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니저다.
나는 ZARA의 매니저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느낌으로 쓴 거다)
그런데 나는
착한 매니저도, 나쁜 매니저도 될 수 없어서 그저 그런 매니저가 되었다.
친해질 수도, 화 낼 수도 없어서 썰렁한 매니저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일이 좋다. 패션업이란 것도 좋고, 서서 하는 일이어서 좋고, 나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이어서 좋다. 잘 웃고, 친절하게 대하는.
주말에 쉴 수 있는 꿈같은 날이 한 달에 딱 한 번 오는 것도 불평하지 않았다.(아, 불평은 많이 했나)
그와 나는 붙어 있는 시간이 매우 많다.
다른 연인들보다 훨씬 오래 함께 잡지를 보고
다른 연인들보다 훨씬 오래 함께 미드, 일드를 시청하고
다른 연인들보다 훨씬 오래 함께 쇼핑을 한다.
그런데 나는 미안해했다. 내가 일하는 동안 그를 혼자 두는 것에 대해 미안했다.
그가 일하는 동안, 내가 혼자 있는 것에 대해 전혀 미안해할 것 같진 않은데
왜 나는 내가 일하는 동안 혼자 있을 그에게 미안해하는 걸까.
어렵게 토요일에 쉬는 행운을 얻었는데도
하필 그 날 친구들과 야구를 보러 대구에 간다는 그에게도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다.
다만 자존심과 눈물의 상관관계에 대해 궁금해졌다.
갑자기 뾰로통해진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기도 전에
나는 자존심이 상해버렸고
그건 눈물을 동반했다.
자존심이 상하면 화가 나야 하는데
왜 나는 눈물이 나는 것이며
눈물은 슬플 때 나는 것인데
나는 그때 슬프지 않았다.
그는 눈물을 보이는 데는 단호해져서 좀처럼 달래 주지 않는다. 어리광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듯.
나는 멀쩡하게 있는 데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내 자존심과 눈물샘을 같이 건드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만들어 버렸다.
사랑도 일도 같더라.
착한 상대도, 나쁜 상대도 될 수 없어서 그저 그런 상대가 되었고,
화를 낼 수도, 따질 수도, 물을 수도 없어서 혼자서 결론을 내리는 독재자가 되었다.
그에게 화가 잔뜩 나 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
화를 오래 끌지 않고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너'라는 말 대신 항상 이름으로 불러주고
절대 먼저 전화를 끊지 않고
컵라면은 더 이상 먹지 말라고 하는 그.
우리 이야기를 하자.
나는 진지한 대화에 있어선 정말 젬병이지만
우리 이야기로 풀어보자.
내가 왜 자꾸 자존심이 상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지에 대해.
Let's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