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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앤 Oct 03. 2024

제로웨이스트와의 결별을 고하다.

소비 -습관, -취향, -감수성 발견 이야기

 수년간의 나의 제로웨이스트를 향한 노력은 이제 멈췄다. 제로웨이스트이든 로우웨이스트이든 나는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매주 화요일 우리 집 분리배출의 날에는 어김없이 한 손 때로는 양손 가득 쓰레기가 들려있다. 그럴 때면 엘리베이터 사람이 안 타기를 간절히 바라며 1층을 누른다. 20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그리고는 터벅터벅 걸어가 최대한 사뿐하고 조용히 분리배출을 마친다. 이미 산처럼 쌓인 재활용품 더미 위에 우리 집이 일주일 동안 먹고 마시고 쓴 흔적들이 더해진다. 그 흔적들은 아마도 대부분은 재활용되지 못한 채 다시 하늘로, 바다로,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온전한 순환이 아닌 악순환의 반복이다.  


 하지만 너덜해진 제로웨이스트 생활의 끝에 자리 잡은 게 있었다. 극 TJ형 인간에게도 소비감수성이란 게 생기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다 조금씩 바뀌게 소비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 과정에 대한 기록들이다. TJ형 인간답게 소비감수성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나름대로 분석해 봤다.


 소비감수성은 돈을 쓰는 나의 주체성을 회복하는데에서 시작한다. 요즘은 눈만 뜨면 코 베이는 세상이다. 너무나 손쉽게 돈을 쓸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내 머릿속 위시리스트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유튜브, 네이버에서 배너와 영상으로 맞춤형 광고가 뜬다. 관심 있는 제품을 더 잘 찾을 수 있게 AI가 방금 검색한 상품과 비슷한 제품들을 알아서 띄워준다. 아무래도 결제하기를 누를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거대한 자본과 똑똑하고 집요한 마케팅의 승리이다. 그렇게 철저히 우리는 소비를 당하고 그들은 부를 취한다.

 소비감수성의 회복은 '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건지' 자문자답하는 습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을 사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취향과 기능이 중요한 의류, 가전, 생활, 주방용품이나 혹은 시기가 지나면 필요 없어지는 육아용품류들은 아래와 같은 내용들을 추가로 더 따져본다.

 

 '사지 않고 대체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일회용 말고 다회용으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나온 건 없는지', '버려질 때 온전히 재활용되는 소재인지', '포장이 덜 되어 있거나 단일소재의 플라스틱인지' '놓을 공간과 사이즈가 충분한지', '불편하거나 싫증 나지 않을지', '소재는 자연소재인지' , '중고로 구할 수는 없는지' 등등 구입할 때 고려할 기준들을 머릿속에 생각해 놓는 게 도움이 된다.


 그다음은 소비에 대한 나의 취향들을 종이에 적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옷을 살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내가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지. 브랜드가 있다면 그 브랜드의 무엇이 나와 맞는지. 어떤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느 공간에 가면 난 아늑함을 느끼는지. 어떤 컬러를 좋아하는지. 자주 쓰는, 입는, 신는 물건들은 어떤 형태인지와 같은 내 주변의 사물, 사람, 환경에 대해 관찰하는 시간을 종종 가져본다.


그리고 그동안의 소비 패턴과 잘못된 습관들을 관찰한다. 좋아서 샀는데 이 가지 않아 버린 것들 혹은 금방 싫증이 나서 버렸던 것들이 있는지, 혹은 오랫동안 잘 쓰고 있는 것들은 어떤 제품들인지. 갖고 있는 물건들 중에 불필요하게 중복되거나 싸서 쟁여 놓았지만 안 쓰고 있는 것들은 어떤 게 있는지 체크해 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나의 소비 패턴이 보인다. 그러다 보면 내가 주로 어느 부분에서 소비를 '잘 당하는 사람'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다음은 쇼핑하는 곳을 품목별로 목록화해보는 거다. 예를 들면 우리 집은 주기적으로 사야 하는 치약, 칫솔, 휴지, 샴푸 등의 반복해서 사서 쓰는 제품들은 구입하는 제품과 구입처를 정해둔다. 그러면 매번 살 때마다 검색하거나 마트에 가서 충동적으로 사지 않을 수 있고, 세일한다고 해서 쟁여놓지 않게 된다.


