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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Dec 06. 2022

초라해지고 싶지 않아


내려놓기가 참 쉽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 잘난 사람이 너무 많고 주눅 들 일 천지다. 사람들도 만나지 말고 혼자 지내야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는 걸까. 그래서 히키코모리가 늘어가고 사람들은 가상현실에 빠져드는 걸까. 나만의 세계에서는 내가 최고지, 가상현실에서는 내가 왕이야. 


아이가 교내 스케이트 대회를 나갔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외딴섬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내 욕심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운동 신경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매우) 더딘 걸 알면서도 스케이트에 관심가지기에 신청했고, 못하는 걸 알면서도 여러 번 하는 것은 싫다고 하니까 주 1회만 유지했다. 대회 때마다 속상해하고, 경쟁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스포츠인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좋다고 하니까 계속 픽업을 해왔다.


크게 욕심을 낸 것도 아니건만 어째서 학년에서 제일 못하는 아이가 하필이면 내 딸인가. 학년에서 도드라지게 못 달리던 아이 둘 중 한 명 엄마는 시상식에 참여하지도 않고 대회장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둘 중 나머지 하나였던 나의 아이는 자신의 실력과 무관하게 첫 은메달을 땄음에 (대진운이 좋아 두 명 조였다.) 기뻐하였고, 그 엄마인 나는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지만 애써 축하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겉과 속이 투명한 편이라 아마 속마음을 아이에게 들켰을 것이다. 실제 말로도 튀어나왔으니 아이에게 어쩌면 상처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육아는 찰나의 실수로 인한 후회의 연속이다.


애써 자기 위안을 시작해 본다. 선수화로 시합 나온 지 이제 겨우 두 번째.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디기는 하지만 코너를 시도도 못해본 지난 경기에 비해 확실히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최근 좋아졌던 자세가 이내 다 무너져서 속이 상했던 것이지만 지난 대회에 비하면 사실 나아졌다. '넘어지지 말고, 다치지만 말자'고 이야기했던 대로, 아이는 딱 약속을 지켰다. 초라해질 이유가 내겐 전혀 없었다. 내 아이만 바라보면 불행이 사라진다. 내 아이만 바라보면 발전이 보인다. 다음 시합에는 조금 더 안정적인 자세 낮춤과 코너링을 시도한다면 대견한 발전을 이루는 셈이다.


문제는 항상 나다. 왜 내 아이만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 왜 쓸데없이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의 아이는 바람직한 언어생활로 아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한다. 반듯하게 인사 잘하고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새겨듣고 한 번 말하면 약속을 지키는 성정이 곧은 아이다. 가끔 숙제하기 싫어 짜증도 내고 상상력이 여기저기 튀어 수행 과제를 하면서도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의 약속에 진심인 편이며,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려고 노력한다. 평소 동생과 아주 많이 싸우지만, 필요한 때에는 한없이 의젓한 언니가 되기도 하고, 기나긴 여행길 흔한 유튜브도 없이 즐겁게 그림 그리며 동생과 노닥거리며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아이이다. 일기장의 날씨에 그냥 흐림이라고 쓰지 않고 몽글몽글 구름이 떠 있는 날이라고 표현하며 주변의 변화를 잘 캐치해 소소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줄 아는 대견한 아이이기도 하다.




엄마들 모임이 제일 어렵다. 거기서는 아이의 후광에 힘입기 때문이다. 제일 잘하는 반에 내 아이가 있으면 우쭐해지고 금메달 딴 아이의 엄마가 빛이 나기 마련이다. 시험 점수 100점, 각종 영재반 합격과 같은 세속의 평가에 따라 대단함의 척도가 매겨진다. 왜 나는 아이의 후광을 이용하려 했을까. 내 것도 아닌 것에, 남들이 정한 가치에 일희일비하려 했을까.


여러 엄마들이 1. 아이의 후광과 2. 외적인 치장으로 스스로를 빛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어떤 분야이든 두각을 드러내고 뛰어난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애를 쓰고, 평소 잘 꺼내 입지도 않는 불편한 옷을 입고 각종 명품을 두르고 나타난다. 물론 평소에도 그저 그렇게 다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교 행사에 오히려 더 편한 옷과 함께 가방은 들지도 않는 나는, 왜인지 힘을 주고 가는 것이 무척 거북스럽다. 일부러 힘을 빼는 것도 어쩌면 의식을 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부자연스럽기는 매한가지지만. 여러모로 고민스럽고도 어려운 모임이 아이 엄마 모임 같다. 그저 너무 표시 나지 않게 아이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인데 참 쉽지가 않다.


일부러 힘을 빼고 가면서도 가면 왜인지 주눅이 든다. 어쩜 그리도 다들 아이들 케어를 잘하는 것이며, 어쩜 그리도 아이들이 뛰어나고 대단한지. 어쩜 그리도 다들 부자이고 어쩜 그리도 쉬이 명품들을 두르는지. 눈썹에도 힘을 주고 (인공 눈썹) 이마에도 힘을 주고 (각종 필러와 보톡스) 손톱에도 힘을 주고 (각종 네일) 체취에도 힘을 주고 (각종 향수) 힘 들어간 곳이 어쩜 그리도 다양하고 많은 건지. 이 모든 것에 힘을 빼고 사는 나는 가끔 너무 어울리기 어렵다. 표시 나진 않겠지만 실상은 그렇다.


아이가 잘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잘 꼬드겨 주 2-3회는 강습받아 가며 몸에 익을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어야 하는 걸까. 혹은 여러 방면으로 그저 정신 승리해가면서 대회나 강습에서 있을 순간의 굴욕을 인내하는 것이 맞을까. 여차하면 그만두면 그만인 취미활동에도 이리 고민인데, 쉬이 그만둘 수도 없는 수학 영어에서 막히면, 나는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지? 아이들 모두 훌륭히 키워내신 나의 어머니께서는 기다려라, 믿음으로 키워라 하는데 성미 급한 어미는 벌써 마음이 조급한 걸.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허지웅 작가는 말했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나와 아이는 아주 비범하고 멋질지도 모르겠다.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이겠지. 나는 엄마니까, 아이의 비범함을 끌어내고 확장시키고 잘 무르익어가기를 기다려 줘야 할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내겐 참으로 어려운 분야다. 하나하나 오은영 선생님 같은 분이 옆에서 코칭해주면 좋겠다. 오늘도 비범해지고 싶지만 초라한 나는, 비범함 하나를 장착하기 위해 글쓰기를 이어간다. 쓰다 보면 또 정리가 되고 쓰다 보면 또 혜안을 얻기도 하는 나는 이미 비범함 하나는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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