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의 세계
딸과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성장과정에 따라 그네들의 차이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 차이가 선천적인 기질상의 차이거나 나의 선입견에 의한 것일지라도, 어느 순간 학교에서 가르치는 여학생이나 남학생들과 겹쳐지는 것은 일반적인 성별 차이를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레고 조립이나 종이 접기와 같은 활동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고, 엄마나 아빠와 약속한 어떤 것이나 자신이 하기로 마음먹은 지점이 어긋나는 것을 참기 힘들어한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두 번, 세 번 불러도 대답이 없고 엄마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에 반면 개취(개인적인 취향)란 것이 없어서, 옷이든 가방이든 신발이든 걸칠 수만 있으면 오케이.
딸은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와 이야기 짓기와 같은 활동을 좋아하고, 티브이나 영화를 보다가도 싫증 내는 경우가 있다. 불렀을 때 한 번에 알아채는 일은 당연하고, 달리는 차 안에서 엄마 아빠가 대화하고 있는데 자신과 관계없는 화제라도 은근슬쩍 끼는 것이 다반사. 반면에 옷이든 신발이든 하다못해 공책 한 권이든 딸이 고를 수 있는 여지를 주고 구매하는 것이 나중에 그냥 처박히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자신이 마음에 들어 어떤 물건을 샀더라도 이것은 이것이 불편하다, 저것은 저것이 문제로다 하며 트집을 잡으며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중학교에 내려오기 전 여고와 남고에서 근무를 해 보았지만, 좀 더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중학교이다.
남중생은 일단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아이들과 소통하며 재미있는 수업을 좋아하는 나는 학기 초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이 학생, 저 학생에게 말을 걸고 나의 사적인 경험도 털어놓으며 긴장감이 그다지 필요 없는 수업을 이끄는데, 그러다 보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종국에는 너무나 시끄러운 수업으로 뒤범벅이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교사의 말이 들어 먹지 않는 순간이 있다. 반면, 체구가 있거나 험상궂거나 탁월한 말발로 아이들을 제압하는 특정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단 한 명도 조는 아이가 없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사천리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볼 때면 자괴감에 움츠러들 때가 있다.
내 수업이 좋다면서 선생님 차별하기니?!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이라면 반드시 통과의례처럼 거쳐 가는 것이 있는데 남학생반에서는 정글 싸움이 꼭 한 번씩은 벌어진다. 각기 다른 학교에서 졸업하고 모인 만큼 누가 센지 겨뤄보고 싶은 터. 주먹싸움을 하며 자기들끼리 강자를 가리고 힘의 키재기를 해 본 다음에야 비로소 학년에 평화가 온다.
여학생들은 대체로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젊고 예쁘고 잘생기고 핫한 것은(선생님 포함) 언제든지 학생 누구에게나 패스권으로 통용되겠지만, 그런 무기가 없는 현재 보통.의 중년. 선생으로서는 다른 것으로 어필해야 한다. 사춘기가 한참 정점에 오른 여학생들은 친구+이성+외모에 한참 관심이 쏠려 있어 내가 하는 이야기를 대체로 흘려듣지만, 선생님의 학창 시절 이야기나 첫사랑 이야기나 사적인 실수담을 이야기할 때는 간혹 깔깔 웃어주며 친밀감을 표시한다. "선생님, 오늘 저 뭐 바뀌었게요?”라고 물었을 때 "안경테 바꿨네.”, "앞머리 잘랐네.” 와 같이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며 의도한 정답으로 대답하면 너무나도 좋아한다. 그 와중에 선생님께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선생님, 우리 반 너무 시끄러웠죠? 다음에 제가 더 수업 잘 들을게요.”라며 수업이 끝난 후 지나치게 교사의 눈치를 보며 다가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들끼리의 관계에서 해소하지 못한 내적인 친밀감을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메꾸는 데 필요 이상의 질문을 하며 항상 교사의 주위를 맴도는 아이도 있다.
특별하기도 하고 섬세하기도 하고 잘 다치기도 하는 감정은 때때로 마음에 켜켜이 쌓여 가라앉는다. 여학생들은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거나, 자신의 마음과 상반되는 어떤 상황이 왔을 때 애써 참으며 괜찮다고 했다가 교우 관계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는 갈등 상황에서 비로소 쏟아놓는다. 그래서 중재자로서 감정적으로 틀어진 두 아이를 두고 각각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2학기가 한창인 시점에서 상대가 서운한 때는 거슬러, 거슬러 올라간다. "1학기 때 그 애가…….”로.
남학생과 여학생은 과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상이하다.
남학생은 과제 수행이나 시험을 보는 데 있어 결과가 나쁘거나 점수가 잘 나오지 않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의지' 부족으로 이해한다. ‘나는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기 때문에 점수가 낮은 것이다. 고로 언제든지 내가 공부를 한다면 성적이 향상될 것이다.'라는 발상.
여학생은 월등히 성취가 높거나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데도 대체로 그것을 내세우지 않는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서 잘한다고 우쭐대다 잘난 체한다면서 비난받거나 질투의 대상의 되는 것을 경계한다. 혹은 자신의 결과물을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선생님, 저 시험 진짜 못 봤어요.”라고 말해서 점수를 확인해 보면, 90점 이상의 우수한 성적.
그래서 남학생들은 "너 충분히 잘할 역량이 있어. 거기에 성실성만 더해지면 되겠어.”라며 능력의 인정 위에 격려하는 방식으로 지도해 나간다. 여학생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잘했어. 좀 더 프라이드를 가져도 되겠어.”라며 현재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방식으로 이끈다.
모든 남학생과 여학생이 이런 것은 아니다. 이런 도식화가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으나, 그네들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로 가볍게 이해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