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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Feb 13. 2022

흐린 날 더욱 선명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 집은 산속에 있다. 걸어서 10분 내에 지하철 역이 있는 나름 역세권이지만 주변에 상가도 번듯한 카페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단지 앞으로는 산을 뚫고 지나가는 고가 터널이 있는 데다 철로가 지나가고 앞과 뒤가 다 산이라 무엇이 더 생길 수 없는 요새 같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동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는데 역세권과 숲세권에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여도 우리는 당최 실감을 못 하고 산다. 요 몇 년 그런 마음으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 남편이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남들처럼 은행돈을 등에 이고라도 움직이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지만, 나는 그냥 지금 이 집도 좋다.


 그런 우리 아파트, 특히 내가 사는 동은 가끔 산속 펜션에 온 느낌이 날 때가 있다. 거의 대체로 조용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는 이 고요함이 적응이 안 됐다. 하루는 집에 있는데 귀가 너무 조용해서 이렇게 적막한 게 좋은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전에 살 던 집이 참 시끄러웠던 곳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지난 4월 4일의 오후. 그날은 날씨가 좀 이상했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에 기대어 내려앉은 구름들이 하늘 가득했고 해는 저무는 중이었다. 가을빛이 나는 봄날이었다. 그런 날은 괜히 기분도 멜랑콜리해진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시간도 아닌데 뒷 산 너머 회색빛으로 뭉개진 구름을 커튼 삼아 사라진 해님이 어디로 간 건지 궁금해졌던 오후. 대문 밖에서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는 그대로 멈춰 서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순간 사로잡혀 사진을 찍고 말았다. 







 분명 수줍게 핀 벚꽃과 연둣빛의 나무가 한창이었었는데, 봄날의 하늘이 맞는 거야? 지금 혹시 나는 어느 계절에 있는 거지?

 가는 해가 아쉬웠다보다. 태양빛에 물든 나무들 덕분에 단풍과 벚꽃이 한 시공간에 있는 진풍경을 보았다. 내가 만약 화가였다면 이 순간을 붓으로 화폭에 옮겨내려 애썼을 것이다. 





문득, 흐린 날 더욱 선명해지는 것들이 뭘까 생각했다. 보통 흐린 날은 기분도 흐리게 한다지만 흐릴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것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나는 가끔은 이렇게 흐려지는 순간이 더 좋다. 잊고 살았던 것들은 흐린 날 더 진해진다. 내 가까이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한여름 비가 오면 땅 내음이 더 짙어지고, 나무와 풀의 녹음도 더 짙어진다. 밝은 날 화려한 색과 명암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더 도드라진다. 언젠가 한 번은 아이 등원 길에 비가 와서 짜증이 좀 났던 적이 있었다. 빨리 가야 하는데 아이는 비가 와서 신이 나는지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고인 물에 장화를 담갔다. 그때 아이가 했던 말 "엄마, 땅이 춤을 춰." 아마도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며 바닥에 부딪히는 모습이 아이에게는 땅이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였었나 보다. 


 흐린 날엔 커피 향도 음식 냄새도 더 진해진다. 왠지 따뜻한 커피는 흐린 날 마셔야 더 맛과 향이 좋은 것 같다. 부침개와 막걸리가 흐린 날 떠오르는 것도 예외일 수 없다.

 흐린 날은 감정과 감각을 더욱 증폭시킨다. 옆집의 피아노 소리가 괜히 더 좋아지고, 장롱 속에 묵혀 두었던 옛 편지들을 괜히 한번 더 꺼내어 보기도 한다. 오래된 앨범과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에 마음을 두었다가 평소엔 귀찮아 내버려 두었던 서랍장 위에 소복이 앉은 흰 먼지를 슬쩍 닦아내기도 한다. 


 흐린 날 더욱 선명해지는 것들로 인해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매일 흐리면 싫지만, 그날의 구름과 산과 나무가 시공간을 초월했던 것처럼 흐린 날은 가끔 나의 의식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주기에, 가끔 그런 흐린 날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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