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쓰기로 갱생하기

고1 이전의 시간

by 닥터 온실

프롤로그에도 나왔듯 나는 일기를 쓴다. 아무래도 이 일기가 나의 영광스러운 고등학교 생활과 의사가 될만한 실력을 만들어주는데 가장 첫 단추가 된 듯하여 가장 첫 챕터에 일기에 대해 쓴다.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무렵. 당시의 생활상을 간략히 짚고 넘어가자면, 정말 한량이 그지없었다. 학교와 학원은 다니고 있었지만 그뿐. 머릿속에는 온통 게임 생각. 그나마 타고난 머리는 있었는지 수업을 듣고 보습학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반에서 3,4등 정도는 했지만, 문제는 학교가 그렇게 알아주는 학교가 아닌 신림의 문제학교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당시 생활에 내가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할머니는 공부에 전혀 터치를 하지 않으셨다. 그 결과 성적표만 대충 잘 받아오면 되니깐 시험기간에만 벼락치기를 하고, 나머지 학기 중에는 계속 게임만 했다. 학교에서는 게임을 못하니까 주로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책을 보았다. 그 와중에 재미있는 수업은 간혹 듣기도 했으나, 소위 말하는 신림의 문제학교에서는 그다지 들을만한 수업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에서 팽팽 노는 2년간의 생활을 하고 나니 약간의 현타가 왔다. 나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것인가? 하여 일기를 쓰게 된다. 나는 첫 일기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들에 대해 구구절절이 언급하고 있는데, 그중 지나간 날들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것과 공부를 해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라는 구절이 인상 깊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시작된 일기는, 작심삼일의 원칙에 따라 3일 동안 쓰인 후 겨울방학으로 넘어간다. 학기 중엔 일기를 쓰지 않았지만 방학에 일기를 다시 쓰는 이유는 시간이 너무너무 남아서이다. 놀다가 지쳐서 일기를 쓰는 것이다. 뭐 할 것이 없으니깐. 애초에 처음 쓰인 것도 여름방학이었고... 아무튼 2학년 겨울방학에 하루 쓰고, 다시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으로 넘어간다. 작심삼일, 작심하루, 그리고 마지막 기회... 3번의 도전 끝에 나는 일기 쓰기를 습관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3번째 일기 쓰기에 도전한 중3의 나는 다짐을 한다. 그 내용은 일기에 잘 나와있다. 중학교 3학년 시기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 중 10위 안에는 들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참 기특한 생각이고 맞는 말이다. 아 그리고 너무나도 좋은 말이 있다.

오늘은 인생의 남은 날의 처음이니 하루하루를 기억할 수 있고, 재미를 적당히 추구하며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고 한다. 중 3짜리가 한 생각치곤 대견하다. 그것을 위해 일기장을 계획표 겸 실행평가표, 그리고 그날의 생각 정리표로 활용한다고 했다.


이렇게 쓰기 시작한 일기는 그 내용이 차츰 방대해져서, 실행평가표와 계획표는 플래너로 가고, 생각정리표는 코멘트북으로 따로 분업화된다. 어쨌건 시작이 중요했다. 내 안에 돌아다니는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일기였으며, 그것이 잘 실행되고 있나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것이 일기였다. 중간중간 꿈에 대한 일기도 있긴 하지만 그것이 꿈일기로 분화되는 것은 15년이 지난 먼 훗날의 일이니 생략하도록 한다.

어쨌건 그렇게 6개월 정도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보니 보였다. 내 인생을 갉아먹고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나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남중생들이 그렇듯 지나친 게임시간이 문제였다. 게임을 정말 천천히 줄여나갔다. 6개월에 걸쳐 줄여나갔다. 완전히 끊지는 않고 주말에만 한두 시간, 많으면 서너 시간 정도 했다. 그 이상 줄일 수는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정도는 한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에 진로를 탐색하고, 공부, 운동도 조금씩 하는 등 나에게 보람을 주는 일로 채워나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