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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an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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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장벽?




의학 에세이 쓰는 연습을 하기 위해 만들었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매거진을 쓰다가도, 거기 있던 에피소드를 엮어 놓은 <신경과 전문의 여자 사람> 브런치북을 내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드는 생각은 '이걸 어디까지 공개해도 되나?' '이 환자의 이야기는, 내가 마음대로 써먹어도 되는 종류의 것인가?'였다. 스스로를 특정 짓지 않았기에, 환자들도 '익명의 불특정 다수 중 누군가'로 남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당시 내겐 구독자가 두 자릿수 정도였으며, 알아채 봐야 얼마나 알겠어, 하는 안일하고도 편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나브로 구독자도 늘어나고, 조회수도 1000을 넘어서는 글이 20개가 넘는 시점부터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등장했던 환자들에게 이제라도 양해를 구해야 할까를 생각했고, 조금씩 글에 등장했던 병원 과장님들께도 선처를 구해야 할까 싶었다. 대학마다, 병원마다, 윤리위원회가 있는데, 케이스 리포트만 해도 개인의 동의를 구하거늘, 그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내가 막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들이 나중에 우연히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글에 등장했음을 알고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이건, 누가 봐도 내 이야기잖아? 하면서 분개하지는 않을까?


윤리적인 문제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만 사실이고 일부는 상황에 맞게 조금 지어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특정 지워진 그 누군가는 지어진 사실에 함부로 이야기를 입혔다고 기분이 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소설로 구사할 것이냐는 문제에서는, 내가 그만한 깜냥이 되지 못한다. 처음에는 실험적으로 가상의 사람들을 만들어 소설처럼 의학에세이를 써보았는데 독자들은 헛갈려하기만 했고, 의사가 쓴 글에 의학 조언을 남기곤 하였다. 그런 댓글에다가 '제가 바로 그 의사인데요', 할 수도 없고, 글을 제대로 안 읽는 사람들이 천지구나, 생각했다. (혹은 내가 글을 너무 못썼나 보구나, 생각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1998 한과영>이란 제목만으로도 누군가는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뉴로그림이 누군지, 그녀 주변의 누구에 대해 쓸 것인지. 나는 고교 시절을 혼자서만 지내지 않았고, '나의 이야기'를 쓴다고는 하지만, 분명 영향을 받은 다른 사람들이 꽤 등장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 어떻게 그들을 기술할 수 있을까. 내가 보고 느낀 경험들을 기술하는 것은, '나'의 시선이니 괜찮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을까?


추억은 방울방울, 1998년으로 돌아가는 회상 여행은 즐거웠다. 당시의 일기장을 찾아보고, 그때의 감성을 재해석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 감성에 깔깔댈 수 있었다. 현실 세계 친구들의 과거 편지를 보며 재밌어했고, 현재는 연락하지 않는 지난날의 시절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도 하였다. 특히, 날 것의 감정을 온전히 다 보여주었던 교환 일기나 편지를 보면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당시의 물건, 당시 내가 입고 있던 옷, 내가 즐겨 듣던 음악과 당시의 영화에 대해 떠올리는 시간들은 참으로 좋았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생각하려니 암담함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응답하라 1998>이나, <스물다섯, 스물 하나>처럼, 여주인공의 현재 남편은 누구인가로 어그로를 끌며 전체 스토리를 풀어가고 싶었으나, 그러려면 출연을 뜻하지 않는 과거의 그들이 수면 밖으로 나와주어야 했다. 이건 불가능하다. 누가 누굴 좋아했고, 어떻게 되었는지는 내가 떠벌일 일이 아니다. 한낱 가십거리로 만들 수는 없다.


그저 처음에는 나의 소중한 학창 시절을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하루가 한 달 같던, 순간순간이 반짝반짝 빛이 나던 시절을 더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고전을 읽는 10대 ~ 40대 시절별 감상 포인트가 달라지듯, 당시의 경험을 현시점에서 새로 경험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보는 사람도 재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절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학창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은 불특정 고등학생들까지, 내 글로 공통의 어떤 것을 끌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누군가 우연히 글을 통해 나를 알아보더라도, 내가 쓴 글로 웃음 짓고 함께 추억을 회상하고 싶었다. 왜 이걸 네 맘대로 썼느냐 타박을 듣고 싶지는 않다. 내게 소중했던 시절에 대해 쓴 글이, 누군가의 기억에 먹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 글이 특정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피해가 발생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으로 인해, 혼자 엄청 설레며 시리즈를 구상해보던 머릿속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바로 며칠 전 뉴로그림 QnA에서 '저는 작가의 장벽을 느낄 새도 없었는걸요'라고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이 바로 그 장벽 앞에 서 있는 꼴이 아닌가. 그리하여 꽤 많은 부분이 삭제되고 있지만, 고민 끝에 현답을 얻어 무사히 글을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결국에는 스토리라인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학창 시절 에세이가 되고 말았지만, 모두가 나름의 방식으로 즐겁게 1998년으로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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