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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앤 Jul 30. 2023

3천 원의 행복

 

 한참을, 키보드를 만지작 만지작...제목을 쓰고 글을 써 내려가는 스타일이다 보니 딱히 쓸 게 떠오르지 않는 날은 껌벅이는 커서를 붙잡고 매달리 듯 애꿎은 키보드의 엔터키만 두드린다. 그래서 오늘은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로 하고 제목은 스킵하기로 한다. 그렇게 써내려 가다 보면 그날은 뭘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가닥이 잡히기도 하니까. 잘못하면 그냥, 억지로 꽤 맞춘 게 티가 나서 나중에 다시 보면 오그라드는 글이 되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그런 내용이 없는 글이 되기도 하는데 제발 오늘은 아니길 바라면서.


 

 어제는 아이와 벼룩시장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셀러였다. 그제 저녁 자신이 정한 품목과 가격에 가격표까지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든 아이는 행사장에 가서는 적극적으로 자리표도 직접 뽑았다. 판을 하나하나 깔고, 적어 온 가격표 아래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두었다.



공룡 한 마리에 백 원,

직접 만든 디폼블록은 500원,

약국에서 사달라 졸라 손에 쥐었던 변신 자동차는 1000원 등등...


 구경 온 사람들이 아이가 펼쳐 놓은 소박한 매대에 눈길을 보내면, 내가 눈으로 흘깃하며 "구경하세요.(인사해야지)"를 한다. 그러면 아이는 나를 한번 흘끔 보고는 바닥을 보며 소곤거리듯 수줍게 "안녕하세요"를 했다.

 그래도 허리를 숙여 좀 더 적극적으로 만지작만지작하는 손님들께는 제법 장사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지난번 태권도 학원에서 했던 벼룩시장에서의 경험이 꽤 도움이 되었나 보다. 서툴지만 또박또박 사용법을 설명하기도 하고, 가격도 곧 잘 답해주었다. 그러다가도 아직 돈계산이 서툰 8살 셀러는 미리 동전과 지폐를 세어가며 연습했는데도 계산하려고 돈을 꺼낸 손님이 계시면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런 아이를 놓고 그냥 가지 않고 직접 계산법을 알려주시며 물건을 사주신 다정한 할아버지도 계셨다.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용기를 얻어 물건을 팔았다.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전만 짧게 하기로 했기에 금방 판을 접게 되자 아쉬워하면서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지 더 하자고 조르지 않았다. 절반도 못 판 매대를 보고는 그래도 실망보다는 얻은 게 많다는 표정이었다.



"공룡을 거의 다 팔아서 정말 기분이 좋아."


 

직접만든 레고 로봇들 가격이 ㅎㄷㄷ

 아이의 자발적 참여로 이룬 나름의 성공과 긍정의 경험이 아이를 한 뼘 또 자라게 한 것 같았다.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물건의 가치를 무엇으로 메길 건지, 물건에 대한 애정도 가늠해보기도 하고 돈의 소중함도 알았다. 또 나에게 쓰임을 다한 물건은 버려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이 에게는 또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느끼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큰 그림을 갖고 참여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가 스스로 준비하는 모습부터 참여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다 보니 엄마는 왜 욕심이 나니.



 어제 주변 벼룩셀러로 나온 사람들이 가지고 온 것들은 아이의 구매욕을 불타오르게 하는 게 정말 많았다. 어릴 적 같고 놀았던 알록달록한 장난감이나 아니면 멋진 총 장난감, 보드게임 등등에 눈길이 갔는지 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어제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구경 나갈 때 약속했던 걸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네가 사고 싶다고 해서 오늘은 엄마가 사주지 않을 거야. 네가 오늘 번 돈 안에서 꼭 사고 싶은 거만 사. 그 이상은 살 수 없어."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른 곳으로 갔다. 어제 아이는 약 4천 원 정도 순이익을 보았다. 그리고 근처 아이 샌들을 보고 있던 곳에서 평소 갖고 싶어 했던 카봇 큐브시계를 발견했다. 그런데 가격이 5천 원이라 네가 가진 돈으로는 살 수 없겠다고 했더니,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니가 마감하려고 했다면서 3천 원으로 깎아주셨다.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꼬깃한 종이돈 천 원짜리 3장을 새어 아주머니에게 직접 건네고 카봇 시계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약 천 원 남짓한 돈들은 집에 와 저금하였다.

​​"카봇 시계 정말 잘 산 거 같아."
"엄마,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

 

 요즘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물건의 소중함을 모르고 큰다는 걸 느낀다. 내 아이도 마찬가지다. 정말 풍족하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여느집의 보통의 가정이지만 말이다. 특히 나도 모르게 하나 둘 늘어가는 아이 각종 학용품들을 보면서 느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필요한 학용품들은 직접 사준 것도 있지만 내가 사주지 않은 것들도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입학 훨씬 이전부터 선물로 받았었거나, 학원에서 주었거나, 판촉으로도 받았거나 하는 등등, 그런 학용품들은 어느 순간에는 넘쳐서 아이 책장 한켠을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정말 우리 아이도 그렇고 다른 집도 상황은 비슷한 듯했다. 아이 입학 후 학교 선생님이 학용품 준비에 대한 안내를 해주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이 난다.



 "요즘아이들은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아가지 않아요. 반 뒤에 분실물 바구니를 만들어서 찾아가도록 해도 찾으려고도 하지 않고 금방 잊어버려요. 집에서 새로 사주시거나, 이미 집에 가지고 있는 게 많더라고요."​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열린 벼룩시장에 사람들이 가지고 나온 수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새것이 아닌 헌 것의 매력을 느끼고 왔다. 새것 같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고, 혹은 좀 낡았지만 중고여야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한 벼룩시장. 한 번이라도 보물을 발견한 경험을 맛보면 꼭 새 물건만이 나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거라는 편견 혹은 중고에 대한 찜찜함은 사라진다.

 꼭 필요하고 갖고 싶었던 것만 사는 게 정말 힘든 일이 되었다. 요즘은 너무나 유혹적이고 달콤한 것들이 많다. 자꾸만 보고 싶고 사고 싶게 만드는 세상에서 어제 아이가 발휘한 절제의 미덕과 3천 원의 행복 덕분에 그 뿌듯함은 다른 때보다 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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