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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Jan 24. 2023

온실 속 화초


성실, 정직, 노력.


우리 집 가훈이다. 현재 나의 가정에는 특별한 가훈이랄 게 없는데, 나의 부모님과 살던 다섯 가족의 시절 우리 집 가훈은 '성실, 정직, 노력'이었다.


아버지는 가훈대로 성실하셨고, 정직했고, 노력하셨다.

어머니는 가훈대로 성실하셨고, 정직했고, 노력하셨다.

언니와 오빠와 나는 가훈대로 성실했고, 정직했으며, 노력했다.


교과서에 나오듯,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노력하며 살아갔으며,

형제자매 간 우애는 깊었고, 콩 한조각도 나누어 먹는,

싸움을 했던 기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어쩌면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참으로 기이한 가족이었다.


난 교과서에도 그렇게 하라고 나오니까,

의당 그것이 당연한 줄 여기며 살아왔다.




깊은 고통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든다.
-니체, 선악의 저편


대상 수상작을 봐도,

소설을 봐도,

드라마를 봐도,

교과서 말고는 우리 집 같은 스토리는 없다.


'화목한 가정 아래, 우애 깊은 형제자매와 어린 시절을 함께 하였으며, '

자기소개서에나 나옴직한 이 스토리는 세간의 관심이나 주목을 끌만한 대목은 확실히 아니다.


어린 시절 결핍으로 인해 새로 태어난 에세이,

우울, 불안, 이혼 등의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경험을 안고 있는 에세이,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일이 있는 사람의 철학이 담긴 에세이,

아픔 끝에 삶의 어떤 철학을 얻어낸 것들이 대부분이다.

괜찮은 소재를 가지고도 잘 풀어내는 작가가 있고 아닌 작가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작가로서는 소재부터가 빈약한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한다.



뭔 배부른 소린가 싶겠지만,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보니,

누가 나 같은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겠나 싶은 거지.


그렇다고 사람들을 계도하거나 의사로서 잔소리를 늘어놓기는 싫고,

사람들에게 먹힐 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괜히 장비 탓을 하는 중이다.

장비가 있어도 풀어낼 여력도 없으면서..


참 안온하면서도 재미없는 인생이 아닌가.

그런 평범함이 쌓이고 쌓여 시대를 대표하는 인간상으로서 소설화하는 능력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런 짬이 되질 않아 소재 탓을 하고 만다.


진짜 고수는,

그 안온하면서도 재미없는 일상 속에서도

숨은 진주 같은 말들을 생산해 낼 텐데.


요즘 너무 잘 쓴 글, 잘 나가는 글만 자꾸 읽어서인지

평범함이 무기가 될 수 있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분명 있을 거야.


성실, 정직, 노력 같은 고리타분함 중에서도

한줄기 빛과도 같은 위트 있는 뭔가가

분명, 내게도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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