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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앤 Aug 11. 2023

매니큐어를 더 이상 사지 않는다.

맨 얼굴의 발은 무죄

 내 발은 못 생겼다. 무지외반증이 유전인지, 양쪽 발 볼은 툭 튀어나왔고, 대학교 1학년 때 총회 끝내고 동기들과 놀다가 발등뼈가 조각이 나면서 깁스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발은 살짝 변형이 왔다. 그 당시에는 그 부상이 이렇게 흘러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지금까지도 여러 근골격계 질환을 안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짐작하며 살 줄 몰랐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여름이 되면 샌들을 신는다. 더운 여름 양말을 신고 다닐 자신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못 생긴 발 때문에 샌들도 아무거나 사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노출될 나의 발들을 적당히 보호하고 편하게 하기 위해서 체크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무지외반증으로 넓어진 발볼을 다 감싸주어야 한다. 되도록 앞코가 모아지는 형태는 무지외반증을 더 악화시키기에 가급적 피한다. 그래야 아프지 않으니까. 

 또 하나는 (이건 다른 관점에서) 발목을 감싸서 버클로 채우는 샌들보다는 슬링백 형태로 발꿈치에 버클이 있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다리가 더 길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건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는 순수한 나의 취향이자 착각이다. 9센티 힐을 신고도 날아다녔던 20대 때는 이렇게 까다롭지 않았다. 지금은 그래서 더 작은 키가 되어버렸으니 굽도 낮은데 발목에 선을 그어 버리는 버클은 싫다. 그런 디자인은 20년이 지나도 전혀 부화가능성 제로인 종아리의 알들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발가락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샌들'이 추가되었다. 물론 무조건은 아니지만 발가락과 발톱이 다 보이지 않아서 발톱이 조금 내추럴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게 좋았다. 


 내 취향이 왜 바뀌었을까.... 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바로, 매니큐어를 더 이상 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워낙에 손톱에 뭘 바르는 부지런함은 없었던 사람이라 매니큐어와 네일숍과는 담쌓고 살았었다. 그냥 때가 되면 손톱깎이로 정돈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그런 나도 여름만 되면 사는 게 매니큐어였고, 몇 년 전에는 패디팁이나 스티커를 붙이며 못 생긴 발가락 꾸미기로 여름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샌들 사이로 화려함을 뽐내던 발가락들은 한철 장사가 끝나면 화장을 지우고 맨발이 되었다. 한겨울까지 발톱을 치장하는 건 나에겐 무척 힘든 일이었다. 가을을 맞아 다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발톱을 보며 뭔지 모를 해방감을 느끼곤 했으니까. 여름 내내 내 발가락들은 한껏 치장을 하느라 바빴고 또 혹사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철 매니큐어는 몇 년을 써도 없어지지 않다가 어느 날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쓰레기봉투에 버려졌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버려지는 매니큐어들을 보면서 매니큐어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꼭 바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깨끗하게 관리한 발톱과 뒤꿈치면 되지 않을까? 그 돈으로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아기발처럼 뽀얗고 하얀 발, 반들반들한 뒤꿈치는 나이가 들수록 가까이하기에 쉽지 않은 미션 중 하나가 되었다. 발끝과 손끝의 건조함은 몸의 혈액순환과도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발끝과 손끝은 상하고, 굳은살이 배기고, 각질이 생기는 이유이다. 

 그런 이유로 언젠가부터는 길을 가다가 멈추고 샌들 밖으로 드러난 내 발 뒤꿈치를 흘끗 훔쳐본다. 발톱의 세련됨보다 이제는 발 뒤꿈치의 맨들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화려한 발보다, 그냥 자연스럽고 건강해 보이는 발이 더 탐이 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샌들=패디큐어'라는 공식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의 심리를 파고든 치밀하게 계산된 마케팅의 결과일지 모르겠다. 그 공식아래 패디하지 않은 발은 '생기 없어 보이는 발' 더 나아가 '게으른 여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공식아래 나의 발도 예외는 아니었다. 늘 이맘 때면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발이 샌들 사이로 보이는 게 어딘가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맨 얼굴로 출근했을 때 느껴지는 시선이 내 발로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랬다. 그래서 샌들에 커튼을 치고 싶었던 거다.


 올여름부터는 내 발에도 휴가를 주기로 했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발로 샌들을 신고 다닌다. 대신 하나 남은 빨간색 매니큐어는 남겨두었다. 그래도 가끔 어딘가 허전해 보이거나 유난히도 큰 엄지발톱이 보기 싫을 때, 한번 스윽 발라서 작아 보이는 효과도 누릴 겸 말이다. 기분전환하는데 매니큐어만큼 좋은 건 또 없으니까.

 

 꾸며지느라 지친 나의 발들에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휴식을 줘보는 건 어떨까?

 생기 없어 보이는 발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에너지 있음을 가꿔보는 건 어떨까?

 화려하지 않은 게 누추한 게 아닌 것처럼말이다.

 

 무더운 여름, 끈 몇 개 둘러진 샌들에 기대어 여기저기 다니느라 뒤꿈치가 시커메져 돌아온 발을 따뜻한 물에 푹 담갔다가 피로를 씻는 것으로, 그리고 늘 내 몸 가장 밑바닥에서 온 힘을 다해 나를 받치는 발에 매일 정성 들여 보습제를 발라주며 어루만지는 것으로 매니큐어 바르는 정성을 대신해야겠다.


 맨 얼굴의 발은 죄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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