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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un 22. 2022

허리를 찔렸다

열나고 머리가 아파서

열이 나고 머리가 너무 아파요!



계절에 따라 응급실에 오는 환자군도 가끔 바뀐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 뇌경색, 뇌출혈 등의 뇌혈관 질환들이 늘고 날이 따뜻해지면 뇌염이나 뇌수막염 등의 감염성 질환이 늘어난다. 38도 이상의 발열이 있고 두통이 너무 심하고 구역감까지 동반한다면, 감별해야 할 질환이 있다. 바로 뇌수막염이다. 뇌수막염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척수액 검사가 필요한데 오늘은 뇌수막염과 뇌척수액 검사에 대해 써 볼까 한다.




뇌척수액 검사(CSF study). 진료실에서 설명하는 대로 설명해 보겠다. '우리 뇌는 막에 둘러싸여 있고, 물에 동동 떠 있거든요? 그 물길이 등허리를 따라 흐릅니다. 그래서 머리 안에 있는 물을 허리 쪽에 바늘 꽂아 채취해서 검사를 하는데, 이게 요추 천자(Lumbar puncture)라는 거예요. 머리 안에 있는 물은 균이 없어야 하니 세포수가 0개가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둘러싼 막에 염증이 생기면 두통이 생기고, 세포 수가 늘어요. 염증이 있는지 없는지 보는 가장 정확한 검사가 뇌척수액 검사죠. 이건 뇌 MRI를 찍어도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요. 흔히들 골수 천자와 헛갈려서 엄청 아플 거라고 무서워하시는데, 뼈 찌르는 검사 아니고 아기들도 하는 검사예요. 부작용으로는 물론 바늘로 찌르니까 통증이 있을 수 있고요, 일부 뇌척수액이 누수하는 경우엔 머리 압력이 낮아지면서 다른 종류의 두통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건 수액치료나 자가혈 패치 등으로 치료가 가능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검사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 먼저 뇌 CT 찍고 진행하실 거고요, 검사 시간은 30분 정도 소요되고, 검사 이후 4시간 정도 누워 계시면 됩니다. 검사는 제가 직접 응급실에서 시행할 거고요, 오래 누워 계셔야 하니 소변 보고 준비하고 계시면 검사 진행할게요!'



자세를 보면 알겠지만, 환자들은 보이지 않는 허리에서 하는 이 검사가 두렵다. 자세잡기가 가장 중요한데, 새우등 하고 모로 누워주세요 해도 다들 제대로 되지 않는다. 등라인은 일자로, 최대한 허리는 둥그렇게 말아서, 다리를 최대한 올려주면 참 잘했어요 칭찬받을 수 있다. 그리고 바늘 찌를 때 움찔! 하지만 않으면 베스트. 살집이 두껍거나, 요추 협착이 있는 사람은 자세를 아주 잘 잡아도 검사가 힘들 수 있다. 결국 블라인드로 하는 검사이기 때문에 뼈가 잘 만져지지 않으면 뼈 사이로 바늘을 진입하기조차 힘들 수 있고, 심지어 살집이 너무 두꺼운 경우는 긴 천자 바늘보다도 두꺼워서 척수강까지 진입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백 킬로 넘는 경우 살을 아주 눌러서 겨우 하는 경우도 있음)


무사히 척수강을 찾아 뇌척수액을 한 방울, 한 방울 받고 나면 30분 정도는 소요가 된다. 아주 지리멸렬한 시간이다. 대학에 있을 때는 레지던트들이 다 해주지만 강호에 나오면 그런 게 어딨나. 일개 과장인 나는 지루한 30분을 나 홀로 버텨내야 한다. 찌르기만 하고 남은 검체는 인턴에게 시키고 싶지만 부탁할 인턴도 없다. 검사에 성공하였다면, 개방 압력을 측정하고 압력이 높은 경우엔 아 뭔가 문제가 있겠구나 예측해볼 수 있다. 일부러 복압을 올리게 말을 시켜서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자꾸 말을 거는 이유는 검사를 조금이나마 빨리 끝내기 위함이라고 미리 양해도 구한다. (실없어 보일까 봐..) 말이 잘 통하면 노래라도 불러 보라 하며 웃게 하고 그러면 좀 빨리 검체가 나와서 다소 검사를 더 빨리 끝낼 수 있다. 나만의 꼼수인지는 잘 모르겠다. 잡담을 하면서 병력도 더 청취해보고 나오는 검체의 성상을 보고, 색깔을 관찰한다. 의식이 수일만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세균성 수막염의 심한 경우 누런 콧물처럼 나오는 경우를 한 번 경험했고, 대부분은 심해도 말갛게 약간 노란 정도다.    


