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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티피컬레이디 Oct 12. 2022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진단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의 어려움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경우, 어떻게 진단을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성인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의 진단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은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진단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가면을 쓰는 아스피> 

 이전 글들에서도 다룬 적이 있지만,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아스피들은 성장하며 가면을 쓰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현재 성인이 된 아스피들의 어린 시절에는 아스퍼거 증후군,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인식이 저조했기 때문에 본인의 상태를 성장 과정에서 파악하거나, 그를 기반으로 인지 행동 교정과 같은 도움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늘 본인이 남들과는 좀 다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고, 특정 상황들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놀림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며 '일반적으로 보이기 위한' 가면을 만든 것이죠. 물론 결혼을 하는 등, 가까운 인간 관계에서는 이 가면이 벗겨지기기 때문에 아스퍼거 증후군의 여러 특징들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경우, 학습된 스킬을 통해 노력을 하면 눈맞춤, 대화의 유지와 진행과 같이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하려고 할 때 이처럼 가면을 잘 갖춰서 쓰고 진단자를 대하는 아스피라면 그 진단이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 남편의 경우에도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공식적으로 받았지만, 공식적인 진단을 받기 위한 상담 전에 만난 일반의사나 상담사들은 20분 정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이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공식 진단은 반드시 임상 경험이 많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으며, 다각적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제가 사는 호주의 성인 자폐 스펙트럼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에 대한 국가 지침서에는 진단 과정에서 특히 가까운 가족 구성원, 특히 배우자나 부모와의 면담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진단 시에 당사자만 보아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아주 친밀하고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한 사람들(정형인)과의 상호작용, 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만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오진의 가능성, 전문가 찾기의 어려움> 


 아스피가 가면을 쓴다는 점도 오진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은 굉장히 광범위한 범주를 포괄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일직선상의 스펙트럼이 아니라 3D에 가까울 정도로 개개인마다 다른 양상으로 그 형태와 정도가 다양하게 발현됩니다. 또 수많은 아스피들이 ADHD나 ODD, OCD 등등 다른 발달 장애들을 동시에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함께 있는 경우도 있구요. 그렇기 때문에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보다는 강하게 발현되어 보이는 다른 증상들, 가령 ADHD, ODD, OCD 등으로 진단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공감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폐의 성향을 나르시시즘, 소시오패스 등의 인격장애로 오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스퍼거 증후군과 나르시시즘적인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라면 오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진단은 놓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인식과 연구의 역사는 길지 않기 때문에 실제 진단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찾는 것도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미성년의 경우에는 자폐 성향이 비교적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진단자도 보다 쉽게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성인의 경우는 능숙하게 본인의 자폐를 숨기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를 꿰뚫어 보기 위해 전문가의 지식과 임상 경험이 풍부하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성인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정신과 의사 혹은 상담사도 많지 않을 뿐더러, 그러한 내담자를 많이 다뤄 본 전문가는 더더욱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라고 하더라도 성인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지식과 훈련을 갖춘 경우가 아니라면 이를 짚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진단을 받으려는 입장에서는 진단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제 남편의 경우에도 진단을 받으려고 할 때, 진단 경험이 있는 전문의를 찾기 위해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운영하는 자폐관련 단체에서 제공하는 전문 병원 연락처 정보를 바탕으로 모든 곳에 전화를 걸어 진단자의 진단 경험과 성인 고기능 자폐에 대한 임상 경험을 직접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목록에 있는 클리닉 10곳 중 7곳 정도가 미성년 자폐 스펙트럼의 진단과 행동교정 프로그램 등을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오진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주정부 자폐 관련 단체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 중 성인 진단을 받은 분들이 본인이 진단을 받은 곳이라고 소개를 해 준 클리닉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클리닉은 인기가 많아서 2개월 뒤에나 진단 예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전문가를 찾는 것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싼 진단 비용> 

 

한국의 경우는 조금 사정이 나을지 모르겠으나, 호주에서는 진단 비용이 너무나 비쌌습니다. 국가 의료보험이나 사보험 모두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 (성인 진단의 경우) 호주 달러로 1200불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추후에 다른 글에서 다룰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남편의 진단이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감히 비용을 지불하자고 남편을 설득해서 진단을 진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담이 되고 너무 비싸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었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낸 금액인 것이지요. 물론 전문가가 별로 없다는 점, 고도의 전문 서비스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비용인 것 같기는 합니다. 경험과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인데, 진단 시간도 4시간이나 소요 되고, 추후에 10페이지에 가까운 공식 진단 서면 및 의견서를 받게 되므로 전문가의 업무량도 상당한 것이 사실이구요. 

 

고기능 자폐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진단을 받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만 본인과 주변 가까운 가족 구성원들이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눈에 보이는 장애는 아니지만 발달 장애라는 점, 또한 정신 건강도 엄연한 건강의 범주에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국가 의료 보험의 혜택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진단 받지 않은 수많은 성인 고기능 자폐인들의 경우 본인도 그리고 그 배우자나 가족 구성원들도 모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물론 어릴 때부터 퇴행이 눈에 띄게 보이고 또래와 같은 수준의 발달에 어려움이 있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는 경우에는 국민 의료보험 뿐 아니라 다양한 혜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진단을 받지 않은 스펙트럼의 상단에 있는 고기능 자폐,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아직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주로 인정이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위의 모든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 성인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의 진단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성인 아스피 본인이 진단을 원치 않거나, 진단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고집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일 것입니다. 사실 평생 본인이 남들과 좀 다를지언정 발달 장애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가까운 배우자나 가족에 비해 본인의 자폐 성향으로 인한 사회적 소통의 불편함을 체감하지 못하는 아스피 본인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자신에게 낙인을 찍는 것 같은 진단이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겪는 경우에도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을 머뭇거리게 될만큼 정신 건강에 관련한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견이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굳이 비싼 비용과 어려운 과정을 거칠만큼 본인의 상태가 아스피 본인 스스로에게는 불편하다고 체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진단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스피 본인>과 <남편에게 진단을 받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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