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구조가 다른 두 사람의 만남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결혼한 두 사람이 이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일부 특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갈등이 있는 모든 커플들에게는 저마다 백이면 백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바람을 피워 믿음이 깨졌을 수도 있고, 생활비를 주지 않고 경제적 의무를 다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결혼 후 상대방의 부모나 원가족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수도 있고, 흔히 말하는 성격차이 때문에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그 이유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뇌 구조 자체가 다르게 발달한 두 사람이 만나서 커플이 된다면 어떨까요?
뉴로-다이버스 (Neuro-diverse) 커플은 한 사람이 자폐 스펙트럼 발달장애 (ASD: Autisum Spectrum Disorder)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정형인 (NT: Neuro-typical, 뇌신경학적으로 일반적으로 뇌 발달이 된 사람)인 커플을 일컫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뇌구조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난 커플인 셈이지요.
감정과 교감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개념, 상대방과의 가까이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 가정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 배우자의 역할에 대한 이해,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방식, 가장 근본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받아들이는 배우자 혹은 연인과 살아가야 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 차이를 맞춰가기 위해 시도하는 대화 방식 자체까지도 다른 두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더 길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어려움이 상상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뉴로-다이버스 커플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한 커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브런치 북에서는 이러한 뉴로-다이버스 커플에서 정형인 배우자가 느끼게 되는 수많은 고충들, 그리고 뉴로-다이버스 커플이 그 관계를 행복하게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성인 아스피와 적당히 직장동료, 혹은 동창 정도의 관계만 유지한다면 그냥 좀 특이하거나 별난 데가 있는 사람이지만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 혹은 더 좋게 본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 착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스피와 아주 친밀한 관계, 즉, 배우자나 연인관계가 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관계가 깊어질수록 반복되는 좌절과 실망, 외로움과 공허함, 감정적인 무시와 단절, 공격과 비난, 나아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까지 들만큼 괴로운 것이 뉴로-다이버스 커플에서 정형인 배우자나 연인이 느끼고 겪는 어려움입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늘 집에 붙어 있는 가정적이고 착한 남편으로 비칠 수 있는 아스피 배우자이기 때문에, 정형인 배우자의 불만은 주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어렵습니다. 종종 "남자들이 다 그렇지. 네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니니~" "네가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아는 다른 집 어떤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알코올 중독이거나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집에 잘 들어오는 남편인데 네가 이해도 하고 해야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죠.
정형인 배우자는 반복적으로 자신의 실망과 좌절, 외로움에 대해서 자신의 아스피 배우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으로부터도 공감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더 큰 괴로움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카산드라 증후군'이라고 일컫습니다. 카산드라 증후군은 우울증과 번아웃 증후군을 비롯하여 정형인 배우자가 겪는 어려움이 정확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인정도 받을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적인 상처와 스트레스를 말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선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개념은 아직까지도 생소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외국에서도 성인 아스퍼거에 대한 도움이나 결혼 관계 개선, 그리고 양육자로서 아스피에 대한 교육 등에 대한 연구와 시스템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한 실정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 두 사람 사이의 이유를 알 수 없이 점점 깊어지는 갈등을 설명할 길이 없게 됩니다. 이는 두 사람 모두의 정신건강을 해칠뿐더러, 결혼 생활이 파경에 이르게 되고, 행복하지 못한 양육자로 인해 자녀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경우 서양에서는 그 이혼율이 80프로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풀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즉,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알고 연구한 역사가 짧은 만큼, 많은 경우 이혼에 이르게 된 갈등의 원인이 뉴로 다이버시티에 있다는 점이나, 아스퍼거 증후군이 관계에서 가져올 수 있는 갈등의 원인과 양상에 대해서 이해조차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추후에 다른 글을 통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만, 저는 호주에 거주하고 있고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약 5년 전쯤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그 생소한 개념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뒤,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자료를 읽고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국내에는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자료뿐 아니라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의 결혼 관계에 대한 어려움에 대한 자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자료는 아동 청소년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자료들 뿐이었고, 그나마도 제가 해외 자료를 통해 본 개념과는 다른 것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관련 자료들은 해외 자료들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동안 도저히 파악할 길이 없었던 제 결혼 생활의 갈등과 어려움에 대한 의문이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설명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국내도 전보다는 점점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성인 아스퍼거에 대한 자료나 인식도 늘어나고 이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온라인 모임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뉴로 다이버스 커플의 관계 개선을 위한 좀 더 객관적이고 도움이 되는 내용에 대한 공유, 정형인 배우자가 실제로 겪는 고충들에 대한 인정, 더 나은 소통을 위한 방법 등과 같은 자료는 아직도 쉽게 우리말로 접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이러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아스피 배우자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심각한 우울증과 무기력증, 번아웃 증후군도 겪었고, 또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내면과 원가정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스피 배우자와 그 아이를 함께 양육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 브런치 북에서는 뉴로-다이버스 커플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서부터 시작하여, 뉴로-다이버스 커플이 겪을 수 있는 문제들과 정형인 배우자가 맞닥뜨리는 고충,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육아 문제, 뉴로-다이버스 커플이 행복하고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실질적인 가능성에 대한 탐색까지...
저는 뇌신경학 전문가나 심리학 전문가 혹은 심리치료사나 상담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뉴로-다이버스 커플에서 정형인 배우자로서 일차적으로 이 관계를 느끼고 경험하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을 해 왔고, 현재도 그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해당 문제에 대한 관심과 더 알고 싶은 갈증은 그 누구보다도 높고 절실하기에 관련 자료들과 서적들을 무수히 찾아 보고 티스토리 블로그를 통해 공유해 오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자폐에 대해 알게 된 뒤, 지난 5년 동안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뉴로 다이버스 결혼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와 팁들을 깨닫고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수많은 정형인 배우자 분들 혹은 아스피를 가족 구성원으로 둔 분들에게 저의 고민과 고군분투에서 비롯한 공부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브런치 북을 사랑하는 제 딸과 남편에게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