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게

할머니 손녀 딸 서영이가.

by 느루 작가

할머니, 나 서영이. 요즘 잘 지내고 있지? 할머니는 무슨 그렇게 걱정이 많아서 기억을 다 지워버렸대.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안 듣더니. 허리랑 무릎도 안 좋은데, 기어이 우리 반찬 해서 보내준다고 고생해서 아프잖아. 할머니가 아프니까 내가 한 약속도 못 지키고. 보청기 좀 쓰라니까, 불편하다고 안 써서 우리 얘기는 듣지도 않고, 혼자 속에 끓이니 마음이 오죽 배겼을까.


할머니, 나 서영이야. 영주 아니고 서영이. 할머니랑 얘기 못 한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다. 원래 좋은 일 생길 때마다 전화해서 할머니한테 자랑했는데, 할머니 또 전화 안 들린다고 끊어버리고,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고. 할머니한테는 별거 아닌 것도 자랑하면 하늘이 되는데, 할머니만큼 나 잘났다고 봐주는 사람 하나도 없어.


할머니, 그런데 나만큼 또 할머니 챙기는 손주도 없었지? 할머니 자식들보다 많이 전화하고, 이것저것 챙겨 보내고. 할머니 생신 챙겨드리고. 참, 할머니가 조기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바보같이 굴비를 보내서 어찌나 미안했는지 몰라. 하필 또 일이 생겨서 내가 못 가서 급하게 이모한테 연락해서 할머니 반찬 좀 해달라고 했지. 내가 맛있게 해 드렸어야 했는데. 내가 매년 가을 낙엽 날릴 때면 보내주던 곶감이 할머니 입에 딱 맞았는지 봄에 또 보내달라고 전화했잖아. 그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할머니 맨날 우리가 뭐 사다 준다고 하면 괜찮다고만 하지, 먼저 뭐 사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 내가 드디어 할머니한테 도움이 되나 싶어서 바로 보냈는데.


할머니, 요즘 슬슬 날이 따뜻해졌잖아. 요양사 선생님이랑 같이 나가면 꽃 많이 보고 들어와. 할머니 그동안 다리 아프다고 집에만 있어서 답답해했잖아. 내가 다 커서 할머니보다 더 크면 등에 업고 여기저기 다닐 거라고 그렇게 큰소리쳤는데, 막상 크고 나니까 세상 사는 게 힘들어서 할머니 보러 가는 것도 일이었네. 할머니는 우리 언제 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게 일이었을 텐데. 할머니 세상은 우리였으니까. 우리 없으면 못 산다고 그렇게 노래를 했으니까. 참 불효했어.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랑 두 분이서 한평생 자식, 손주 먹여 살린다고 고생했잖아. 그 손길, 고생 다 어디 안 가고 우리 마음에 있다. 깊고 따뜻한 마음에 푹 담겨있어. 할머니에게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들과 갚지 못한 은혜가 쌓여 내 마음에 죄책감을 심어주었지만, 그 사랑 때문에 만들어진 죄책감은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 되더라. 할머니가 우리한테 해준 것 그대로 남들한테 베풀며 살게 되더라.


할머니, 내 얼굴 보고 영주 언니 찾아도 이제는 “나 서영이.” 말 안 해도 될 거 같다. 할머니 머릿속에 나는 아직도 작고 어린 서영이인가 보다 싶다. 그 서영이 옛날처럼 많이 사랑해주면 돼. 다음에 갈 때는 내가 맛있는 과일 들어있는 찹쌀떡 들고 갈게.


할머니, 좋은 것만 기억하고 따뜻하게 지내고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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