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궁금한데 좋은 사람 #11 이어라
MBTI로 사람의 성격을 평가하는 게 요즘 대한민국에서 현재 제일 재밌는 일인가 보다. 나는 의외로 이것에 시큰둥한 편이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딱 4가지 유형으로 나누더니, 이번엔 조금 구체적으로 들고 나왔네 싶다. 나는 (몹쓸) AB형이라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잘 놀라게 했다. 역시 또라이였어..... 하면서. 내게 MBTI는 IQ 검사나 수능 모의고사 같은 느낌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MBTI 검사하던 날, 검사지를 받아 여러 장 넘기며 지문을 읽었고 OMR 카드를 작성했었다. IQ 검사는 내가 천재가 아님을 깨닫게 했고, 수많은 모의고사들은 내가 (아직도) 고3 임을 깨닫게 했다. 이러니 MBTI가 좋을 리가.
이 연말을 보내며 나의 주변 사람들은 신년 운세, 신점, 사주 등을 심심치 않게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어느 날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신년운세를 심심풀이로 들여다보니 2022년 새해는 연애 기운이 상승하여 주변에 남자가 꼬이고 심지어 상대도 나에게 큰 호감을 가질 것이라는 눈이 번쩍 뜨일만한 내용이 있었다(결혼 6년 차임). 다른 건 다 기억이 안 나고 이게 하나 기억에 남아 그날부터 자꾸 꿈을 꾼다. 남자들이랑 연애하는 꿈을. 연예인도 나오고, 낯선 남자도 나오는 데 다 멋있다. 나는 슬그머니 믿어버리고 만 거다. 2022년에 뭔가 일어나리라.
내가 성격 테스트를 경계하는 이유가 이거다. 믿어버리고 만다는 것. 나를 이렇다 하고 규정지으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어버리고 만다는 것. 그리고 (일부로도) 똑같이 행동한 다는 것.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착하다'였다. 너는 왜 이렇게 착해? 웃어 봐. 이런 말을 수없이 들었다. 집에선 왈가닥이었고, 고집 센 애였고, 조심성이 없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아무튼 착하다고 하니까 내가 착한 앤 줄 알고 착하게 굴었다. 웃으라면 웃고, 해달라면 해주고. 그러다 대혼란이 온 거다. 나는 누구지, 내 성격은 뭐지, 내 주위에 있는 이 친구들은 진짠가. 나를 놀리나. 내가 우습나.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도 싫어하는 말이 '착하다'다.
궁금해졌다. 내가 오해하는 친구는 없는지. 오래된 친구 L은 항상 명랑하고 밝은 아이로 통했다. 그런데 L 본인도 자신을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L은 또 남의 흠을 들추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도 험담이 너무 하고 싶었던 적, 있지 않았을까?
MBTI보다 더 흥미진진한 세계관 탐구. 그를 앞에 앉히고 질문해 보았다.
배경음악은 김국환의 타타타. 내 맘대로 개사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
에이미: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멋진 말로 소개해 주세요.
이어라: 맞춤양복을 짓는 테일러처럼, 고객의 니즈에 맞춰 정성 다하는 목수 남편과 함께 고객에게 가구를 소개하고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어라입니다. ‘멋있게’가 참 힘드네요.
에이미: 좋은 가구를 많이 쓰시겠어요.
이어라: 가구를 만드니까 집에 가구가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가지고 있는 게 없습니다. 미니멀리즘으로 살고 싶기도 하고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해야 하나, 어디선가 사진사가 자기 가족사진은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 크게 공감을 했어요.
에이미: 원목가구 중에 어라가 가장 좋아하는 가구는 무엇인가요?
이어라: 테이블을 꼽고 싶어요. 요즘 집엔 거실에 TV를 놓으니까 가족끼리의 대화가 단절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테이블은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족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따뜻하고, 또 원목 가구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에이미: 전주에 너무 오랜만에 왔어요. 전주에 뭔가 특별한 게 있나요?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어라: 사람들이 굉장히 놀라워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전주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어요. 트위터로 알게 된 지인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으로 인해 이렇게 지금까지 전주에 살고 있는 거예요. 20대 때 인디밴드 공연을 열심히 보러 다녔는데 그 시절에 공연 정보를 공유하던 트위터에서 알게 된 언니인데요. 아티스트가 하는 번개 모임에서 한 번 봤고 그 뒤엔 인스타그램 통해 서로 근황 보면서 좋아요 눌러주던 사이였지요.
에이미: 음, 20대의 (굉장했던) 어라가 생각나네요. 그 이야긴 따로 하고요.
이어라: 그 언니가 서울에서 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인테리어 소품 숍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게 몇 번 놀러 갔었어요. 그때 개인적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냐면 더 나이 먹기 전에 내걸 꼭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 후회하고 쫄딱 망해도 상관없으니까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글쎄 언니가 그 가게를 그만둔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거기가 앞은 가게고 뒤로는 주거 공간처럼 쓸 수 있어서 집과 가게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거였죠. 월세까지 저렴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일주 일만에 결정했어요.
에이미: 인테리어 소품 숍을 그대로 인수받은 건가요?
이어라: 아니요. 저는 핸드메이드 소품 숍을 하고 싶었어요.
에이미: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그런 큰 결정을 일주일 만에 내린다는 것은 진취적인 성격으로 밖에 안 보여요.
이어라: 변화에 큰 두려움이 없는 성향이에요.
에이미: 그 성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어라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특징 여섯 가지를 추려온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것에 대해 본인이 직접 평가해 달라고.
이어라: 약간 논문 자료 쓰는 것 같은 인터뷰 같다 생각했어요.
