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슨 Sep 26. 2023

텀블러 들고 무인카페 단골되기

 일해서 돈 벌고 싶은 엄마, 그리고 아이가 학교 끝나면 반갑게 데리러 갈 수도 있는 엄마도 되고 싶은 엄마로 지낸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집에서 일하는 엄마라서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라 하면 시간활용이 자유롭다는 것인데, 그중 좋은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어느 날은 일부러 돌봄 수업도 차치하고, 일찍 데리러 가 친구들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비워두곤 했었는데, 현실은 나의 이상과는 달랐다. 내가 사는 동네가 그리 사교육에 치열한 동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멤버를 구성해서 같이 놀기 전에는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친구들 만나 놀기는 쉽지 않았다. 어느새 마스크를 벗고 일상을 되찾은 마당에도 반친구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방과 후 학원셔틀라이프는 시작되었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는 예체능 학원수업들을 하나둘 추가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동네 영어공부방에도 다니게 되었다. 급기야 핸드폰 알람으로는 머릿속에 아이 스케줄이 그려지지 않아서 학원시간과 동선에 맞춰 내가 어디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지, 요일별 시간표를 만들어 핸드폰에 저장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아이 방과 후 스케줄에 맞춰 픽업과 대기를 나의 주요할 일로 채워내고 말았다.

 동시에 셔틀버스 기사님들이 도로 한편에 시간대기하듯, 나는 버스대신 아이 학원가방과 내 에코백을 들고는 옆 단지 상가 1층 무인카페에서 1시간 남짓 대기를 하게 되었다. 무려 주 4회를 오가는 단골고객이 되었다. 아이를 들여보낸 후 1시간 남짓 책을 보거나 하다가 수업이 끝나면 아이와 간식을 먹고 집으로 향한다.


 학원스케줄을 재조정하면서 처음에는 통으로 시간을 쓸 수 없게 되어 일할 시간이 줄어든 것에 조바심도 나고 그랬는데, 오히려 좋은 거 같다. 오랜 시간 컴퓨터에 앉아서 일한다고 해서 능률과 성과가 오르지 않는다는 걸 사업 1년 차가 지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골반과 등통증은 덤으로 얻었다.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거 참 잘하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나이 듦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이 시간이 아쉬워서 운동 대신 책 읽는 시간으로 보내게 된다. 대놓고 책을 읽는 시간이 생기니 요즘 책 읽기가 더 재밌어졌다. 이 시간에 더 욕심을 낸다면 글쓰기도 하고 싶지만, 두 가지를 다 하기는 또 욕심이구나 싶다. 그냥 하나만 하기로 했다. 단, 비 오는 날은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으니 오늘 같은 날은 여유를 부려본다.

 무인카페는 으레 일회용 컵을 쓸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지만, 이곳 무인카페는 최신식 기계가 아니라서 컵이 나오면 내가 커피 내리는 기계 앞에 갖다 놓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텀블러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가능한 것은 사장님 개인적인 의지인지 아니면 민원을 받아들인 결과인지 모르지만, 쓰지 않는 일회용 컵을 별도로 보관하는 곳을 마련해 놓고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한 이곳만의 텀블러 친화적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 같은 텀블러예찬자도 무인카페 단골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 동네에는 그럴싸한 카페도 없고, 대기시간 동안 어디 가 있을 곳이 없기에 차선으로 선택한 장소였지만 그래도 마음 편하게 머무를 수 있어 감사하다.


 카페가 없던 동네에 무인카페가 2곳이나 생겼다. 약간 상권보다는 주거권이 더 응집된 우리 아파트 같은 곳에는 카페매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인건비를 신경 덜 쓸 수 있는 무인카페가 딱인가 보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도 하나 둘 유인카페가 없어지고 기계가 커피를 만들어주는 24시간 무인카페가 많이 생긴 걸 보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무인카페는 아무래도 사장님 눈치를 덜 보다 보니 학원 가기 전 아이들이 와서 앉아있다 가기도 하고, 장 보고 온 어르신들도 가벼운 커피 한잔하고 가시거나, 나처럼 학원셔틀하는 엄마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되었다.


 아들 픽업시간 알람에 정신없이 챙겨 온 에코백과 아이의 학원가방, 간식통, 우산까지 들고 여느 때처럼 이곳에 왔다.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는 어질러진 에코백을 다시 뒤져 텀블러를 꺼내든 채 커피 기계 앞으로 갔다. 연한 아메리카노 버튼은 누르고 단골고객인증을 위한 모자를 뒤로 깠는데, 곧 생일이라고 카드를 받지 않았다. 참 신기한 세상이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알아서 단골고객이라고 생일공짜커피를 내려주다니.. 괜히 기분이 좋다. 아메리카노 내려지는 소리가 오늘따라 맑다. 안 그래도 요즘 아써도 되는 돈을 여기서 자주 쓰니 마음이 좀 그랬는데 조금은 보상받은 거 같았다.


 비가 와서 그런가 손님이 많네. 이상하게 편의점에 앉으면 집중이 안되는데 여기에 있으면 집중이 잘 된단 말이야. 역시 공짜 앞에 장사 없다.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아들이 왔다. 어쩌다 단골 된 무인카페가 요즘 셔틀 뛰는 엄마에겐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 되었다. 하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텀블러 이용자에게 100원 할인 이런 거 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다. 너무 바라는 게 많은 건가 ㅎㅎ


 이제는 날도 선선해졌으니 무인카페를 벗어나 좀 더 걸어서 건너 단지 공원에 가서 운동도 하고 그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매니큐어를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