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칠 년 전. 스물일곱이었던 내게, 기차로 하버브릿지를 건너는 일과 차창 너머의 오페라하우스를 무심히 바라보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꼭 쥔 채 입성한 낯선 땅에서 두 계절을 힘겹게 지나던 때로 기억한다. 카페 보조와 사무실 청소, 두 가지 일을 연달아하는 기계적인 일과의 나날이었고, 답답함과 그리움과 외로움이 마음 깊숙한 곳 밑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 갔다.
섬처럼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시절이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야채를 씻고, 포르투갈식 치킨을 굽고, 따끈한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나르고, 그 새 한 가득 쌓인 설거지를 하고, 더러워진 주방기구를 열심히 닦다 보면 시나브로 발바닥이 뜨거워지고, 종내 녹초가 되곤 했다. 그런 와중에 어리숙한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은 분주한 카페 주방에서 실수 연발로 매번 주눅 들기 일쑤였다.
매번 점심으로 바게트 샌드위치가 나왔다. 앉아서 먹을 수 없던 불편한 점심시간. 이미 풀릴 대로 풀린 다리로 꿋꿋이 버텨가며 입보다 더 큰 샌드위치를 꾸깃꾸깃 입속에 욱여넣어야 했다. 부지런히 일하려면 서둘러 먹어야 했다. 불편해도 배부르면 그걸로 만족했다. 하지만 결국 입 주변에 상처가 났고, 아물 틈이 없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셰프에게 빵을 세 조각으로 잘라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고, 손 대신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는 요령이 생긴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기차 타고 건너던 시드니 하버브리지(Sydney Harbour Bridge)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면, 기차로 하버브릿지를 건너 두 번째 일터로 향한다. 청소 시작 전,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화장실에서 도시락을 꺼낸다. 문 잠긴 화장실 한쪽에 놓인 기다란 벤치에 홀로 앉는다. 저녁밥을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식후에 몰려오는 졸음에 못 이겨 벤치에 웅크리고 누워 잠깐 눈을 붙이곤 한다.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쪽잠에서 깬다. 알람을 끄고 어둑한 화장실 안에서 침묵의 순간을 자각할 때면 어떤 때는 한숨이, 어떤 때는 울컥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섬처럼 덩그러니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을 견디기 어려워 어떤 날에는 소리 없이 펑펑 울었다.
카페에서 주말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직장인 손님들로 분주한 평일과 달리 주말은 꽤 여유로웠다. 그래서인지 선배 셰프는 이따금씩 샌드위치가 아닌 다른 요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하루는 내게 특별한 브런치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바게트 빵으로 만든 에그 베네딕트였다. 손님에게 내듯 예쁘게 만들어서 내게 건넸고, 나는 주방 한편에 서서 그 음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참 맛있었고 그릇 또한 깨끗이 비워냈다. 말은 쉬이 통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선배의 가만한 다독임이었음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일하던 카페가 있던 곳(Greenwood Plaza, North Sydney)
그로부터 꽤 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점심에 나는 어느 카페에 홀로 앉았다.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빛이 블라인드 틈새로 천천히 스미던 날이었다. 바게트 빵은 아니지만, 에그 베네딕트를 오랜만에 마주했다. 자연스레 그 날의 특식이 오버랩되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지만, 혼자 있는 순간을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나를 마주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음식은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오롯이 혼자 만끽해보는 음식은 어떤 행복한 기운으로 충만하게 나를 채운다. 나만의 작은 숲이 그런 것이라고 혼자만의 정의를 내려본다.
달고 단단한 양파는 초가을에 땅속에서 시작된다. 가을이 무르익는 시월에 '옮겨심기'를 하고, 줄기가 제법 올라오면 '아주심기'에 들어간다. 그렇게 긴긴 겨울을 나면 둥근 봄이 알알이 여문다는데, 칠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어디쯤에 심겼을까. 아무래도 아주심기의 시간은 아득하기만 하다.
컵밥과 야식으로 연명하다가 속은 속대로 망가지고, 불안과 걱정에 짓눌린 몸으로 점점 중력에 순응하고 마는 나는. 야밤에 양념통닭 뜯으며 보는 영화 한 편에 위로받는 게 고작이지만. 어떤 풍경이 예쁜지, 어떤 술이 맛있는지, 어떤 순간이 행복한지, 어떤 음식이 제철인지, 어떤 계절이 깊어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마음 정도면 나도.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처럼 나만의 작은 숲을 가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풍경이 예쁜지, 어떤 술이 맛있는지, 어떤 순간이 행복한지, 어떤 음식이 제철인지, 어떤 계절이 깊어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마음 정도면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