯 번째, 이어라는 항상 밝다.
이어라: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은 편에 가까워요. 단편만 본 것 같아요.
에이미: 평소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일할 때도 그럴 거라 생각했고요.
이어라: 고객과의 관계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스트레스받아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소리 하는 걸 싫어해서 트러블이 안 생기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도 가끔 안 좋은 피드백을 받게 되는 때면 스스로 엄청 자책하는 스타일이에요.
에이미: 살면서 가장 어두운 시기는 언제였나요.
이어라: 인더로우를 막 오픈하고 나서였나 봐요. 결혼을 하게 되면서 제가 하고 있던 소품 숍을 접고 남편의 가구 만드는 일에 함께 뛰어든 건데, 그땐 금전적으로 수익성이 더 높을 것 같은 걸 택한 거죠. 남편도 혼자 하긴 힘들다고 했고요. 그런데 내가 너무 사랑했던 일과, 공간을 딱 접고 나니까 갑자기 우울함과 무기력증이 찾아왔어요. 같이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이해는 하는데 심리적으로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고, 이 공간에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이 느꼈어요. 소모품 같고 시간 낭비하고 있는 기분이고.
에이미: 주변 사람들은 어라의 힘듦을 눈치채지 못했나요?
이어라: 남들은 이제 어라 좀 편하겠네,라는 반응이었어요. 남편이 일하고 옆에서 조금 서포트해 주면 되니까,라고 말했죠. 업무 공간도 훨씬 커지고 좋아 보인다고 얘기했어요.
에이미: 자기가 하던 일을 접는 것에는 어쨌든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극복했나요?
이어라: 안 좋은 일이 있을 땐, 더 최악을 생각하면서 이 정도인 게 얼마나 다행이야 하고 생각해요. 또 빨리 털어내려고 하고요. 어차피 상황은 이렇게 됐는데 혼자만 계속 못 받아들이고 있으면 좋을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빨리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보는 것엔 남보다 두드러지게 뛰어나요. 덕분에 그 시기도 잘 넘겼어요.
여섯 번째, 내 안의 즐거움 혹은 끼를 발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에이미: 가무를 사랑하는 흥 난 모습의 어라를 자주 봐서, (특히 노래방에서) 저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놓을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러웠어요. 부끄러움도 없는 것 같고요.
이어라: 저 생각보다 소심하고 내성적인데. 사람도 많이 가리고.
에이미: 앞에 나가서 노래 한 곡 불러!라고 말하면 절대 빼지 않고 언제든 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요.
이어라: 편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거리낌 없이 이것저것 막 나오는 것 같아요. 색다른 모습도 나오고(웃음). 그런데 조금 불편하거나 어색한 사이에선 절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요. 끼어도 되겠다 싶으면 나서고 아니면 얌전 빼고 앉아 있어요.
에이미: 저는 보여줘도 되는 사람이었군요. 은근히 기쁜데요.
이렇게 제가 골라온 여섯 가지 특성을 하나씩 다 짚어봤어요. 어땠나요? 제가 잘 못 본 부분들도 보이네요.
이어라: 신기한 게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해 볼수록 저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어렵네요.
다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강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아쉬운 소리 잘 못하고, 결정도 스스로 잘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고요.
에이미: 이렇게 비즈니스를 운영해 나가고 있고 분명 일을 하는 중간에 결단력을 발휘해 내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이어라: 그랬으면 좋겠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일단 결정을 내리면 그걸 어떻게든 끌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싶거든요.
에이미: 어라의 40대가 기대가 돼요, 저는.
이어라: 40대엔 더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많은 걸 소유하지 않고요. 원래도 물욕이 없는 편이라 뭔가 소유했을 때의 기쁨은 그다지 없어요. 진짜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들은 단순하고 소소한 부분이라서요. 40대엔 내려놓기가 개인적인 목표. 그리고 기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그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지나가다 본 유튜브 방송에서 MBTI 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한 게스트가 이렇게 답했다. LOVE 입니다. 앗, 신선하고 로맨틱해서 좋았다. 어디선가 꼭 따라 해 보고 싶다.
나의 MBTI는 ENFP-T 다. 외우지 못해서 지금 핸드폰 꺼내 저장해 둔 사진을 찾아봤다. (혹시나 누가 물어볼까 봐 저장해 뒀는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네.) '재기 발랄한 활동가'라는데 세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어라와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사람들이 MBTI를 좋아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나랑 비슷한 지점을 찾고 싶은 게 아닐까. 그리고 공통점이 보이면 우리가 비슷하다는 것에 안심하고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 나 같고, 친근하니까.
어라와의 인터뷰가 그랬다. 가끔씩 속으로 ‘와, 이건 나랑 똑같아' 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더 무서운 건 뭔지 아나. 어라의 MBTI가 ENFP 였다. (나랑 같다고요)
엔딩송으로 고등학교 시절 아침 등굣길에 성모 오빠 목소리로 매일 들었던 '가시나무 새'의 한 문장을 옮겨보겠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MBTI로 규정짓기엔 너무 우주적인 나를 위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