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집은 상추가 풍년이다. 매주 차로 15분 거리에 분양받은 텃밭 덕분이다. 아이가 좀 크기도 했고, 주말에 갈 데가 없으면 밭이라도 가서 놀게 할 겸 지난봄부터 턱 하니 한살림 도시농부학교에서 작은 밭 2평을 분양받았었더랬다.
전형적인 서울 촌년인 나. 그마저도 35년 이상은 경기 촌년으로 살았는데, 발아래 흙을 밟고 지낸 경험은 없다. 기껏 해봐야 학교 운동장이나 뒷산 오르며 밞은 흙바닥이 전부다. 그런 내가 차로 15분 거리에나 있는, 그래서 자주 가지도 못하는 곳에 아직은 낯선 호미질과 친정아빠가 신으시던 장화를 빌려 텃밭으로 주말 출근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낯설다.
도시농부학교 첫날은 비가 왔었다. 출발할 땐 보슬비였는데 도착하니 빗발이 제법 굵어서 우비 생각이 절로 났었다. 급히 차에 있던 우산을 쓰고 밭 입구에 도착했는데, 고랑이 된 흙 한강에 곧 질펀해질 운동화가 그려져서 순간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찐득하다 못해 찰떡이 되어버린 진흙바닥에 거리낌 없이 발을 내디뎠다. 순간 '아,,,,,내가 잘한 걸까?'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스쳤다. 그날 수업을 듣고 돌아와서는 진흙으로 덧대져 묵직해진 운동화 밑창을 털어내며, 나에게 흙이란 일단 묻으면 닦아야 하는 존재였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흙은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 몸으로 느낀 바가 없던 것이었다. 그저 '땅'은 매끈하고, 뭐가 묻어나지 않는 아스팔트 바닥 혹은 시멘트 바닥이 떠오르는 내가 아이를 데리고 텃밭을 꾸리겠다니......
하지만 밭에 돌을 고르고, 어색한 호미질을 열심히 하면서 흙도 흙 나름이라는 걸 알았다. 흙을 만지고 있으니 잡념이 사라졌다. 비록 무릎은 아프고 등짝은 따갑지만 말이다.
한동안 우리는 토종씨앗들로 밭을 꾸리고, 모종들을 사다가 심었다. 지난 한 달은 나보다 나와 신랑이 더욱 열심히 갔다. 그리고는 올 때마다 바질 잎이며 상추며 케일이며를 자랑스럽게 가져다주었다.
흙을 밟고 물을 주고 하다 보니, 느끼는 점이 또 있었다. 우리는 잠깐 가서 물만 주고 잡초만 뽑아 줄 뿐인데 일주일만 지나면 감사하게 우리가 먹을 만큼만 또 자라 있다는 거다. 우리가 키운다기보다는 땅과 바람과 해가 키워준다는 표현이 더 맞다. 우리는 받아먹고 있다. 그리고 애벌레들이 케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냥 보면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밭에는 우리보다 먼저 먹음직스러운 한상을 차려놓고 마음껏 식사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내다 팔 게 아니니, 애벌레와 무당벌레가 조금 떼어먹는다 해도, '그래 너네가 먼저 먹는 이유는 먹을 수 있는 거라는 증거고 맛이 있다는 거니까.. 그래도 우리 먹을 꺼는 좀 남겨줄래?' 라며 여유도 부려본다. 하지만 농부님들은 약이 오르겠다 싶었다. 그래서 농약을 안 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 조금 시들어도, 못 생겨도 그 아이들이 마트 진열장에,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쳐 왔을까를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어떤 농산물이든 농부의 간절한 바람과 자연의 정성이 없다면 우리가 맛보지 못했을 거라는 그런 연결고리들을 약하게나마 이어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지난주에 텃밭의 첫 손님들이 식사를 마친 상추와 케일을 따와 냉장고에 넣어뒀던 걸 다음날 아침 꺼내 손질을 하려는데,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자란 애벌레가 보였다. 싱크대 하수구에 쓸려 내려갈뻔한 걸 아이를 불러 애벌레라고 알려주며 건드려보는데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조금 움직이는 것이다. 차디찬 냉장고 야채칸에서 애벌레는 상추를 이불 삼아 난데없는 혹한에 최소한의 에너지로 얕은 숨을 쉬고 있었나 보다.
