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로그림 노운 Jan 10. 2023

임신이네요.

기본이 중요한 이유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나오는 의학의 기본 중의 기본. 가임기 여성에게 마지막 생리일을 물어보고 임신 가능성을 알아보라.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왜냐하면 신경과에 내원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평균 60세 이상이기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이 오는 일이라고는 거의 편두통 환자 외에 잘 없는데, 가끔 어지럽다며 온다. 사람이 어지러우면 토하기도 한다. 원래 어지러우면 속도 안 좋고 구역감이 들기 마련이다. 보통 젊은 여성이 토할 정도로 어지러운 경우는 이석증이 가장 많은데 이건 병력이 들어맞아야 한다. 환자는 젊은 여자였고, 어지럽다고 내원하였지만 기립성도 아니고, 이석증의 증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어지럽다 못해 외래에서 왈칵 구토를 해버렸는데, 실제로 이석증 환자를 신체 검진하다가 내 발에 토한 경우는 많았지만 병력을 청취하던 중에 갑자기 왈칵 토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신경과 외래에서 요검사를 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데, 이상하게 그날은 요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촉이 그랬다. 혹시 모르니 해봐. 기본이잖아.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다. 기본은 정말 중요하기에 기본이었다. 이제 겨우 성인이 된 아이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어지러워 찾은 신경과 의사에게 들어야 했다. 신경과 의사에게 자신의 마지막 월경일을 말하고 신경과 의사에게 복통이 동반한다면 자궁 외 임신일 수도 있고 위양성 일 수도 있으니 산부인과에서 꼭 진찰을 받아보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신경과 의사는 함께 온 남자 친구에게 축하합니다 말할 수도 없고 어쩌시렵니까 할 수도 없고 그저 의학적 사실과 유력한 가능성 하나를 설명했을 뿐이다.


함께 있던 조무사가 놀라워했다. 사실 의사 입장에서 당연하고도 기본인 일인데 정말 일말의 가능성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자리를 깔아라는 둥 촉이 살아있다는 둥 무척 놀라며 이야기를 했다. 꽤 오랜 기간 신경과에서 일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니 그랬을 만도 하다.


실은, 나 역시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이었지만 조금 놀란 게 사실이다. 아마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감정은 표정에 잘 드러나지만 떨거나 당황하거나 하는 일은 마스킹을 잘한다. 환자와 그 남자 친구도 덤덤한 눈치였다. 내심 어쩌면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무사 말로는 뒤늦게 찾아온 엄마에게 결과를 알려 주지 않았고 성인인 아이에게 들으라고 전했다 한다. 이후의 상황은 나는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궁금하지만 의사로서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의학에서는 일어날 법한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좋은 의사입니까?, 니시노 노리유키 p53


기본은 이렇듯, 중요하다. 기본은 지켜야 한다. 의학은 물론이거니와, 공부에 있어서도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어요.), 그 어떤 사소한 일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은 지킬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면 기본은 최소한 지켜내야 한다. 기본 위에 응용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셋(아이 포함)의 안위가 궁금하지만, 환자의 비밀을 지켜내어야 하는 것은 의사의 의무이자 환자의 권리이기에 애써 캐내지 않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얼굴을 보고 있지만 알아보지는 못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