양파망 없이 살 수 있는 곳

 보통은 자주 먹는 기본 식재료들도 살 곳을 정해두는 편이다. 식재료도 정기배달받는 못난이 채소 꾸러미 어글리어스는 몇 년째 애용 중이며 그 외에 다른 식재료나 간식들만 마트 등에서 충당한다. 주기적으로 사는 설거지용수세미나 마늘과 양파는 조금씩 벌크로 파는 곳에서 재주문을 하거나 샴푸나 주방세제 등은 리필해서 쓴다. 이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대형마트를 자주 안 가게 되었다. 최대한 사려고 한 것만 산다. 물론 아이 없이 혼자일 때만 가능한 일이긴 하다.


지미프로젝트의 압축수세미..친한 언니와 나눠 샀었지. 벌써 1년 넘은거 같은데 이제 거의 다 써간다

 더 싸고, 더 좋은 것은 분명 있다. 마트의 할인코너와 전단지를 돌면서 구입하는 게 더 현명하고 지혜로울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싼 게 좋은 건 아니더라.


  가능하다면 쇼핑처 리스트들 중 하나를 동네 제로웨이스트샵을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의 소비 행위가 조금이라도 지구에게 덜 폭력적이고 흔적을 덜 남길 수 있게 돕는 곳이다. 운이 좋게 동네에 제로웨이스트샵이 있다면 말이다. 특히 세제나 화장품을 리필해서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베스트다. 요즘 제로웨이스트샵에서는 친환경 물건만 팔지 않고 채식제품이나 지속가능한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원순환거점센터로의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쯤 경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감사하게도 우리 동네에도 제로웨이스트샵이 있다. 정말 빛과 같은 곳이다. 여기서 나의 가장 큰 쇼핑 품목은 세제 리필이다. 2~3달에 한 번씩 가서 리필을 해오는데 갈 때마다 사장님이 새로운 아이템들을 구비해 놓으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활용품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게 된다. 그동안 웬만한 친환경 제품들은 써보기도 했고, 또 친환경 제품이라고 해서 나에게 다 필요하지 않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쓰던 세제가 떨어지면 리필해 올 세제통을 잘 말려두고 그즈음에 모아두었던 재활용 플라스틱 품목들과 종이팩, 정수기필터 등을 정리한다. 2~3달에 한번 꽉 채운 쇼핑카트를 끌고 그 곳으로 간다. 이제는 제법 능수능란해진 리필하기와 쓰레기 무게재기로 나의 제웨샵 쇼핑은 시작된다. 내가 원하는 통에 원하는만큼 담는 맛이란!!


 그리고 소비감수성을 깨우는데 도움이 되는 일은 바로  나의 작은 실천과 노력이 돈으로 환산되는, 충분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걸 보상받는 경험을 시도하는 거다. 요즘은 이런 탄소중립실천생활을 돕는 자원순환 플랫폼과 앱, 지자체들의 정책 등이 많다. 예를들면 업사이어티, 해피해빗, 탄소중립포인트, 닥터주부, 경기도기후위기기회소득과 같은 곳이 있다. 그중에 나와 맞는, 내가 좀 더 손쉽게 채택해서 해볼 수 있는 앱이 있다면 나의 행위와 노력이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거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동시에 나의 소비감수성도 싹튼다.

2021년 지생맘과 함께 읽은 책들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게 된 계기는 1년 넘게 환경문제와 관련된 책들을 읽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조금씩 관련된 책들을 읽다 보면 특히 우리나라가 얼마나 소비중심지향적인 사회에 놓여있는지, 그러면 개인은 어떤 방향으로 소비생활을 지향해야 하고 아이들의 교육도 바로 잡아줘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먹었던 컵라면이, 초콜릿이, 커피가 지구반대편의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당하는 사회에 던져져 있다. 이제는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마저 잠시 숨 돌리면 뺏기는 세상이다. 나도 매일 당한다. 네이버 쇼핑창을 안 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래도 신상과 세일에 눈이 돌아간다. 예쁜 공간과 디저트를 보면 나도 모르게 지갑이 열리고 카메라를 켠다. 하지만 때로는 무엇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돈과 관심을 어디에 할애하면 행복하고 의미 있을지도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소비감수성이라는 낯선 감정이 싹튼다. 물론 알고 나면 불편한 감정들이 올라와서 괴로울 때도 있다.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은 개개인의 경험과 감동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런 감동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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