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도 용기와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하기 어렵다. 오늘은 내가 거의 매일 하루에 2번씩 오가며 알게 된 한 '정원'에 대한 이야기다. 정원이라기 보다는 공공장소 혹은 공공의 화단에 가까웠던 그 곳이 우리 모두의 '정원'이 된 이유.
터널 앞 도로와 아파트 단지 옆 후미진 골목 사잇길은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적다보니 자연스레 쓰레기가 쌓여갔다.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가구들과 살림 잔해들이 산 아래 둔턱에 쌓이고, 담배꽁초와 함께 악취가 났던 그런 길이었다. 하지만 그 주변을 오랜기간 용기내어 돌보고, 직접 하나하나 돌을 골라 화단을 정원으로 꾸미고, 화초를 사다 심은 분이 계셨다.
코로나19가 관통하던 2020년, 3월이 아닌 두 어달이 지난 5월 말경에야 아이를 유치원을 보냈었다. 우리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유치원 셔틀버스 태워야 하니, 버스를 타기는 애매하고(오히려 늦을 수 있고)그래서 산책삼아 늘 걸어가거나 뛰어가곤 하며 적응하던 시기. 하지만 그 쪽으로는 길을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게 지름길일까 고민하던 차에 단지 옆 산책로가 평지고 걷기 좋아 대롯가 인도길보다는 조용한 산책로를 택해 가기로 했다. 거의 셔틀버스 타는 곳에 다다를 때면 이상하게도 그 길이 다른 곳과는 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예를들면 산책로 나무주변을 돌무더기들로 동그랗게 단을 만들어두었거나, 떨어진 솔방울을 그 안에 가지런히 모아둔 모양새나 중간중간 야생화가 아닌 잘 가꿔진 화초들 하며..한 눈에 봐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진 곳이라는 걸 말이다.
그 때부터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일을 한 걸까.
그날도 역시 이 길을 지나며, 누가 이렇게 잘 가꾼거지? 아, 그래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하셨겠다. 아니, 근데 그러기에는 아기자기함이 곳곳에 묻어나는걸??
그러던 중, 길 끝에 혼자 열심히 호미질을 하고 계신 할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도 보였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여쭈었다. 그게 벌써 2년전 일이다.
"와 할머니, 혹시 여기 할머니가 가꾸시는 거에요? 다니면서 넘 좋고 예뻐서요."
할머니는 이런 질문이 익숙하시다는 듯, 일어나서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러주셨다. 여기가 너무 지저분하고 외지고 관리가 안되니, 시에다가 여러번 얘기도 해보고 했었는데 그 때 뿐이라, 운동 삼아서 시작한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셨다. 여기가 말도 못하게 지저분했었고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더 갖다 버리고, 말도 못했다고 하시며. 그런데 하나하나 개간하고, 돌도 골라서 놓고, 심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쓰레기도 안 갖다 버리고, 시에서도 관심갖고 주변에서 애쓴다고 표창까지 받았었다고.
그런데, 할머니가 그러셨다.
"근데, 오히려 내가 더 좋아요. 이렇게 나와서 하다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몸이 더 건강해졌어. 내가 아는 사람도 암환자였는데 텃밭가꾸고, 매일 햇볕쐬고 하면서 좋아졌거든, 다 나았어. 내가 표창받으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뭐, 하다보니 나도 좋고 사람들도 좋아해주니까 계속 하는거야."
요즘도 종종 할머니가 큰 가방과 모자를 챙겨 틈틈히 화초를 가꾸고 하시는 모습을 본다. 그 때마다 인사를 드리지는 못 하지만, 여유가 될 때는 눈인사도 하고 감사하다는 마음도 전한다. 덕분에 아이도 매일 하원하는 길에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정원에 올라 흙도 밟고, 솔방울도 줍고, 고양이 집도 둘러보며 좀 더 머물다 집으로 간다. 인상깊은 건 할머니가 산쪽에 있던 쓰레기들을 정리하시고, 땅을 골라 화초들과 나무들을 가꾸시다 나온 어마어마한양의 돌들을 다 고르고 골라 산 중턱에 낮은 돌담을 쌓은 곳이 있는데 그 곳이 들고양이들의 집과 놀이터가 되었다. 덕분에 동네 주민분들이 돌아가며 고양이 가족에 밥도 주고 물도 주시는 것 같다. 아이들은 하원하고 매일 고양이 주변을 서성이는데, 고양이는 늘 무서운지 곁을 주지 않는다. 오직 밥주러 오시는 아주머니들에게만 다가간다.
할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중에 인상깊었던 건, 내 주변, 내가 사는 곳을 공무원이나 시에서 알아서 가꾸고 하는 게 당연하고 맞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가꾸고 관심가지는 게 더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했던 말이다. 요즘은 그런 문화가 많이 사라졌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때만해도 반상회도 있었고,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청소도 하고, 안부도 묻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주거문화가 들어오면서 그러한 문화는 거의 다 사라졌고, 세상이 각박해지며 당장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더더욱 사라졌다.
할머니 덕분에 매일 아침과 오후 등하원길이 즐겁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머니의 손 끝에서 피어난 꽃과 풀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요즘은 메리골드가 활짝 피어 가을이 더 진하게 다가온다. 할머니의 작지만 큰 선의로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되고, 그날의 기분이 된다. 할머니는 어쩌면, 정말 좋으시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꾸고 나누는 큰 정원이 생긴 거니까.
오늘 오후에 가보니 정원에 점점 살림이 는다. 이렇게 컵에 떨어진 메리골드를 꽂아두시고. 분명 할머니가 하신걸꺼야.^^
할머니는 이 길을 아는 모두에게 작은 정원을 하나씩 선물한 셈이다. 그리고 끈임없이 메세지를 보내시는 것 같다.
"이 공간을 예뻐해주세요. 이 길을 아껴주세요. 이 곳도 우리가 사는 곳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