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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Feb 08. 2022

살림에 물욕이 솟구치면 나는 찬장을 정리한다.


 지난 일요일 오후. 어떻게 된 일인지 나의 주방 찬장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품고 있던 각종 그릇과 컵, 집기류들을 다 토해내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맨 몸으로 누워있는 아기 같았다. 그렇게 대책 없이, 준비도 없이 시작된 주방 청소. 나의 집안일은 이렇게 그날의 느낌대로 시작되는 경우가 꽤 많다. 나이 마흔에도 냉장고 청소와 같은 이런 청소들은 미리 계획을 하면 하기 싫어진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한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일어난 참사였다. 왜 참사라고 하냐 하면, 잠시 멍 때릴 수 있는 일요일 오후가 통째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가끔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끈 미니멀 라이프를 주제로 한 영상을 본다. 하나같이 세련되고 잔잔한 영상미에 보는 이의 마음과 머리도 정갈해진다. 영상을 보는 순간만큼은 저 집이 내 집이요, 나도 미니멀 라이프의 주인공이 된다. 같은 주방 물소리인데 저 집은 물소리마저 힐링을 준다. 문제는 그 영상을 끄는 순간 시작된다. 그 환상은 나의 바람뿐이었다는 걸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날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래, 나도 오늘 주방 찬장 좀 정리해 볼까?'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의 미니멀 라이프를 향한 나의 욕망은 첫 번째 상부장을 열어젖히고 일단은 무조건 다 꺼내 놓아보는 것으로.  

돌아서면 밥때가 돌아오는 주말, 그나마 남편과 혹은 혼자라도 커피 한잔 할 여유가 있는 오후 2시, 나는 커피잔이 아닌 행주와 걸레를 들고 의자 위에 선 것이다.







2층 집에 사는 나의 반려 살림들



 찬장에 앉은 묶은 때와 먼지만 닦아 내려다가, 유리병과 행주들도 끓는 물에 목욕재계를 시켰다. 그러면서, 또 후회를 했다. 

그래, 드링킹 자를 맥주잔으로 쓰면 됐을 것을,,, 나는 뭐 하려고 무거운 맥주잔을 샀을까.


 밀폐 유리병은 이것보다 더 큰 꿀병들을 포함 1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여러모로 잘 활용하는 편이지만 자주 쓰지 않게 된다. 엄마가 가끔 담가주시는 장아찌류나 물김치를 보관하거나, 육수나 채수 만들어 둘 때나, 냉동실에 저장해 두고 먹는 식재료들(들깨나 참깨, 청양고추와 같은)을 보관하거나, 가끔 만들어 먹는 그래놀라나 삶은 토마토 등을 담는 용도이지만 늘 상 꺼내 쓰진 않는 유리병들. 그래도 나의 살림 습관이나 규모로 볼 때 가용할 유리병의 개수가 딱 그 정도는 있어야 할 거 같다. 그래서 어쩌다 이쁘다는 이유로, 또 쓰지 않을까 싶어 씻어 둔 소스병들이 보일 때마다 모아뒀던 것들은 양이 차면 종종 분리배출행이다. 이 날도 그런 이유로 뒀던 유리병 2개는 깨끗이 씻어 비움을 했다.


 손이 자주 가는 유리 밀폐용기들은 손 닫기 쉬운 첫 번째 칸에, 두 번째 칸은 스텐용기과 플라스틱 용기를 둔다. 스텐용기과 플라스틱 용기는 주로 손질한 식재료 보관, 자투리 채소들을 보관하거나 용기내 실천으로 간식이나 식당에서 일회용기 대신 음식을 담아오는 용도로 쓴다. 맨 위칸은 목욕을 마친 유리병들을 두었다.



그다음은 옆 집에 사는 컵들이 바깥구경을 할 차례다. 아니, 컵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슨 컵이 이렇게 많지? 머그컵 중 거의 대부분은 선물 받거나 어디서 준 것들이다. 그래도 잘 쓰고 있다. 그나마 와인잔 하나도 깨뜨리고, 유리잔들은 몇 개 깨 먹어 이 정도일 뿐, 더 많았을 텐데... 짝수가 없는 외로운 유리잔들.




그중에 미술관 서포터즈를 하고 받았던 굿즈 컵이 골치였다.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예쁜 일러스트가 벗겨져 저 구석에 쳐 박아 두었던 머그컵 두 개. 사고를 친 김에 두 머그잔에도 다시 쓰일 기회를 주기로 했다. 과탄산소다를 푼 뜨거운 물에 벗겨진 필름들을 벅벅 긁어내 보았다. 그랬더니 서서히 벗겨지고 속살이 드러났다. 오히려 아무런 무늬가 없으니 훨씬 나았다. 그렇게 두 머그잔에도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때 썼던 플라스틱 컵은 안녕을 고했다. 막 젖병을 때고 빨대컵으로 넘어가던 시기. 어떻게든 수시로 흘려대는 아이의 뒤치다꺼리에서 해방되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사 댔던 육아 템이었지만, 지금이라면 샀을까 싶은.... 빨대 씻기가 가장 귀찮아서 4살 때부터는 빨대 없이 음료를 마시게 훈련?을 시켰더니 지금은 빨대 없이도 잘 먹는다. 이제 필요 없는 물건이 되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보내주기로 했다.


