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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 Aug 26. 2021

내가 다시 '쓰기' 시작한 이유

쓴다는 것은 나와 타자를 잘 이해하려 한 애씀의 흔적이었다.

 '설레거나, 두렵거나', '쉽거나, 어렵거나'.



 빈 공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할 때는 늘 이런 대립된 감정들이 혼재한다. 하물며 그곳에 '글'을 써야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무슨 악취미인지 돌이켜보면 늘 말하는 것보다는 글로 쓰는 게 더 친숙했다. '잘' 써서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쓴다는 것(writing)은 잘 씀과 못 씀을 떠나 나와 그 대상을 잘 이해하려 한 애씀의 흔적이요, 잘난 것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예술행위였다.


 


 6년간의 수행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일기장들

 그런 내가 쓰기의 힘을 느꼈던 건 초등학생 때였다. 늘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한 내가 매일 써야 하는 일기에서 만큼은 수다스러웠다. 둥둥 떠다녔던 생각들과 마음을 글로 적어 표현해 노트에 담다 보면 뭔지 모를 개운함과 만족감을 느꼈다. 물론 자발적인 것 아니었고, 루다 며칠 치를 몰아서 쓸 때도 많았지만 학년 올라갈수록 일기 쓰기는 자연스레 응당 써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런 꾸준함 때문이었는지 선생님들은 또래보다 문장력이 뛰어나다며 종종 교내 글짓기 대회나 백일장 대회 때 나를 추천하시기도 했었다. 근데, 결과는 잘 기억 안나는 걸 보니 그럴싸 한 상은 못 받았나 보다.

 그렇게 나와의 대화라고까지 여겼던 인고의 일기 쓰기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일기 쓰기는 초딩들이나 하는 거지'라는 나름의 합리화를 하면서 6년간의 수행과 같았던 일기 쓰기와는 안녕을 한다. 그렇게 쓰기 싫었으면서 갖은 정성과 애정을 가지고 오랜 기간 일기를 썼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쓰는 것으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내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느꼈어요.'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거 같다.





일상을 감각하는 시간을 되찾다.



 아이라는 동굴 안에서 아이의 사랑을 먹고 여자는 엄마가 된다. 그런데 당당히 엄마가 되어 동굴 밖으로 나와보니 마냥 당당할 수 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3번째 여름을 맞이하던 2018년, 그 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아이를 낳고 3년 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어린이집에 보낸 건 재취업 준비를 위함이었다. 그런데 재취업 준비는 고사하고, 곧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불과 3년 만에 아이 엄마이기 이전에 나란 사람은 어떻게 살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감각 외에 다른 모든 감각은 퇴행된 기분이랄까. 매일 다시 일깨우기로 했다. 엄마 이전의 내가 어땠었는지.

 일단, 아이를 키우며 오로지 '너와 나'로 구분 없이 흘러 보냈던 시간 대한 감각을 다시 깨워야 했다. 그래야 그 시간들을 '엄마, 아내, 나'의 시간으로 겨우 쪼개쓸 수 있었다. 하루는 혼자 외출하는 일이 그렇게 생경할 수 없었다. 장을 보러 가는데 뭔가 허전했다. 빈 두 손을 어찌할 바 몰랐다. 밀고 갈 유모차의 부재가 그렇게 클 줄이야. 이제는 명품백이 아니라 유모차에 탄 내 아이가 나를 더 존재감 있게 한 존재가 됐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혼란스러움을 정돈할 수 있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서 일이란 꼭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그간의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엄마'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달기 위해 잠시 쉬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일깨워 줄 그 무언가 면 족했다. 그게 뭘까. 뭘까. 며칠을 고민했다. 당장 돈도 들지 않고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 그건 바로 '읽고, 쓰는 것'이었다.  30여 년간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책을 읽고, 블로그는 절대 못해 라고 했던 내가 블로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개적인 글쓰기를 하기로 한 이유는,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고, 나를 드러낼 작은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이 덕분에 30여 년 전 매일 일기를 쓰던 그때처럼, 일상을 다시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매우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 '쓰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쓰다 보니,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블로그 이름도 바꾸고, 배너도 만들고..


 그런 공짜 공간이 생기고 나니, 그곳을 어떤 이야기로 어떻게 채워야 꽉 찬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꼭 새집 장만한 기분이었달까..

 처음에는 책 리뷰, 공연 전시 리뷰, 리싸이클링 리뷰 위주로 글을 쓰고 공유했었는데, 자꾸 쓰다 보니 더 많이 쓰게 되는 주제가 있었다. 바로 제로웨이스트를 필두로 한 환경문제에 대한 내용이었다. 분리배출에 대한 주제로 글을 몇 번 썼었는데, 그러다 보니 관련 책과 기사들을 많이 보게 되었고, 쓰레기를 잘 버리려면 잘 사고 잘 쓰고 잘 버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책임 있는 소비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기야 소위 '잘 산다는 것'에 대한 답을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에 조금씩 답을 찾아가려 애쓰게 되었다.






보고, 읽고, 맛보고, 시도하니까 쓴 게 아니라, 쓰니까 더 자세히 보게 되고, 더 넓게 읽게 되고, 더 깊게 맛보게 되고, 더 많이 시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할 충분한 여유가 없는 '보통의 엄마'에게 글쓰기는, 그 시간을 마음껏 사치하며 사색해도 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여기 브런치에 이런 고루하고 시답지 않은 글까지 쓰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다시 쓰기 시작한 이유이다.

비록 한번 시작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지런하지 못해서 나의 글쓰기는 더디고 게으르지만,

누구에게나 진솔하게 다가가고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글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시작이 되기를 감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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