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가 익숙해지는 시간, 1년
저는 아내와 함께 산지 1년이 좀 넘어가는 새신랑입니다. 아기가 태어나고, 제가 바닷가로 일자리를 배정받게 되면서 아내는 휴직을 하고 저를 따라 지방으로 와서 임시 전업 주부가 되었지요.
결혼을 생각하면서부터 저는 막연히 아내에 대해 기대하던 바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업주부를 하며 내조를 해 주는 것이지요. 비록 휴직을 해서 임시로 전업주부를 하게 되었지만 저는 저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 같아 무척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업주부라고 해서 아기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었습니다. 둘 중 하나는 제가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집안일과 아기 보는 것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이면 일어나 아기를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출근을 합니다. 퇴근하면 부엌에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는 것으로 육아 출근을 시작하곤 합니다. 혹은 아기 보느라 지친 아내를 쉬게 하기 위해 아기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아기와 시간을 보내지요. 요리를 제외하고 집안일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저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도맡아 하는 부분을 고르자면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한 모든 쓰레기를 버리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일해서 돈도 벌어오는데, 집에 와서도 일을 하니까 아내가 내가 설거지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교만한 생각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설거지하는 것을 생색도 내고 그랬지요. 그렇게 1년을 넘게 설거지를 하다 보니 이제는 변한 점이 있습니다. 설거지나 다른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몸에 배겼고, 또 일 자체도 익숙해져서 일처럼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냥 생활입니다. 그리고 설거지하면서 노래를 듣다 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또 설거지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욕실에서 목욕을 할 때처럼 글상도 잘 떠오르곤 한답니다. 물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 설거지가 왼손을 쓰다 보니 우뇌가 자극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설거지에도 힘든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도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취하던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지요.
해서 저는 설거지가 익숙해지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앞으로도 낯설지만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들이 인생 길목마다 산재해 있겠지요. 하지만 그 어떤 것들이라도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