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의 절차
수능을 본 뒤 나는 긴장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그래서 서울대 수시 2차 면접도 그다지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고, 그대로 광탈한다. 하지만 괜찮았다. 수능을 잘 봤으니까, 수능 점수로도 충분히 서울대 공대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서울대 공대를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이과생인 나는 꿈이 제대로 없었기에 평범한 이과생들이 많이 택하는 공대에 일단 진학해서 진로를 좀 더 모색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서울대 공대 중에 공학계열이란 과는 그 세부 분야가 넓고 문과적 성향을 지닌 산업공학과도 있어서 매력 있어 보였다. 사실 수시에는 경쟁자들에 비해 비교적 낮은 내신 성적에 맞춰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에 지원했던 터라 수능을 잘 본 이상 열심히 준비하고자 하는 원동력도 떨어진 부분이 있었다.
어쨌건 그렇게 수시에 떨어지고 서울대 공학계열에 원서접수를 하는데, 당시 수능전형인 정시에는 총 3개의 지원기회가 있었다. 가군, 나군, 다군이 그것인데 서울대 공학계열은 나군이었다. 그래서 가군은 안전 지원으로 연세대 공대를 넣고 다군이 남았다. 지원하지 않고 백지로 낼까 하다가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것에 맞추다 보니 지방 의대나 치대가 나왔다. 나는 그나마 가장 서울 가까운 곳으로 의대에 쓰게 되었다. 내 성적에 비해 상당히 상향 지원이어서 당연히 떨어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빈칸으로 두기엔 아까워서 그냥 써 본 것이다. 당시 나는 의대는 생각도 못했고 의사가 될 마음도 전혀 없었다. 의사는 완전히 관심 밖이었는데 의대를 쓴 것도 신기하기는 하다. 아무와 상의하지도 않고 부모님도 모르게 그냥 칸이 남아서 쓴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다 군의 의대에 진학하게 된다.
왜일까? 일단 나군의 서울대 공대에 떨어진다. 당시 지원자가 엄청 몰리는 바람에 나름 합격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도 수능 성적에서부터 밀려서 떨어진다. 그리고 가군 연대 공대는 우선선발로 전액 장학금으로 붙고 다군 지방 의대는 예비번호가 주어진다. 그래서 애초에 서울을 벗어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연대에 가야지 생각하고 천천히 입학준비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 등록을 2주 정도 앞둔 2월 초 어느 날, 지방 의대에서 추가합격했다고 연락이 온다. 당시 예비번호가 과 정원을 초과한 상태여서 기대조차 안 하고 있었는데, 한바퀴를 돌아서 나한테까지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고민에 빠진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우월한 성적차이로 합격한 연세대 공대에 가자니 조금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쐐기를 박은 것은 작은 어머니의 일침이었다. 작은 어머니는 당시 사촌들 교육에 열성이셔서 소위 깨인 분이었는데, 당장 지방의대 가야 한다고 마침 설날 연휴에 만났을 때 조언을 주셨다. 그 조언에 힘입어 나는 홀린 듯 연대공대 포기각서를 쓰고 나의 모교에 입학한다. 이 모든 것이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다. 그렇게 나는 결국 나의 운명이었던 의대에 간다.
의대에 갔으니,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그 이후 이야기를 간략히 적어보면, 사실 나는 대학교 때는 고등학교 때만큼 열심히 살지도,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맞이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의대가 내가 원했던 곳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인생의 2막은 나의 운명 정신과를 선택한 이후 다시 꽃이 피나니. 아마도 힘든 의대의 생활은 나를 정신과의사로 인도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시련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므로 정신과 의사 트레이닝 시절 일대기도 조만간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등학교 일대기를 마친다.