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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앤 Oct 27. 2022

칼국수와 쌀국수

국수가 좋아서..

어릴 적부터 국수를 좋아했다. 그런데 국수중에서도 잔치국수보다는 칼국수를 좋아했다. 우리집은 만두좋아하는 아빠와 칼국수를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늘 만두 빚는 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서 만두와 칼국수를 손수 만들어 먹곤 했다.

엄마가 먼저 밀가루 반죽을 만들면, 아빠가 치대고, 밀대로 넓게 넓게 편 후, 오래된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만두피를 찍어냈다. 그러고 나면 나와 동생은 미리 만들어 놓은 만두소를 넣어서 만두를 빚었다. 흡사 누가보면 장소만 바꾸면 오랜동안 수제만두를 고집해온 자그마한 만두가게처럼 딱 그런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동그랗게 양쪽귀를 붙인 만두모양으로 빚다가, 엄마가 그렇게 하면 터지고 잘 안 익는다고, 그냥 강원도식 만두(반 접어 빚고는 가운데가 모아지게 양 검지손으로 누른모양)로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먹을땐 동그란게 예뻐고 더 맛있어 보여서 싫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냥 멋없이 소박한 길다란 만두가 만들기도 편하고 뭔가 우리집만의 만두같아서 나중엔 좋아졌다.

만두피를 만들고 남은 잔해들로 엄마는 반죽을 더해 다시 넓게 밀고 반에 반을 접어서는 칼로 슥슥 잘라 국수를 널었다. 약간 사이드 메뉴 같은 존재의 칼국수였지만, 만두를 몇개 먹고는 꼭 칼국수로 마무리를 하곤 했고, 혹은 만두보다 칼국수를 더 먹기도 했다. 나에게는 칼국수를 먹기 위해 만두를 먹는날도 많았다.

어릴 때 엄마가 해줬던 칼국수와 만두는 나와 남동생이 각각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는 예전만큼은 자주 못 먹고 있다. 명절때나 가끔 해서 먹는정도? 엄마도 이제 손도 팔목도 아프시니 자주 해 드시지는 못하는 거 같다.

그렇게 칼국수는 나에게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주었다. 근데 요즘은 칼국수집보다는 쌀국수집이 더 많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예전에 먹었던 그 쫄깃하면서도 야들야들한 칼국수의 맛을 느끼기는 여간 쉽지 않아졌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반죽을 해서 칼로 잘라 끓일 용기는 안 생긴다. 그런 이유로 칼국수집이 예전보다 없는 걸까? 물론 수타 칼국수집은 수타 짜장면집보다 더 없을 거 같긴 하지만..

반면 쌀국수는 칼국수보다는 부담없이 찾아 먹을 수 있는 국수가 되었다. 요즘은 쌀국수집에 가면 고수를 요청해서 더 얹어 먹기도 한다. 칼국수는 진국의 맛으로 쌀국수는 이국적인 맛으로 먹는다.

얼마전에 동네에 장보러 나갔다가 점심 때가 되어 들어간 쌀국수 집. 코로나 전에 오픈한 젊은 사장님이 하시는 태국식 쌀국수집이다. 태국식 쌀국수와 베트남식 쌀국수를 잘 모르지만 이 집에 쌀국수를 먹어보면 아, 이런게 태국식 쌀국순가 한다. 가장 큰 차이는 육수와 두툼하게 썰려 나온 아롱사태이다. 육수 색이 더 진하고 태국식 간장같은 밑간에 좀 더 새콤하게 우려진 맛이라고 해야할까, 좀 덜 느끼한 거 같기도 하고, 거기다가 이 집은 아롱사태를 큼직큼직하게 썰어주시는데 처음에 고기의 비주얼에 당황했다. 약간 쌀국수와 언발란스한 모양새이지만 맛보면 푸짐함과 씹는 맛이 느껴진달까. 코로나 이후 가게가 없어진 게 아닐까(괜한 걱정인 듯 하다)하며 찾아갔는데 다행히 운영하고 계셔서 흐뭇하고 반가운 마음에 쌀국수 한그릇을 뚝딱하고 나왔다. 아마 이 집만의 두툼함과 우직함에 찾는 손님이 꽤 있어서일거다. 늘 반찬으로 주시는 피쉬소스에 청양고추로 버무린 쏨땀(처음에는 진짜 쏨땀으로 나오다가 언젠가 부터는 우리나라 무로 만든 퓨전 쏨땀으로)은 국수를 다 먹기도 전에 자취를 감췄다. 더 달라고 하려다가 그냥 두었다. 국수 양에 많아 다 못 먹을 것 같았다.

혼밥에 국수만큼 좋은게 있을까? 그 이유는 일단 빨리 나온다. 그리고 먹을 때는 오로지 국수, 메인에만 집중에 먹을 수 있다. 국물도 그런면에서 한 몫한다. 국물덕분에 혼밥이 심심치 않다. 조금 심심하면 국물한모금 떠먹으면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먹고나면 다른 혼밥메뉴들 보다 든든하고 따뜻해진다.

그날 먹은 쌀국수에 그날의 기분과 오랫만에 혼국수에 의미를 담아 사진한장을 찍었다. 그리고는 어제 그 사진을 보다가 뭘 쓸까, 하다가 칼국수까지 불렀다. 내가 좋아하는 두 국수를 사진에 하나 그리고 글에 사이좋게 같이 담아 소환해내니, 아직 아침전인데도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나에겐 이 두 국수가 소울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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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앤 소속 직업 에세이스트

게으른 축소주의자. '적정한 삶'에 대해 고민하며 채우고, 비우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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