그 옆 집은 그릇이 산다. 

신혼살림으로 샀던 흰 그릇들과 태교로 만들었던 토기 그릇들, 그리고 형님이 주신 그릇들이 서로 조화롭지 못 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집 살림을 하고 있다.


 태교로 만들었던 그릇은 밥그릇도 만들고 국그릇도 만들고 더 많았었는데 작년에 필요하신 분께 나눔 했었다. 보내기 아까웠지만, 무거워서 잘 쓰지 않게 되는 그릇은 그야말로 짐이었다. 다행히 그릇들의 사연을 알게 된 이웃분이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만든 그릇인데, 이 귀한 그릇들을 그냥 써도 되냐며, 정말 잘 쓰겠다고 하시며 가져가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내 물건들이 나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면 그보다 더 다행이고 좋은 일이 있을까. 그저 그때 만삭의 배를 이끌고 퉁퉁 부은 손으로 처음 흙을 빚고, 몰입의 기쁨을 느끼며 완성했던 그릇 몇 개만 있어도 충분하다. 


형님이 쓰시다가 편하게 쓰라고 주신 오덴세 그릇들. 한동안 데일리 그릇으로 잘 쓰고 있었는데 형님 말씀대로 정말, 잘 깨졌다. 다 깨지고 남은 그릇들은 수가 적어지다 보니 안 쓰게 되어 다시 신혼살림으로 샀던 8인용 식기들(그마저도 네모난 접시들은 친정엄마께 드렸다)을 쓰고 있다. 가볍고 그 자체로는 디자인도 심플하고 나쁘지 않지만, 이 그릇의 단점은 다른 그릇과 절대 섞일 수 없다는 것. 흰 식기도 다 잘 어울릴 수 없는 흰 식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반찬 종지도 2개나 깨뜨렸고, 국그릇은 너무 크고, 오목한 대형 접시가 없고, 한 그릇 음식을 담을 그릇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그냥 그릇은 엄마가 사라는 대로 샀던 거 같다. 잘 몰랐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만 사고, 살림 습관과 좋아하는 디자인, 자주 하는 음식 스타일이 한식인지 양식인지를 떠올리며 그때 그때 샀어도 좋았을 텐데.




실은 요즘, 그릇이 사고 싶었다. 찬장을 정리하기 전 며칠 동안은 "이쁜 도자기 그릇"을 검색어로 찾아보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릇들을 정리하고 넣는 과정에서 새 그릇을 사고 싶다는 욕구가 사그라들었다. 신혼 그릇만 빼면 서로 그런대로 어울리는 상차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식기들을 꺼내 정리해 넣으면서 '이럴 때는 이 식기에 상차림을 하면 나쁘지 않겠다.' '이 접시와 이 접시는 이렇게 담아내면 되겠다.' 나름의 상상으로 그릇들의 짝을 맞추고 쓰임새를 재정리해서 바라보니 조금 더 써도 될 거 같았다. 대신에 자주 쓰는 반찬 종지가 부족해서 그것만 잘 어울릴만한 것으로 사기로 했다.





그 옆집은 잡다한 살림들의 공간이다. 동선을 고려해서 차가운 음료를 담는 유리컵들은 주방 안쪽에 커피포트가 있는 머그컵들과 위치를 달리하여 냉장고와 가까운 곳에 두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약통은 상부장으로 옮겼었는데 그 위치는 그대로 했다. 나머지는 여분의 수저통과 나들이용 간식, 도시락을 쌀 때 필요한 보냉 가방, 재사용하는 종이봉투들, 나들이용 집기류들(다회용 뺄대, 칼, 포크 등)의 공간인데, 한 곳에 두면 동선을 줄이고, 외출 준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좋다. 이 공간의 제일 윗 칸은 양심상 비워둔다. 정말 버리기 아까운 일회용기가 생기면 모아 두는 편인데 그건 그 위칸에 두었다. 그래야 잊지 않고 필요할 때 쓸 수 있다.




아랫집 살림들도 위치를 바꾸고, 빼고, 정리했다.


비울 뻔했던 빨간 슬라이딩 수납장을 각종 식재료 보관 정리대로 쓰기로 했다. 진작 이렇게 쓸 걸...






낡아서가 아니라 단지 싫증이 나서 그 물건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적당한 정리와 적당한 비움을 한다.



무조건 비우는 미니멀 라이프는 이제 싫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는 것, 중요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지만 내 곁에 있어야 하는 것들을 구분하는 것이 먼저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없는 미니멀 라이프는 불가능하며 그건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다. 

소비하고 버리는 무한반복의 '무늬만 미니멀'인 맥시멀 라이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그 물건들을 잊지 않고, 빛을 쐬어주고 곁을 주는 것'이다. 그게 나에게 맞는 미니멀 살림법이라는 걸 아는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만의 기준으로 신중히 고른 물건, 그 물건과 나의 거리를 재고, 쓰임새를 이해하며 내 주변을 가꾸는 것. 자주 보아야 정이 들 듯, 그래야 비로소 내가 있고 물건이 있게 되는 '각자의 미니멀 라이프'. 그렇게 비워 둔 공간에 나를 채워 넣는 일. 그게 나의 미니멀 라이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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