사실은 그날 아침, 아이는 난데없이 애완동물 타령을 했었다. 아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엄마는 애완 생명 하나 더요를 외칠 여력이 없음을 다른 말로 포장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려면 자기 X은 자기가 치울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키울 수 있는 거라며, 아이 입을 곧이곧대로 다물게 하고 유치원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이 작은 생명체가 눈에 밟혔다.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밖에 내보낼까 했다가, 아이에게 애벌레를 키워봄이 어떠냐고 물어보기로 했다. 그날 오후, 아이는 그 얘기를 들음과 동시에 좋다고 했다. 어릴 때 자주 읽었던 곰돌이 푸 그림책에서, 외로웠던 이요르가 애벌레를 친구로 맞아들였다가 나비가 되어 모든 친구들의 친구가 되었던 이요르의 친구 찾기가 생각났다. 아이도 이요르와 애벌레가 떠올랐을까? 그렇게 지난 일주일간 이름 모를 애벌레는 우리에게 와 '토토'가 되어주었다.
아이는 우선 관찰용 루페에 케일 조각과, 물 몇 방울과, 토토를 넣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애벌레는 죽은 척을 하는 건지, 힘이 없는 건지, 여기가 또 어디일까를 곱씹어보는 듯이 움직임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나와보니 케일 조각이 조금 줄어있고, 쌀알만 한 검은 똥이 몇 알씩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
"엄마, 애벌레가 자기 똥을 깔아뭉개고 있어~~~~~"
그날 이후로는 케일을 리필해주었다. 생각보다 훨씬 잘 먹었다. 에릭 칼 할아버지의 '배고픈 애벌레'도 생각이 났다. 토토도 나중에 나비가 될까? 기왕이면 예쁜 나비면 좋을 거 같았다. 아이에게 토토 집을 바꿔주고 청소도 해주자고 했다. 토토가 케일을 먹고 뱉어낸 똥은 화분에 거름으로 주고 물로 싹 씻어주었다. 그러고는 조금 넓은 곳에, 그리고 위에는 화분 깔개를 오려서 덜 답답하도록 해주었다. 빠져나오지는 않겠지??
며칠이 지나고, 아이에게 다시 한번 화분에 거름을 주라고 했다. 뚜껑을 열고 케일과 상추를 조금 나눠 다시 넣어주는데, 토토가 그 작은 구멍들 사이로 빠져나오려고 했다. 분명히 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케일 잎 아래에 숨어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처음에는 구멍이 너무 작아서 못 나오겠지 싶었는데, 좀 힘들어하는 것 같더니 결국은 탈출에 성공했다. 토토는 어느 순간 알았나 보다. 저 작은 구멍으로 나갈 수 있을 수도 있겠다는 걸. 다시 내가 있던 곳에 갈 수도 있겠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애벌레가 나의 침대, 싱크대, 베개 아래에서 발견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달갑지는 않은 일이었기에, 오는 주말에 토토를 다시 놓아주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다행히 아이도 좋다며 허락을 해주었다.
토토에게 관심이 생기다 보니 나비의 애벌레인지 나방의 애벌레인지 궁금해졌다. 사실 외모가 그리 호감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찾아본 결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애벌레를 찾았다. 나방의 애벌레였다. 음,,,,,나비가 아니었군. 텃밭에 자주 출현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해충이었다. 낮에는 숨어있다가 밤만 되면 나타나 모조리 갉아먹어치우는.... 다시 텃밭에 놓아주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이 되었다. 나비인 줄로만 알았다가 나방의 유충이라는 걸 알고 나니 마음 한편에는 약간의 실망이 밀려왔다. 이런 이중적인 사람아..
거실 한편에 토토의 집을 지나치다 보면 은근히 신경이 쓰였더랬다. 토토가 죽지 않을까? 저렇게 계속 두면 어떻게 될까? 진짜 고치를 만들 수 있을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몸 둘레보다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살고자 하는 본능이었겠지. 정말 저 작은 생명의 살아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래도 집에서 나방의 유충을 키울 수는 없었고, 텃밭으로는 다시 보낼 수가 없었다. 신랑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뒷산에 놓아주자고 했다. 주말 아침 텃밭에 가기 전 아이와 토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토토와의 짧은 만남은 끝이 났다. 토토가 있었던 빈 플라스틱 빵 뚜껑과 케일 조각, 토토의 회귀본능을 막을 순 없었던 작은 창살만이 남았다.
텃밭 손님과의 짧은 동거였지만, 만약 나비였다면 돌려보내지 않고 키웠을까? 그래도 다시 보냈을까? 라는 물음표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 물음은 꼬리를 물고 계속 되었다. 다음 제2의 '토토'는 누구일까? 그 때는 귀찮음과 기분좋음이 공존하는 신경쓰임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비록 토토와의 동거를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토토가 남긴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참 신경쓰이는 존재가 된다는 거다. 기분좋은 신경쓰임이다. 그래서 참 신중해야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찮은 생명이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