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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Dec 13. 2022

불편한 사람



누군가에게 어쩌면 나는 불편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아주 상대방을 배려하고 잘 맞춰준다고 착각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알고 보면 더 불편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업인의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신문에서 발견한 노숙자를 진료하는 한 의사의 삶이라든지, 환자에게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유명 흉부외과 의사의 삶이라든지, 세계 곳곳 어려운 지역을 찾아다니며 구호 활동을 하는 국경 없는 의사라든지 말이다. 난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의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국경 없는 의사회가 꿈이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저 한 엄마이자 아내이자 봉직의사인 평범한 삶을 살아내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배우의 삶을 떠올릴 때, 아주 화려하고 매니저가 따라다니면서 스케줄을 관리해주고 미용과 관리를 받는 것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여의사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면 <서른, 아홉>의 차미조(손예진 역) 같은 의사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혹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전미도 역)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까. 차미조는 옷을 잘 입고 명품을 두르고 좋은 집에 산다. 채송화는 엑설런트 하고 공부를 좋아하며 환자에게 희생한다.


온라인에서 만난 어떤 여의사는 같은 봉직 여의사이며 워킹맘이지만 내게 무척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주변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냈다. 처음에는 대단하다, 글도 잘 쓰네, 열심히 사는구나, 이런 건 나와 참 비슷하네, 와 멋지다, 였는데 어느 순간 약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왜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라서? (어쩌면 훨씬 일반적인 모습일 텐데) 나는 관심을 보였는데 그녀는 노관심이라서? (당연하다, 나는 연예인을 알지만 그 연예인은 나의 존재조차 모르듯이) 너무 열심히 살아서? (세상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불편해진 내 마음의 적확한 원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저 나의 경험에 비추어 내 모습 역시, 화려하지도 엑셀런트 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여의사의 모습이라 어쩌면 사람들은 당혹스럽거나, 의아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해볼 뿐이다. 원래가,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사람은, 신기하거나 불편한 법이니.




이 상태로 이 글은 한동안 작가의 서랍에 처박혀 있었다.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지 몰라 그저 덜 닦인 똥처럼 찝찝하게 생각했더랬다. 그러다가 '뭐 아무래도 좋다. 신기한 사람이든 불편한 사람이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어떤 종류의 불편함이든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되면 좋겠다. 내가 느낀 불편함이 혹시 부러움이었다면 그 감정을 동력 삼아 레벨업을 하고 배울 점을 찾아 장착해보자. 모두가 윈윈 하는 방향으로, 서로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로 마무리 지어볼까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직업적 소명의식 때문인 것도 같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과 생각으로 계도받고 도움을 얻어가길 바랐다. 그에 비해 나는 병원 밖을 나오면 잠시 환자를 잊고 ‘의사로서’ 받는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다. 언제나 퇴사를 꿈꾸며 살아가는 회사원과도 같이, 언제든 기회만 되면 체질에 맞지 않은 것 같은 이 의사를 그만두려는 마음 가득했기 때문인 게 아닐까. 의사도 소방관도 경찰도 보람된 일을 하는 직업임에는 분명하지만, 모든 의사가, 모든 소방관이, 모든 경찰이 투철한 희생정신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의사라면, 소방관이라면, 경찰이라면, 으레 직업적 소명 의식과 애정 같은 것이 있으리라 기대하기 마련이다. 물론 나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가끔은 연기하기도 한다. 나같이 그저 평범한 의사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모두가 그럴싸한 이유와 명분으로 투철한 소명의식을 드러내니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의학 에세이를 한 열 권쯤 쌓아다가 읽는 중이다. 대부분은 응급실 에세이다. 예전에는 거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책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들은 환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의료 윤리에 어긋난다고 배운다. 환자 에피소드가 드라마틱한 응급실이 에세이 주제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전투적인 글도 있고, 재밌는 글도 있고, 공감 가는 글도 있고, 세상의 모든 불행을 안고 있는 글도 있지만, 한결같은 점은 그들은 의사로서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심 그런 것들이 불편했던 게 아닐까. 나는 그렇지 못하니까. 책임감이 없진 않지만 엄청나게 강한 사람도 아니고, 이기적이진 않지만 아주 희생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마치, 회사원이라면 회사에 충성하고, <재벌집 막내아들> 1화에 나오는 송중기처럼 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진배없다. (아직 1화밖에 못 봐서..) 대부분은 사직서를 품고 언제 뛰쳐나갈지를 고민하며 일상의 피로를 술과 함께 회사 오너와 윗선들 욕을 하며 풀지 않느냔 말이지. 나 역시 일할 때는 나름 열심히 한다. 환자도 나름 성실히 본다. 하지만 내 일이 아주 좋거나 이 직업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지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마치 나 같은 사람은 의사 작가가 되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했고, 그것이 내심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랬구나. 글쓰기의 순기능이다. 덕분에 프로필 문구가 나름 그럴싸해졌다. 더불어 미처 몰랐던 나의 마음을 파고들어 드디어 원인을 알아내었다. 물론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현답은 댓글들이 알려줄 것이다. 어쨌든 이 불편함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책이나 사서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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