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2년, 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아직도 난 두분이 살아계신 것 같다. 일 때문에 집 정리를 못 도왔는데, 어떻게든 갔어야 하나 후회가 된다. 깨끗이 비워진 집안을 사진으로만 봤지, 직접 가보지 못해서 나에겐 아직도 할머니, 할아버지 사시던 집이 너무나도 온전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잘 지내다가 겨울이 되니 밤에 잠을 통 못 잔다. 거의 두 달째 매일같이 밤을 샌다. 무채색의 계절이라 그런지 뭔가 답답하니 꽉 막힌 기분이 든다.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이면 꼭 창을 열고 밖을 보는데, 해가 짧으니 그 하늘이 아무리 아름답다한들 순간의 기쁨뿐, 아쉬움이 찾아온다. 두분을 보내드리고나니 별 것이 다 아쉽고 슬프다.
초반엔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처음 경험해야 했던 게 성인이 된 후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후라 더 잘 이겨내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되려 '어린 아이 때 겪었더라면 어차피 내가 뭔가 더 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안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두분이 더 일찍 돌아가셨어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첫 사별이 내가 절대 보내고 싶지 않던 두분을, 내가 여유가 있었음에도, 아무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보내야 했던 게 원통해서 그렇다.
할머니한테는 존댓말을 쓰지 않고 자랐다. 할머니는 존댓말이 거리감이 느껴져서 싫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와 더 가깝게 지냈다. (할아버지는 80세가 다 될 때까지 바깥일을 하시느라 여유가 없으시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여기저기 몸이 아프면서도 정성 다해서 우릴 돌보는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 내가 나중에 크면 맛있는 거 사줄게.",
"할머니, 내가 나중에 크면 열 밤, 아니 백 밤, 천 밤 자고 갈게.",
"할머니, 내가 나중에 크면 맨날맨날 업고 다닐게."
"할머니, 내가 나중에 엄청 멋지고 유명한 사람돼서 돈 많이 벌어올게."
그런 약속을 하곤 했다.
내가 지킨 건 맛있는 음식 차려드리고 집 정리한 것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가장 슬펐던 건, 할머니에게 나는 결국 그냥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로만 벌어먹고 사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남아버렸다는 것이었다. 매일 찾아가겠다고 했던 약속도 집에만 있어야 하는 할머니에겐 아픈 희망만 주었던 것이 되어서 할 말이 없었다.
할머니가 의식이 있을 때, 댁에서 지내실 동안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밤, 할머니는 혼자서는 화장실을 가실 수 없어 이모가 부축해서 이동했다. 1년여 시간 동안 요양원에 지낸 할머니는 온 몸에 근육이 빠져서 겨우 기어다니는 정도만 가능했기에, 꼭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만 했다. 이모가 화장실에서 손빨래를 하는데, 할머니가 옆에서
"이게, 죽어야 하는 게 살라카니까 이래 힘들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할머니가 오래 사시길 바라는 것이 어쩌면 내 욕심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날 새벽엔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할머니가 코골며 주무시는 모습을 한 번씩 보면서, '그래도 잘 주무시네...', '그래도 아직은 살아계셔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과 함께 할머니가 한 말을 되뇌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이모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 했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가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다고. 아마 나는 손주니까, 어리다고 생각해서 내 앞에서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겠거니 했다.
요즘들어 자주 외가 식구들 모여서 가서 놀던 사진을 들여다보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외삼촌은 20년도 더 전에, 내가 돌이 됐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셔서 나의 사진첩에는 한 장도 없었다. 손주들 앞에선 티 하나 안 내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속이 얼마나 탔을까 생각하니 참 가슴이 아팠다. 특히 할머니 성격엔 어쩌면 자식, 손주들 모여 있을 때면 행복함보다 슬픔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는 우리의 작은 표정 변화도 알아차려서 세심하게 챙겼던 분이었으니. 당신 속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 외삼촌 말씀을 하셨던 걸 생각하면, 어쩌면 지금 저 먼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전화하면 받을 것만 같고, 집에 가면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고 계실 것만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꼭 다시 보고 싶다.
꿈에라도 자주 나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