에이미: 저는 재밌게 준비했어요. 시작해 볼게요.
첫 번째, 이어라는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에이미: 제가 본 대학생 때의 어라는 항상 바쁘고, 맨날 이벤트나 공연 같은 거 찾아다니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그랬어요. 진짜 이것저것 많이 한다 (뭐 하는 애지?)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이어라: 맞아요, 어디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었어요. 이벤트나 프로모션에 관심이 많아서 자원활동가 같은 거 모집하면 무조건 지원해서 커리어를 쌓으려고 했고요. 페스티벌 열리는 거 있으면 기자단 하고, 뭔지 알죠?
에이미: 뭔가 두려웠나요? 그렇게 열심히 한 이유가 뭘까요?
이어라: 10대 때 고향 순천에 있었는데 그땐 직업에 대해 알게 드라마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허준’ 보고 한의학과 선택하고 ‘호텔리어’ 보고 호텔 경영과 가야겠다고 하고. 아니, 기억 안 나세요? 왜 기억 안 나는 것처럼 그러시죠?
에이미: 하하, 그럼 혹시 ‘광끼’ 보고?
이어라: 맞아요. 드라마 광끼 보고 빠졌죠. 원빈이랑 최강희 나왔잖아요. 그거 보고 광고학도의 꿈을 키운 거예요. 광고 창작학과 굉장히 가고 싶었어요. 번뜩이는 아이디어 내고 TV 광고 만들고. 그땐 어렸을 때니까 광고도 아니고 ‘선전’이라 했죠, 아, 너무 멋있더라고요. 고2 때였나 봐요.
한예종의 광고창작과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죽어도 2년제 전문대는 안 된다 해서 못 가고 홍익대 광고홍보학부를 간 거예요. 그런데 처음에 좀 당황했던 거 같아요, 생각했던 거랑 달라서. 기획서 쓰고 그래야 하더라고요. 제겐 이벤트나 프로모션 쪽이 더 재밌어 보였고, 어떻게든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에이미: 지금 하는 일도 막 일부러 뭔가를 만들어서 하고 그러나요?
이어라: 맞아요,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그저 평화롭겠죠. 일상이 잔잔하고 그냥저냥 흘러가겠죠. 시도하고 뭔가를 해야 재밌는 일도 생기는 거 아닌가요. 시야도 넓어지고, 경험하는 거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서 일을 벌이는 편에 속해요.
남편은 사실 수익이 있느냐 없느냐로 많이 본다고 한다면 저는 그게 없더라도 의미가 있으면 해야 한다는 주의예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약간 의견 불일치가 있긴 하지만.
에이미: 맞춰 나가는 과정이 있었겠네요.
이어라: 지금도 맞춰 나가는 중에 있는 것 같아요.
에이미: 아이디어가 많은 편인가 봐요.
이어라: 아이디어는 굉장히 많아요. 재밌겠다 싶은 거 항상 기록해놓고, 언젠가는 해봐야지 생각해요.
에이미: 그런 아이디어들은 어디서 얻나요?
이어라: 책에서도 보고 무엇보다 제일 큰 건 사람들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예요. 그 속에서 영감을 얻어요.
핸드메이드 소품 숍( ‘동백꽃지니봄이어라’ )을 운영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해본 거 같아요. 내 공간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거 원 없이 해봐야지 했어요. 판매 공간이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가 진행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기도 했죠. 원데이 클래스 같은 걸 하기도 하고요. 또 해본 거는 맞춤법 공부하기, 한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드폰도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기, 좋은 영화 함께 보기, 다 해봤어요. 진짜 미련이 없을 정도로.
에이미: 그런 형식을 지금 ‘인더로우’에도 들여온 거 군요.
이어라: 맞아요, 지금은 개인 목공방의 느낌이 강한데 여기에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더해주면 좋겠다 생각했죠. 사람들이 가구를 주문해야지만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매장의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되게 망설여요. 함부로 못 들어갈 거 같고, 문턱이 높다고 해야 하나.
저는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우리가 즐거운 일을 여기서 기획해서 해내고 사람들과 관계 맺고 그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그래야 지만 인더로우가 더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무도 써봐야지 좋은 줄 알잖아요, 앉아 보기도 하고, 책도 읽기도 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에이미: 최근에 인더로우 매장에서 다른 여러 브랜드들과 콜라보 마켓을 연 것도 그런 활동의 일환이군요.
이어라: 맞아요.
에이미: 다양한 SNS 채널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한 가지만 하기도 쉽지 않은데요. 꾸준하게 하기가 제일 힘들고, 들어가는 노력에 비하면 빠르게 반응이 오는 것들도 아닌데, 업로드나 포스팅에 힘을 많이 기울이는 것 같아요.
이어라: 우리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기도 하는데, 실은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블로그는 굉장히 열심히 했죠.
에이미: 네이버 메인에도 몇 번 소개된 적이 있죠?
이어라: 그게 독이 됐어요. 약간 주객이 전도됐달까. 내가 좋아서 시작했을 땐 재밌었는데 남한테 보여주려고 하니까 자꾸 일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좀 시들해지면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왔어요. 그런데 요즘 다시 블로그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해요. 이유는, 블로그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그걸 많이 봐주는 느낌이라면 인스타그램은 그때그때 올릴 때가 아니면 빨리 휘발되는 느낌? 시의성이란 특성이 강해서 한참 지난 거는 사람들이 잘 찾아보지 않더라고요.
에이미: 제가 대학 때 본 “쟤는 왜 저렇게 바쁘게 살아”라는 틀림이 없었던 거군요.
이어라: 잘 보셨네요.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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