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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an 03. 2023

동네 작은 가게의 계란 김밥


시작은 그저 김밥 이야기가 왜 인기라는 거지? 였다. 그리고 김밥을 소재로 나도 글을 써볼 수 있을지가 다소 궁금해졌다.


김밥을 좋아한다. 그저 맛집이나 미식 같은 것에 큰 욕심이 없고, 때가 되면 위장을 채워 넣는 것이 중요할 뿐인 사람인지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이 음식이 좋다. 적절히 양념이 배어 있고, 한 입에 쏙 털어 먹을 수 있으면서도 야채와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간편하면서도 한 방에 영양을 챙길 수 있는 기똥찬 아이템인가.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이면 미술학원에 간다. 그날은 점심 먹을 시간을 아껴 시간을 확보해야 하므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십여 분. 제일 만만한 게 김밥이다. 병원 근처 김밥 집을 모조리 검색해 보아도 마땅하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분식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숨은 김밥 집. 이름도 찾기 어렵고 지도에 분명 있다는데 도저히 눈에 띄지도 않던, 그런 집이었다. 포탈에 등록되어 있는 것이 용하다 싶을 지경.


멸치, 무, 양파, 파뿌리, 고추씨, 표고버섯, 보리새우, 다시마, 가쓰오부시, 띠포리, 황태를 넣어 만든 육수와 함께 계란 김밥을 내어주는데 계란이 포슬포슬 잘게 다져 나온다. 밥의 비율보다 더 많은 계란의 비율. 가끔은 오이, 가끔은 시금치가 우엉과 단무지 사이로 들어 있고 전반적으로 어우러는 식감으로 한 줄 뚝딱, 후다닥,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약간은 삼삼한 듯한 맛이 오히려 건강한 느낌으로, 평소 짜게 먹지 않는 내 입맛에 딱이다. 라면과 세트로 먹는 것이 가장 인기 메뉴인데, 라면도 그냥 끓여내지 않고 콩나물과 각종 야채를 올려 국밥 같은 느낌으로 김밥과 함께 먹으면 든든한 한 끼 식사 완성이다. 숨은 맛집 찾기에 성공! 이후로 단골이 되어 거의 모든 메뉴를 섭렵하였다.


그 자그마한 공간은, 가끔은 단골들로 바글바글하고, 또 가끔은 아주 한산하다. 나만 있는 어느 점심이면, 주인아주머니는 쉼 없이 재잘재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코로나 전에는 2배 정도 손님이 많았고, 지금은 단골만 거의 찾는다, 간판도 발견하기 어려워 최근에 간판을 바꿨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잘 몰라준다, 내가 얼마나 이 국물을 만들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데, 사람들이 국물을 남기면 속이 상한다, 이 계란 김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김밥 천국과는 비할 바 아니며, 고봉민 정도 되어야 비교할 수 없는 고급진 김밥이다’ 등등. 나는 그저 우걱우걱 씹어 먹고, 계좌 이체를 해 드리며, ‘아 네네, 그렇군요’, 동조해 드릴 따름이다.


오늘은 '첫 손님 징크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사람들이 첫 손님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고. 오늘 아침에 첫 손님이 여자 손님이었는데, 이후로는 여자만 줄곧 왔단다. 목욕탕 사장님들이 남자 손님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남자 손님들이 샴푸 등 적게 쓰고, 빨리 씻고 나가기 때문이라며, 자신도 실은 남자 손님을 선호한다고 하였다. (응? 나 여자 손님인데?) 남자 손님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는 당연히도, 보통 세트로 많이 먹으니 그만큼 매상도 오르기 때문이라 하였다. (어쨌든 오늘은 나를 포함하여 여자 손님만 계속 왔으니 운수 좋은 날은 아니라는 소리다.) 어느 날은 오만 원권을 내는 사람이 첫 손님으로 왔는데 그날따라 오만 원 권이 줄곧 생겼다고 한다. 김밥 한 줄로 첫 손님이 스타트를 끊으면, 이후로도 다 김밥 한 줄만 사가더라며 치를 떨었다. (휴, 다행히 오늘은 나 떡만둣국 시켰구나.) 어제는 첫 손님이 세트로 시작해서 김밥 라면 세트만 12개 나가서 무척 흐뭇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환자도 마찬가지다. 전공의 때 당직 서보면 어느 날은 대풍만 줄줄이 들어와서 여기는 혈전용해제 쓰고, 저기는 시술 들어가고, 여기저기 콧줄 파바박 꽂아놓고, 코로 밥 먹이고 그런 때가 왕왕 있었다. 어느 날은 이석증만 줄줄이 손잡고 들어와서 내 발에 토하고 어지러워 넘어갈 것 같다며 멱살 잡히고 줄줄이 입원하기도 한다. 또 어느 날은 온통 손발 저리다고 와서 신경전도 검사 예약이 풀로 잡히기도 한다. 김밥 집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이런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내심, 끄덕끄덕,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매주 한두 번은 들러주는 내가 편해졌는지, 국물이라도 조금 남길라 치면 혼쭐을 내신다. 이게 얼마나 공을 들인 건강 육수인데 남기냐며. 생색도 잘 내고, 간섭도 많고, 말도 많지만, 요리도 잘하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이상하게 자꾸만 정이 간다. 별 것 아닌 듯한 김밥에도 자꾸 정이 가고 손이 가고 입을 대듯. 그 별 것 아닌 김밥에도 아주머니의 귀한 시간과 노고와 공이 잔뜩 들어 있음을 알기에, 그 정성을 먹고 힘내어 하루를 이어간다. 단돈 3,500원에 얻은 고맙고도 값진 산물이다. (게다가 글감까지 얻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번창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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