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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May 29. 2022

나는 그렇게 또 이기적인 딸과 엄마가 되었다.

2019.12. 2. - 치료12일차, 입원 결정

 지난 주말, 강동K대 안면마비센터의 한 교수님팀이 안면마비환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카페를 알게 되었다. 정말 환자가 된 입장에서 이런 카페를 운영해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고민하다가 발병 7일차의 안면근전도 검사 자료를 올려서 문의했다. 다행히 답변을 달아 주셨는데, 다니던 신경과와 한방내과의 전문의 이야기와 좀 많이 달라서 며칠을 끙끙 앓았다.

 안면신경의 손상도 6~70프로 손상과 80프로 이상의 손상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문의글에 대한 답은 대략 이러했다. 보통 안면마비는 약 2주간 악화되기 때문에 보통은 좀 더 정확한 예후확인을 위해 발병 2주차에 근전도 검사를 진행하지만, 발병1주차 검사결과지의 신경손상도가 약 80%이상의 손상도를 보이고 있어, 이후 정확한 검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그 이상의 손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장기적인 치료를 요할 수 있으니, 좀 더 적극적인 치료를 요한다는 답이었다. 

 그 댓글을 보고 그날 오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온통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뿐이었다.

아, 그래. 이대로는 안될 거 같다. 당장 입원해야겠다 싶었다. 어디든.


 중증도 이상의 손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안면마비는 잘 쉬고 초기에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는데, 마음같아서는 다 놓고 입원치료를 받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지난 주말부터 신랑과 어떻게 할 지 상의하고 있었다. 입원할까? 그럼 어떻게 할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입원을 하려면 아이를 봐줘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여건상 그렇게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둘이서 결론이 없는 고민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은 안면마비 진단 사실을 친정 부모님께 알렸다.  

 아무래도 놀란 친정부모님이 당장에 달려오셨다. 상황 설명드리고 입원치료를 받는게 좋을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아직은 두 분 다 직장에 다니고 있으셔서, 부모님도 많이 당황하셨다. 친정엄마는 입원하고 퇴원 후에도 치료가 계속 필요할 수 있으니, 엄마가 우리 집에 당분간 와 계시고 주말에는 친정으로 가시는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친정엄마의 직장이었다. 노년에 재취업한 계약직 노동자에게 장기휴직의 권리는 없다. 계속 일하거나 그만두거나 둘 중에 하나일 뿐이다. 결국, 나는 엄마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시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엄마는 오히려 잘 되었다며, 평생 일하며 지냈는데, 이 참에 쉰다고, 이제 힘들다고 하시며 나를 안심시키셨다.


 사실 요 며칠 얼굴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고, 어딘지 얼굴과 몸이 너무 피곤하여 아이에게는 옆에 있어도 있지 않은 엄마였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내가 아프니까 내 자식도 뒷전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또 그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어렵게 들어간 꽤 괜찮은 회사여서 좀 더 일하고 싶어하셨었는데, 정말 미안하고 죄송했다.


 미안한 마음 반, 든든한 마음 반.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내 가족을 일구며, 가족의 범위가 더 확장되는 것이 좋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 안에서 내 역할은 늘어가니 그 무게감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은데 '어른'과 진짜 '자식'된 도리를 해야하는 위치에 선 내가 이게 맞는지, 낯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볼 때마다 "나 나이드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너희들 나이먹는 건 속상해."라고 할 때 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한테 너 나이먹어서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나이가 되었나 싶기도 하고, 늘어나는 주름살만큼 평생 직장을 다니신 엄마가 안 쓰러워 내가 더 잘나서 그 돈을 내가 드리면 좋을텐데라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아직은 자식에게 기대고 싶어하지 않는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죄송하다. 

 가족이란 존재는 참 그런 거 같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고,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미안한 그런 이상한 관계.


오늘 나는 그렇게 또 이기적인 딸, 이기적인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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