그렇게 검사를 마치고 나면 베개를 빼고 똑바로 누워서 휴식을 취하게 한다. 결과는 2시간 뒤에 나오니까 푹 쉬고 계세요 하고 다음 진료를 보기 시작하는데 검사 한 번에 기본 30분이니 외래 환자들이 밀려 있는 건 당연지사. 그러니 예약 시간에 바로 진료를 보지 못한다고 화부터 내시지 마시고 조금 양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의사도 마냥 놀다가 진료 시간이 밀린 것이 아니라, 검사가 예정보다 길어지거나, 갑작스러운 응급 상황이 생겨서 밀리는 경우가 있으니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린다.



열나고 머리가 너무 아파요. 토할 것 같고요. 뇌수막염일까요?



그렇게 요추 천자를 하고 결과에서 세포수가 나온 상황이라면, 일차적으로는 뇌수막염으로 진단이 된다. 뇌수막염으로 진단된다면 원인을 찾아봐야겠지. 나이를 고려하고, 기저 병을 기반하여, 다른 동반 증상들이 있는지를 살피고 병의 경과를 고려하여 원인을 찾아나가게 된다. 다섯 가지 정도로 설명을 드린다. 20대 정도에 평범한 경과의 발열 및 두통, 수막 자극 징후를 가진 환자라면 대부분은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이다. 오늘은 내 옆에 교과서가 없는 관계로 그냥 진료할 때 설명하는 대로 기술해보겠다.


1. 바이러스성 2. 결핵성 3. 세균성 4. 진균성 5. 자가면역성이 있는데, 대부분은 바이러스성이에요. 환자 분은 거의 80% 정도 바이러스로 생각되고, 이 경우는 머리 감기 정도로 보시면 돼요.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 무슨 바이러스의 감기인지 일일이 바이러스를 다 확인하지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머리 감기 바이러스도 일일이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검출 가능한 바이러스 일부는 검사를 해보긴 할 거예요.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죠. 일반적으로 감기에 걸리면 얼마나 가죠? 일주일이면 기침, 가래 멎잖아요? 머리 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 가량의 경과를 봐야 합니다. 차차 좋아지는 경과를 보이고 1~2주면 자연히 낫게 되지요. 감기 때 기침 나오면 기침약, 가래 나오면 가래약 먹잖아요? 머리 감기도 역시 두통 심하니 두통약 먹고, 열나면 해열제 먹고 그럽니다. 보존적인 치료를 하는 거죠.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점점 나빠지는 추세다? 소변도 잘 못 보고, 뭔가 경과가 좋지 않다면 한국 사람들은 머리 결핵일 수도 있어요. 그건 수치상으로도 의심할 만한 게 몇 개 있지만, 정확히 검출되는 것은 아니라서 경과를 봐야 해요. 결핵성 뇌수막염이라면 일 년간 결핵약을 복용해야 할 수도 있겠지요. 세 번째는 세균성인데, 이건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세포 수를 셀 때 림프구 우세였거든요. 그리고 경과가 급격히 안 좋아지고 원발 감염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 번째는 진균성인데, 당뇨나 면역 저하자의 경우 가능성이 있겠죠. 다섯 번째는 자가면역성인데 기저에 루푸스 등의 자가면역 질환을 앓고 있거나, 갑상선 하시모토 등의 병이 있던 사람의 경우 가능성이 있어요. 이 모든 가능성과 검사 결과와 확률상으로 환자분은 바이러스로 판단되며, 보존적인 치료를 하게 될 겁니다.


수치상으로도 임상적으로도 전형적인 경과를 밟는다면 정말 보존적으로만 치료를 받고, 항바이러스제를 투약받는 경우도 있고 스테로이드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케이스마다 의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신경과 수련을 시작하면서 한두 달 사이에 뇌경색 다음으로 가장 많이 경험하는 응급실 질환이 아닌가 한다. 위에서 기술했듯이 뇌척수액 검사가 사실 가성비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라 (시간은 많이 들고, 검사 비용은 싸다) 웬만한 종합병원에서도 잘 시행하지 않는 편이다. 하고 안 하고는 사실 근무하는 신경과 의사의 역량과 가치에 따라서 다른데, 30분 검사할 동안 대신 환자를 열명 더 보겠다고 한다면, 벌어들이는 수익은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대학 병원이 아니기에 선택이 가능하다. 임상 병력으로 봤을 때, 진균성이 의심된다거나 하면 나 역시 검사하지 않고 바로 3차 진료를 권하기도 한다. 진균성의 경우에는 원내 주사약도 없고, 있다 한들 신독성 등의 부작용이 많아 종합병원에서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각도에서 다방면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생각해 보니, 유튜브를 처음 구상할 당시 제일 먼저 떠올렸던 내용이 이 내용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해봐야지 했는데 글로 써보니 아무도 안 보겠다 싶다. 뇌척수액 검사를 경험했던 사람들이나 검사를 받게 될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지겠지, 평소 건강한 일반인들이 굳이 그걸 왜 보고 있겠냐 말이다. 내심 안 하길 잘했다 싶다. 그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글로 설명할 수 있음에 다행으로 여기기로 한다. 딱딱한 교과서식 서술이 아닌, 실제 의사가 바라본 관점에서의 풀어쓰기 식 설명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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