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환상
눈 앞의 달콤함을 쫓는 삶은 얼마나 달콤한가. 즉각적이고 확실한 보상을 주는 일 말이다. 나에겐 달콤한 것을 먹는 것이 그렇다. 제철 과일을 사다 먹거나 좋아하는 빵집에 들리고, 요리를 해 먹거나 고심해서 고른 간식의 설탕 코팅만 떼어먹는 일. 그간 이런 걸 너무 잊고 살아서 그런걸까, 아니면 가까이 했던 것들에 질려서 그런 걸까 오랜만에 찾는 그런 달콤함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소시민적 삶. 아침에 일어나면 청소를 하고, 정갈한 밥상을 차린다. 오후에는 잠깐 집안일을 하고, 빨레가 마를 동안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온다. 한참 책 속 주인공의 서사에 빠져있다가 간단히 저녁을 차리고, 밤에는 글을 쓴다. 언젠가 이 글을 모아 문학상에 낼지도 모른다.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상을 받는 기분 좋은 설레임으로 작문에 몰입했다가 가족의 안부를 살피고, 잠에 든다. 반복되는 삶이 지겨울 때는 작문으로 도피했다가, 가끔은 여행을 떠난다. 취향을 깊어지게 할 신문물들을 눈에 담아두었다가 일상에 조그만 변화를 준다. 가끔은 새로운 걸 배우러 갈지도 모른다. 요리나, 공예나, 악기 연주 같은. 어제 오늘 내가 꿈 꾼 전형적인 소시민적 삶이다.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 잠에 든다, 라는 문장을 쓸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다 만약 이 삶이 지겨워진다면? 에서 멈칫했다. 분명 언젠가는 지겨워진다. 그렇지 않은 것은 없으니까. 글 쓰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지겨워진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나아가는 것 없이 같은 자리를 빙빙 돈다는 불만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도전적인 삶이 그립겠지.
분명한 건, 도전적 삶을 버리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거다. 다만 소시민적 삶의 달콤함을 조금만 일상에 녹이고 싶다.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이렇게 멍 때리는 하루 보내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많이 만들기? 다이어트 간식의 설탕 코팅만 떼어먹기? 가끔은 쿠팡에서 대용량으로 주문하는 대신 시간을 내서 좋아하던 가게에 들리기? 여러가지 방법들이 떠오른다. 지금의 나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 외에는 좀처럼 무언가를 할 기력이 나진 않지만, 좋다. 이들을 관통하는 건 전부 ‘비효율을 감수하는 것‘인 듯하다. 그동안 너무 오래 비효율을 배척해왔다. 삶의 효율 뿐만 아니라 비효율마저 아낄 수 있을 때, 한 차례 정반합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이걸 몰라서 참 오래 나 자신을 괴롭혔지 싶다. 누구도 비효율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효율을 미덕으로 꼽는 세상이라. 어떻게 비효율까지 사랑하겠어, 삶을 사랑하는 거지. 삶을 사랑하니 그 안의 비효율마저 아끼는 거지. 삶을 사랑한다는 게 대체 뭘까? 어떻게 사는 게 삶을 사랑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