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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Nov 17. 2022

얼굴을 보고 있지만 알아보지는 못해



안면인식 불능증(Prosopagnosia)을 가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P 박사에 대한 일화이다. 책을 읽던 내가 와, 이런 신기한 용어가 다 있네? 싶어서 신경과를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했던 장본인이라고나 할까. 그리하여 신경과 의사로 살아간 지 십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한 명도 후천적으로 발생한 실제 환자를 보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 병이 희귀한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자꾸 나만 비켜가는 것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다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주인공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갑자기 그리 된 경우도 나온다.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안면인식 불능증, 안면 실인증이라는 말은 1947년 독일의 신경과 의사 요아힘 보다머가 처음 사용했다. 시각 실인 등의 다른 실인뿐 아니라, 안면 실인이 있다 해도, 눈코입 등의 개별 얼굴의 부분이나 윤곽 등은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전체로 '하나의 얼굴'로 인식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개인의 착의나 목소리 등을 통해 사람을 인지하게 되거나, 부분의 특징을 기억하여 사람을 알아보게 된다.


선천적으로 안면 실인은 2%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처럼 엉뚱하게 행동하지는 않으며, 개체의 식별은 목소리나, 착의, 체격, 행동 등의 다양한 정보를 종합하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별로 표시 나지 않을 수 있다. 본인이 안면실인 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안면 실인을 가진 유명인 중에는 브래드 피트를 비롯하여 미국의 화가 척 클로스 등이 있다. 브래드 피트는 어느 인터뷰에서 안면 실인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 바가 있었다. 척 클로스의 그림을 보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얼굴 정밀화를 그릴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커다란 얼굴을 자세히 그려내면서 모델이 되어 준 친구들과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얼굴을 분해하여 격자 형태로 픽셀화 하거나 디지털 프린팅 기법으로 그려내기도 하였다.




좌, <Self-Portrait Screenprint 2012>(2012) 우, <Mark> (1978)



안면인식 불능증은 실인증(Agnosia)의 여러 유형 중 하나이다. 실인증은 기본적인 감각이나 지능 등에 문제가 전혀 없는데도 자극을 인식하지 못한다. 처리 과정의 장애 혹은 범주화의 장애로 불리기도 한다. 시력에도 문제가 없으며, 시각과 관련한 뇌에 손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눈코 입의 조합과 전체적인 얼굴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인증이 생기는 이유는 감각자극 영역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뇌의 능력에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안면실인증의 손상 부위는 대략 우뇌 뒤쪽 측두엽과 후두엽의 중앙 정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얼굴을 ‘잘 알아보면서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병도 있다.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조세프 카그라스가 발견해 '카그라스 증후군'이라 부른다. 얼굴을 알아보지만,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신의 엄마에게 엄마와 닮은 이모가 오셨다고 하거나, 옆집 아주머니인데 왜 엄마 얼굴을 하고 있냐고 한다. 얼굴 모양은 알아보지만, 그 사람에게 맞는 감정이 연결되지 않는 현상으로, 조현병 환자나 뇌 손상이나 치매 등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아마도 내가 안면실인증 환자를 발견하지 못한 건, 후뇌동맥 뇌경색으로 인한 케이스였다면 안면 실인증이기 이전에 시야장애 등의 다른 증상이 먼저 드러나므로 쉬이 알아채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겠다. 아마도 얼굴 실인증 증상’만’ 나타난 사례는 정말로 드물지 않을까. 그리고 선천적인 경우라면 이미 조금 불편한 채로 살아가는 데에 적응을 해서 병원을 찾지는 않았을 테니 나를 만날 일은 없다. 혹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을 오다가다 스쳤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글을 발행하고 나서 우후죽순으로 많은 안면실인증이 눈에 띌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인식 체계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굉장히 신비로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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